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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FROB Jun 28. 2023

스튜디오/에이전시 디자이너가 느끼는 현실적인 갑과 을

작은 디자인 스튜디오로 살아남기



세계적인 스타 디자이너들을 보면 강력한 카리스마와 통찰, 그들만의 철학과 스타일을 멋지게 구현하며 모든 산업 현장을 진두지휘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특히 패션 디자인 쪽에는 유독 스타 디자이너들이 많은 편이다. 심지어 비전공자 일지라도 그 감각을 인정받아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확약하는 버질 아블로, 칸예, 퍼렐 윌리엄스 같은 사례도 쉽게 찾아볼 수 있지 않던가.



그렇다고 다른 디자인 분야에서는 스타 디자이너가 없느냐.

당연히 그렇지 않다. 가깝게는 내가 속한 분야만 해도 언제나 동경해 마지않는 하라켄야, 카럴 마르턴스, 네빌 브로디 등 범접할 수 없는 대가와 거장들이 존재한다. 어린 시절 나 또한 그런 디자이너를 동경하며 디자인의 꿈을 키웠던 시절이 있었다.


하지만 솔직히 말해, 그들은 정말 상위 0.01%도 되지 않는 저 하늘 위에서 빛나는 별이다.

사실 대부분의 현업에서 만나게 되는 대다수의 디자이너는 그들과 느낌이 사뭇 다르다. 아무튼 이번에 할 이야기는 슬픈 이야기다.


[갑과 을]


그리고 언제나 그 관계가 누구와 맺어지던지 항상 을의 포지션에 위치할 수밖에 없는 가련한 존재.


[디자이너]


진짜 현실에서 마주치는 그들(디자이너들)이 체감하는 본인들의 위치는 생각보다 절망적이다.

극단적으로 말하면 현업에서 대부분의 디자이너들은 갑이 될 수 없다. 누군가는 요즘 같은 시대에 무슨 구시대적인 갑을타령이냐고 할 수도 있다. 갑도 을이 될 수 있고 을도 갑이 될 수 있다고. 그러니 주체성을 가지고 마인드와 태도를 달리해야 한다고.


일정 부분 인정하는 부분도 있다. 하지만 내가 살아가는 냉정한 현실세계에서는 마인드와 태도의 변화만으로 실질적인 입장이 바뀌는 경우가 흔치 않다. 당연한 말이지만 무엇보다 디자인은 서비스업이라는 점에서 1차적인 갑을 관계가 생기기 마련이다. 수요와 공급. 클라이언트와 디자이너. 갑과 을. 디자인은 누군가가 목적하는 바에 맞춘 창작 활동이라는 점에서 일반적인 예술 창작과 구분이 된다. 그리고 당연하게도 디자이너는 공급자다.


그뿐이 아니다. 디자인이라는 공정은 대부분의 산업과정 전반에서 그 모든 과정의 가장 끝단에 위치한다는 점에서 2차적인 갑을 관계가 생겨난다. 디자이너는 작업에 임할 시 항상 디자인 이전에 요구되는 사항(자금, 기획, 개발, 제작, 설계 등)들을 고려해야 한다.


의도치 않았더라도... 바로 이때, 디자인 단계의 이전 단계를 담당했던 담당자는 갑의 위치가 되어 디자이너의 작업물을 컨펌한다.


“OO마케터님, 주셨던 레퍼런스에 맞춰서 했는데 어떤가요?”

“아, XX디자이너님, 그런데 제가 말씀드린 이 워딩은 좀 더 임팩트 있어야 될 것 같은데요.”
“OO기획자님, 말씀하신 느낌이 이런 건가요?”

“음… XX디자이너님, 느낌이 나쁘지는 않긴 한데… 제가 원했던 느낌은 좀 더 영한 느낌이라서 이 시안은 안될 것 같아요.”
“OO제품 개발자님, 패키지는 이렇게 해보려고요.”

“XX디자이너님, 제가 말씀을 못 드렸었네요. 상자의 측면에는 제품 정보 이러저러한 것들에 대해서 들어가야 하고 정면은 무조건 한글로 제목이 들어가야 해요.”

“아... 그렇군요.”

“네. 그래서 죄송하지만 디자인을 좀 바꿔야 할 것 같네요.”


이런 관계에 있어서 직급은 중요하지 않다. 역할만이 남을 뿐이다.

하지만 디자이너 입장에서는 문득 어제의 동료가 오늘의 상사가 되어 있는 느낌을 받는다. 현실의 디자이너는 스티브 잡스가 아니다.


“안 되는 게 어딨어. 이 디자인이 이쁘니까 디자인에 맞춰. 어떻게든.”


을 시전할 수 없다. 안된다면 아, 그렇구나 맞추라는 데로 맞춰야지. 안 그러면 진행이 안 되는데. 또 수정해야겠네. 해야 하는 순간이 95% 이상.





