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디자인 스튜디오로 살아남기
디자인 에이전시 / 스튜디오에서는 디자인을 판다.
그렇기 때문에 디자인 원 툴로 가는 비즈니스 특성상 사업에서 가장 중요한 자산은 인적 자산인 디자이너일 수밖에 없다. 그러면 디자인 스튜디오에서는 어떤 디자이너가 디자인을 잘하는 디자이너일까?
아니, 작은 디자인 스튜디오에서 말하는 좋은 디자이너, 함께 일하고 싶은 디자이너는 어떤 디자이너일까?
디자인을 잘하는 디자이너와 일을 잘하는 디자이너는 다른 이야기다. 그리고 좋은 디자이너는 또 다른 이야기. 이번엔 작은 스튜디오로 살아남기 위해 겪어온 다양한 디자이너들을 회상하며 정말 함께 하고 싶은 디자이너는 어떤 디자이너인지에 대해서 이야기해보려 한다.
사실 비단 디자이너에 국한된 이야기는 아닐 수 있다.
아마 이번 이야기에서는 모든 소규모 사업장의 리더라면 공감할 수 있는 부분이 많으리라 짐작해 본다.
자, 각설하고 다시 본론으로 돌아와 보자.
물론 디자인도 잘하고, 손도 빠르고, 심지어 마인드까지 좋은 만능 디자이너가 있다면 그가 가장 좋은 디자이너라고 할 수 있겠다. 하지만 세상에 그런 존재가 있을 리 없지 않은가. 상상 속의 유니콘이나 용은 논외로 치도록 하자. 그리고 디자인을 업으로 하는 만큼 디자인을 못하는 디자이너도 논외로 치도록 하겠다. 일단 기본 이상의 디자인은 할 줄 안다는 전제는 깔아주어야 한다. 그 정도는 해야 이야기할 거리가 생긴다.
그러면 우선, 본격적으로 디자이너에 대한 이야기를 하기 전에 잠깐 디자인 스튜디오라는 조직의 특성에 대해서 짚어보도록 하자. 이 조직의 특성을 먼저 이해해야 적합한 인재상에 대해 이야기할 수 있을 테니까. 조직의 특성이라고 다소 거창하게 적어보기는 했지만 그 특성이란 것은 사실 정말 보잘것없다.
거두절미하고 일단 작다.
나는 간혹 이 디자인 스튜디오를 ‘디자인 구멍가게’라고 표현하곤 하는데, 다시 생각해도 찰떡같은 표현이라는 생각이 든다. 회사라고 하면 일반적으로 떠올릴 이미지들이 있겠지만... 디자인 스튜디오는 그 일반적인 감상보다 매우 작은 감이 있다.
그렇다 보니 디자인이라는 분야적인 특성에 앞서, 작기 때문에... 비교적 다른 경직적인 회사의 구조보다 자유로운 분위기라는 장점도 있기는 있다. 하지만 모든 디자인 스튜디오들이 그렇지는 않겠지만, 대부분 작기 때문에 가지는 한계 또한 명확한 편이다.
우선 일손이 부족하다.
그렇기에 업무 영역의 구분이 명확할 수 없다. 닥치면 다 하는 거다.
그게 디자인이던 기획이던 촬영이던 마케팅이던 잡무든 간에.
상황을 가정해 보자.
가령… 주 업무로 패키지 디자인을 담당할 디자이너를 뽑았다고 치자. 그런데 갑자기 이전에 컨펌이 완료되었던 콘텐츠에 대한 클라이언트 수정 요청이 긴급으로 들어왔다. 그 와중에 담당했던 콘텐츠 디자이너는 휴가 중이다. 이 상황에서 대부분 디자인 스튜디오의 대표나 리더들은 클라이언트에게…
'우리 디자이너가 지금은 휴가 중이라 요청에 대응해 드릴 수 없습니다. 나중에 디자이너의 휴가가 끝나면 반영해 드리겠습니다.'
라고 말하기가 여간해서는 쉽지 않다.
이와 같은 상황이라면 일반적으로 콘텐츠 디자인의 경우… 대게 큰 디자인적 스킬을 많이 요하는 작업이 아니기에 내부에 마땅히 여력 있는 인원이 없을 시 결국 그 패키지 디자인을 담당하던 디자이너에게 까지 부탁이 넘어가기 마련이다. 자, 여기서 문제 발생.
'나는 패키지 디자이너인데? 이걸 왜 내가…'
아마 대부분 이렇게 생각할 것이다. 당연하다. 하지만 이 생각을 입 밖으로 뱉는다는 것은 태도의 문제다.
이런 성향의 디자이너라면 그가 디자인을 아무리. 얼마나. 잘한다 하더라도 디자인 스튜디오와는 맞지 않다.
