작은 디자인 스튜디오로 살아남기
디자인의 단가에 대해서 이야기해보려 한다.
디자인의 단가 혹은 디자인 견적은 그 사람이 디자인을 대하는 태도에서 시작한다고도 할 수 있지 않을까?
그것은 디자인을 해주는 디자이너에게도 디자인을 요청하는 클라이언트에게도 똑같이 통용되는 이야기다.
그렇기 때문에 사실 디자인은 부르는 게 값이다.
소신껏. 부르는 것이다.
똑같은 디자인을 의뢰했을 때 누군가는 5만 원을 부르고 누군가는 1000만 원을 부를 수 있다. 그리고 이 견적을 듣고 1000만 원의 견적을 납득하는 클라이언트가 있는가 하면 사기꾼이라고 매도하는 클라이언트가 있다. 누가 맞고 누가 틀린 걸까? 나는 모두가 맞다고 생각한다. 혹자는 말장난하고 있다고 할 수도 있겠지만 그것이 사실이다. 다만 여기서 가장 중요한 것은 클라이언트의 주체성이다.
5만 원짜리 디자인에는 그 이상의 고민과 노력을 담지 않는다.
상식적으로 생각해 보아도 너무나 당연한 이야기다. 자본주의 세상에서 손해만 보는 장사를 할 사람이 있을까? 사회 초년생 개인 아르바이트 시급 기준으로 계산해 봐도 5시간 이상 투자 하지 않겠다는 이야기다.
반면 아무리 작은 디자인 스튜디오라도 하나의 프로젝트에 임하면 몇 날 며칠 동안(혹은 몇 개월에서 연단위로도 작업에 임하게 된다.) 여러 명의 디자이너와 기획자들이 붙어 미팅을 통해 클라이언트 니즈를 파악하고, 디자인 분석부터 기획, 시각화 작업, 피드백 반영 등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고민과 노력이 들어간다.
디자인 서비스를 받는다는 것은 비단 완성된 결과물만을 인계받는 것이 아니다. 그 결과물이 도출되기까지 그 안에 담긴 전문가들의 고민과 노력, 시간을 구매하는 것이다. 그렇기에 같은 디자인 요청에 대한 견적이라도 그 견적이 같을 수가 없다는 이야기다.
자, 이제 중요한 것은 선택권을 가진 클라이언트의 결단이다.
신중하게. 잘 생각해야 한다. 과연 현재 자신에게 필요한 디자인이 어느 수준까지 필요한 것인지. 특별히 중요하지 않은 디자인이거나 이미 만들어야 할 디자인은 정해져 있고, 단지 빨리 원하는 형태가 구현만 되면 좋을 수준이라면 굳이 비싼 디자인을 맡길 이유가 없다. 가성비 좋게 진행하시면 된다. 실제로도 필드에서 일을 하다 보면 이런 말씀을 드리는 경우가 종종 생긴다.
'이렇게 작업을 진행하신다면 차라리 학생 디자인 프리랜서나 크몽 같은 데서 찾아보시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물론 클라이언트 입장에서는 기분이 상할 수 있는 포인트가 되기도 하지만 서로가 생각하는 디자인의 가치가 다르다면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서로가 추구하는 가치에 부합한 상대를 찾아 거래하는 것이, 수요와 공급의 균형이 맞는 ‘시장경제의 이치’ 아닐까.
다른 나라에서 살아보지 못한 내가 이렇게 이야기하는 것이 어불성설일 수 있다고 생각하지만, 유독 우리나라 사람들은 디자인에 돈을 쓴다는 것에 야박하다.
‘너는 그런 거 잘하잖아. 쉽게 할 수 있는 거잖아. 그냥 좀 해주면 되지.’
주니어시절. 아니 그저 그림 좀 그리던 학창 시절부터도 나 이거 좀 그려줘. 라며 항상 들어오던 소리. 하다못해 군대에서 조차 디자인 전공이라고? 그림 잘 그리겠네. 그럼 연병장에 네가 줄 그으면 되겠다. 와 같은 소리를 당연한 듯 내뱉는 사람들이 너무나도 많았다. 왜들 그러는 걸까? 알 수 없는 일이다. 하지만 적어도 확실한 것은 그 사람들의 마음속에는 디자인에 대한 존중이나 가치에 대한 공감이 없다는 것이다.
한 가지 다른 예를 들어보자. 똑같은 하룻밤을 보낸다고 했을 때 모텔과 호텔의 차이. 가격 차이는 비교도 할 수 없지만 많은 사람들이 호텔에서의 하룻밤에 돈을 아끼지 않는다. 호캉스는 있지만 모캉스는 없다. 나름 쾌적하게 잘 꾸며놓은 모텔들도 많지만 그들은 호텔을 선택하는 데 주저함이 없다. 언젠가 궁금해져서 호캉스를 즐기는 지인들에게 그 이유에 대해 물어본 적이 있다. 그러면 그들은 하나같이 잠시 고민하다가 머뭇거리며 모텔과 호텔의 서비스 차이를 이야기했다. 거기에 더해 스스로는 그와 같은 대접을 받을 자격이 있는 사람이라는 심리적 만족감이 있다고. 그렇기 때문에 내심 비싸다고 생각할 순 있어도 적어도 호텔로비에서 왜 모텔만큼 싸게 방을 내어놓지 않느냐 역정을 내지 않는다는 말이다.
디자인이라고 다를 게 없다.
나는 디자인을 저렴하게 제공하는 아마추어 프리랜서나 크몽과 같은 플랫폼을 매도할 생각이 없다.(단지 본인들의 노동의 가치를 헐값에 제공한다는 부분이 안타까울 뿐) 수요가 있으므로 공급이 존재한다. 세상에는 호텔이 있음에도 모텔들도 공존한다. 똑같다고 생각한다. 다만 호텔에 와서 모텔의 가격을 요구하는 일이 없기를 바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