나도 지금껏 수도 없이 겪어왔고, 지금도 여전히 이런 관계성을 벗어날 수 없지만 특히 막내(주니어) 디자이너들을 보고 있자면 한편으로 측은한 마음마저 들기도 한다. 클라이언트와 디자인 스튜디오의 관계는 말할 것도 없다. 이 작은 스튜디오 안에서도 항상 불편한 갑을 관계가 존재한다.


대표와 직원, 팀장과 팀원과 같은 업무상의 상하 관계는 기본. 위에서 예시를 들었던 바와 같이 상하 관계가 아닌 수평적인 관계라고 할지라도 담당 직무에 따라 결국은 다시 그 안에서도 갑과 을이 생긴다. 기획자와 디자이너. 마케터와 디자이너. 개발자와 디자이너. 디자이너는 그 어디에서도 갑의 위치가 되지 못한다.


사농공상이라는 말에서 알 수 있듯 조선시대에도 직업의 귀천이 있었고, 지금도 여전히 그 직업의 귀천이라는 것이 존재하는 것처럼 느껴지는 것도 사실. 현실을 모르던 어린 시절 별처럼 빛나는 스타 디자이너들을 바라보며 그래도 디자이너는 멋있는 직업이라는 환상을 품었지만... 현실의 디자이너는 계급도에서 가장 바닥에 위치해 있었다.



사실... 이런 우울한 이야기를 이렇게 길게 해서 뭐 어쩌자는 건가 싶을 수 있다.

위와 같은 사실을 인정하고 나면 남는 건 서러움뿐이지 않은가. 당연히 나도 디자이너는 을일 수밖에 없으니, 그냥 받아들이고 그 길을 선택한 자신의 탓이려니... 순응하며 살라는 말을 하고 싶은 것이 아니다.


언젠가부터 [갑과 을]이 어느 관계에서의 주도권 여부에 대한 대명사가 되었지만 사실 갑과 을은 계약 상 호칭의 편의를 위해 붙인 대명사일 뿐이다.


그렇다. 본질은 그저 상호 간의 거래라는 점이다.

갑과 을. 수요자와 공급자. 그 관계가 뒤바뀔 일은 없다. 하지만 공급자가 수요자에게 무조건적으로 쭈그러들 필요는 없다는 것이다. 을이라는 것은 인지하되 약속된 내용을 정확히 준수했다면 그 이상을 요구하는 갑에게 당당해질 필요가 있다.


의사표현은 디자이너의 중요한 덕목 중 하나다.

결과물을 아무리 기깔나게 뽑아낸다고 하더라도 자기표현을 제대로 할 줄 모르는 디자이너는 디자이너로써 실격이다. 영화 부당거래에서 류승범이 했던 유명한 말이 있지 않은가.


“호의가 계속되면 그게 권리인 줄 알아요.”



뼈 때리는 명언이다.

과도한 요구에 항변하지 못하고 무조건적인 수용을 했을 때 수요자는 그것이 정당한 권리라고 생각한다. 아니, 오히려 그 정도로 끝나기만 해도 다행이다. 그런 상황이 반복적으로 발생하면, 역으로 수요자는 본인이 받는 것에 비해 많은 대가를 지불하고 있다고 느끼며 점차 상대방을 무시하게 되거나 단가를 후려치게 되는 악순환이 발생한다.


이건 비단 한국인의 ‘종특’이라고 할 것도 아니다.

그냥 일반적인 사람 심리가 그렇다. 그렇기 때문에 디자이너는 의사표현이 명확할 필요가 있다.


물론 이 조차도 계약사항에서 한치라도 벗어나면 득달같이 달려들어 싸우라는 말이 아니다.

적당히 수용 가능한 선에서는 져주기도 하고, 어려운 부분에 대해서는 안내와 설득을 통한 타협을 거쳐 ‘조율’ 해 나가는 것이 중요하다.


이랬다 저랬다 하는 말처럼 느껴질 수 있으나 그 ‘관계의 줄타기’가 정말 중요하다.

물론 경험이 많지 않은 주니어 시절에는 쉽지 않은 일이다.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사수가 있고, 회사가 있는 것이다. 스스로 내리는 판단이나 말을 하는 것이 부담스러울 경우엔 주변의 관계를 현명하게 이용할 줄 아는 지혜도 필요하다.


디자인 스튜디오의 경우 동시에 다양한 과업과 프로젝트들을 진행할 수밖에 없는 구조다 보니, 회사나 팀장들은 실무에서의 세세한 내용을 모두 캐치하지 못할 경우가 있다. 혼자 속앓이를 해봐야 아무도 알지 못한다.


결론. 누구든 실무를 하며 힘든 일이 있다면 자주 소통을 하도록 하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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