위와 같은 상황을 디자인스튜디오의 리더들도 절대 당연시 여기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이와 같은 업무 지시는 최대한 피하려고 노력한다. 다만 피치 못하는 경우가 생각보다도 더 자주, 많이 생긴다는 것이 문제라면 문제지만…
자, 아무튼 먼 길을 돌아왔지만, 여기서 내가 생각하는 디자인 스튜디오에서 좋은 디자이너란 무엇인가에 대한 답을 먼저 내려보자.
그건 바로 [함께 성장할 수 있는 디자이너]다.
문제 상황이 발생 시 회피하려 하거나 일단 방어하려 하기보다는 먼저 해보자는 태도와 그렇게 업무를 줄 수밖에 없었던 회사나 리더의 입장을 이해해 보려는 자세가 중요하다.
이 글을 보는 누군가는 진짜 꼰대구나. 할 수 있겠지만 어쩔 수 없다.
현업에서는 언제나 눈앞의 급한 불을 끄는 것이 우선시 될 수밖에 없다. 당장 눈앞에 불이 번지고 있는데 어쩌겠는가. 일단 먼저 급한 불부터 끄고 나서 불만이었던 부분이나 아쉬운 부분들에 대해서는 서로 이야기하며, 완벽할 수 없더라도 최대한 조율하고 맞춰나갈 수 있는 유연함이 필요하다. 이 부분에서 회사와 디자이너의 합이 잘 맞아야 함께 성장할 수 있는 그림이 나온다.
슬픈 현실이지만 대다수의 디자이너들에게 디자인 스튜디오는 징검다리로 여겨지는 경우가 많다.
더 크고 좋은 기업으로 가기 위한 포트폴리오와 커리어를 쌓기 위해 잠시 머물다 가는 곳.
나도 알고 있다. 이렇게 디자인 스튜디오를 운영하는 입장이 되기 전까지는 나 또한 그래왔기에 충분히 그 마음을 이해하기도 하고.
하지만 그래서일까? 디자인 스튜디오를 하면서 함께 성장하는 디자이너를 만나기란 쉽지 않다.
다들 그런 적당한 마음으로 들어오고 힘든 점이나 불만사항이 생길 경우 함께 개선해 나가려 하기보다 옮기는 쪽을 선택한다. 그리고 단정 지어 이야기한다.
“여기는 변하지 않아.”
“우리 리더랑은 말이 통하지 않아.”
실제로 그런 곳들도 많을 것이다. 하지만 이런 말을 하는 디자이너들 대부분 2년 미만의 근속인 경우가 허다하다. 디자인 스튜디오는 작은 조직이지만 그래도 조직이고 회사라고… 체감할 수 있는 변화에는 생각보다 시간이 필요하다. 하지만 대부분 믿고 기다려 주지 못한다. 본인과 맞는 조건의 회사를 찾아 옮기는 것이 훨씬 빠르니까. 이해는 하지만 안타까운 부분이다.
어쨌거나 이런 경우가 많다 보니 디자이너 채용은 주로 주니어를 뽑는 경우가 많다.
그리고 생각보다 회사는 주니어에게 많은 기대를 하지 않는다. 지금 당장 프로젝트 하나를 담당하게끔 하고 완벽히 해내라고 압박하지 않으며, 애초에 그렇게 해내리라 기대를 하지 않는다는 말이다. 선임이나 팀장, 리더가 괜히 있는 것이 아니다.
만약 이 글을 읽는 디자이너가 속한 회사가 주니어에게 그런 무리한 요구와 압박을 하는 회사라면 이력서를 다시 준비하길 권장한다. 아무튼 경험상 아무리 좋은 학교, 좋은 교수님 밑에서 수학한 디자이너 일지라도 현업과의 간극은 크다. 어떨 때는 회사에서 돈을 주며 디자인을 가르치고 있는 현실과 마주할 때도 비일비재.
그렇기에 보통 주니어 디자이너 채용 시 가장 중요하게 보는 항목은 당장의 디자인 실력보다 그들의 잠재력이나 아이디어, 태도를 더 중요시하게 된다. 디자인은 못하는 정도가 아니라면 함께 하며 끌어올릴 수 있다.
사담이지만 그런 점에서 나는 운이 좋다.
현재 우리 스튜디오의 디자인팀 팀장은 주니어시절부터 함께 하고 성장해, 지금은 꽤 든든한 동료로서 함께 하고 있다. 디자인 스튜디오에서 겪어보기 힘든 성장 케이스다. 그의 속마음도 나와 같을지 알 수 없지만 나는 항상 감사한 마음을 가지고 있다. 그러니… 아니, 그래서 앞으로도 계속 함께 고생해 주길 바라는 마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