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디자인 스튜디오로 살아남기
세상은 공평하지 않다.
살다 보면 여기저기에서 부딪치고 깨지며 느끼게 되는 사실.
애써 부정하고 싶지만 결국은 인정할 수밖에 없는 ‘팩트’다. 똑같은 시간을 쉬지 않고 달린다고 했을 때 토끼와 거북이가 달려온 거리가 같을까? 경마장에서 달리는 훈련받은 경주마들 사이에서도 매번 순위는 엎치락뒤치락 승부는 알 수 없다.
디자인 이야기를 하는 줄 알았더니 갑자기 무슨 뜬 구름 잡는 소리를 하는가 싶을 수 있지만, 이 말의 요지는- 기계가 아닌 이상 입력 값(input)과 결과 값(output)이 언제나 정해진 대로 나오지 않는다는 말이하고 싶었던 것이다.
솔직히 디자인을 했을 때 나온 결과물의 퀄리티가 항상 일정할 수는 없다는 것을 인정하자. 그저 주어진 환경 안에서 최선을 다해 달릴 뿐이다. 다만 내가 달리고 있는 필드(디자인 스튜디오)는 ‘훈련된 경주마’들이 모인 경마장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이 울타리 바깥에는 한 번도 디자인을 접해 본 적 없는 토끼도, 배운 적은 없지만 타고난 감각과 센스가 남다른 야생마나 얼룩말도 존재한다. 간혹 말도 안 되는 오버스펙과 센스를 갖춘 독수리나 치타도 있을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우리가 한 디자인이 무조건 최고다! 언제나 최고의 디자인을 제공한다!라고 이야기 하는 것을 경계한다. 고객사의 입장에서는 신뢰도가 낮아지는 면일 수도 있지만, 사기를 치고 싶지는 않다. 경우에 따라서 비전문가가 무근본으로 만든 결과물이 더 좋은 경우도 분명히 있을 수 있고 세상 어딘가에는 나보다 훨씬 뛰어난 디자이너들도 수두룩하게 존재하기 때문이다. 일반인 취미 야구단에서도 홈런은 나오고, 아마추어 복서에게서도 럭키펀치는 나온다. 그렇다고 메이저 리그의 프로 선수와 아마추어 선수의 몸값이 같겠는가. 또한 같은 메이저 리거 안에서도 유독 더 빛나는 스타 선수들도 있다. 그렇기에 나는 마찬가지로 하나의 목표를 향해 레이스를 한다면 어디로 달릴지 확신하기 어려운 야생종들 보다는 훈련받은 경주마들이 보다 빠르고 안정적으로 골지점을 향해 달릴 확률이 높지 않을까 생각한다.
그렇게 믿으며 달릴 뿐이다.
자, 지금까지는 디자인을 하는 주체인 디자이너에 따라 그 결과물과 퀄리티도 달라질 수 있다는 이야기를 했다면 이번에는 그것을 평하는 사람과 관점에 대해서도 이야기해 보도록 하자. 똑같은 결과물이 있을 때 그 결과물의 퀄리티에 대한 평가도 평가자의 주관에 따라 상대적일 수밖에 없다. 누가 평가를 하느냐에 따라 같은 디자인 결과물의 퀄리티가 높을 수도 낮을 수도 있다는 말이다.
소문난 맛집에 예약을 걸고 몇 시간을 기다렸다가 식사를 했다고 해보자. 누군가는 역시 맛집은 다르다며 엄지를 추켜세우며 나올 수 있고, 누군가는 역시 소문은 믿을 게 못된다며 기대 이하라는 평가를 하기도 한다. 그렇다면 해당 맛집의 음식은 맛이 있는 걸까 없는 걸까. 나의 답은 평가하는 사람 나름이라는 것이다. 거기에 한마디를 덧붙이자면, 그래도 맛집이 맛집으로 소문나기까지 나름의 이유가 있지 않았겠나 라는 사견이 있다. 이와 같은 이유로 나는 항상 디자인을 함에 있어서 특정 누군가(보통 클라이언트의 취향) 혹은 일부 소수의 취향에 맞춘 디자인을 추구하기보다는 일차적으로 더 많은 대상이나 해당 디자인의 타깃이 되는 정확한 목표 고객들이 공감할 수 있는 디자인을 하려고 노력한다.
그럼에도 종종 아쉬운 경우가 발생하기도 한다.
그 이유는 대개 디자인 대행의 특성상 결정권자가 따로 존재한다는 것에서 발생한다. 디자인은 맡겼지만 단지 원하는 바를 시각적으로 구현할 스킬이 부족해서 의뢰를 맡긴 경우가 그렇다. 디자이너로서 더 좋은 결과를 만들기 위해 치열하게 연구하고, 고민한 바를 항상 최선을 다해 어필하지만 이미 원하는 바가 따로 정해져 있는 경우에는 결국 결정권자가 향하는 방향으로 틀어지기 마련이다. 아무리 일차적으로 고객(클라이언트)의 고객을 대상으로 하는 디자인을 기획하고 개발할지라도, 결국 고객의 고객은 나의 고객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것은 디자인 스튜디오의 숙명이다. 우리는 클라이언트가 원하는 방향에 맞출 수밖에 없다. 그리고 이 경우, 디자인을 수행하는 디자이너가 스스로 만들고 있는 디자인에 공감하지 못한 채 진행되는 경우가 많다 보니, 의뢰를 맡긴 클라이언트는 흡족해할지라도 내부적으로는 결과물의 퀄리티가 만족스럽지 못한 경우가 많다. 그렇기 때문에 간혹 프로젝트 착수 이후 디자인 방향에서 클라이언트와 의견이 맞지 않을 때는 언제나 클라이언트의 결정이 더 옳은 결정이었기를 바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