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FROB Apr 27. 2023

세상에 궁극의 디자인이 있을까?

디자인 실무자의 머릿속



나에겐 형제와도 같은 베스트 프랜드가 하나 있다. 

미래의 진로에 대한 고민조차 없던 25년도 더 지난 옛날. 어찌어찌 단짝이 되었던 그 친구가 불행인지 다행인지 나와 같이 디자인이라는 가시밭길을 걸었고, 지금은 자랑스럽게도 국내 TOP급 디자인 스튜디오로 손꼽히는 곳에서 실장으로 매번 멋진 프로젝트와 작업을 메이드 하고 있다. 


간혹 생각하지만 가장 가까운 친구가 같은 분야의 전문가라는 것은 나름대로 멋진 일이다. 이 친구와는 가끔 만나, 디자인에 관한 이야기나 필드에서 겪는 솔직한 고충들에 대해 술잔을 기울이며 허심탄회한 이야기를 할 수 있어서 좋다.



웃긴 건 가장 이야기가 통하는 친구임에도 이 친구와 나는 항상 의견이 갈리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이번 이야기의 주제는 그중 한 가지를 꺼내보고자 한다. 그 주제는 과연 이 세상에 궁극의 디자인, 혹은 궁극의 미라는 것이 존재할까?라는 의문이다. 먼저 이야기를 하자면 나는 ‘없다’ 파이며 친구는 ‘있다’파다.


이 주제는 아마 디자인의 완성도에 대한 이야기를 하던 중에 나왔던 것 같다. 어쩌면 지난 이야기의 주제인 디자인 결과물과 퀄리티에 대한 이야기의 연장일 수도 있겠다. 우리 모두는 살아가면서 생각보다 많은 디자인 작업물을 접하고 많은 디자이너를 겪기 마련이다. 


자, 가만히 생각해 보자.

그 많은 디자인 작업물과 디자이너들을 떠올려보면 어떠한가? 절로 고개가 끄덕여지며

‘그래. 디자인 참 잘하네.’

하는 디자이너나 작업물들이 있는가 하면 누가 보아도

‘좀… 아쉬운데?’

싶은 것도 있다. 여기까지는 둘 모두 동의했지만 여기서 분기점이 생겼다. 

작업물의 우열이라는 게 생길 수 있다는 관점. 그러니까 각기 다른 작업물이 두 개가 있을 때, 둘 중 더 좋은 작업물이 존재한다는 관점엔 두 사람이 모두 동의한 것이다. 그 이후가 문제였다. 


한 명(필자의 친구)은 이렇게 디자인에 우열이 있기 때문에 디자이너라면 무릇 이 세상 그 누가 보아도 인정할 수밖에 없는 궁극적인 아름다움을 추구해야 한다는 견해였다. 


반면 다른 한 명(나)의 견해는 달랐다. 어디라고 콕 집을 수는 없지만 사람들마다 조금씩 다른 선(어느 정도라고 특정할 수는 없지만 만족할 수 있는 완성도의 기준)을 가지고 있고, 그 선을 넘는 순간부터는 취향의 차이라고 보는 견해다. 그렇기 때문에 그 어느 정도의 완성도를 충족시키기 이전까지는 작업물에 우열이 생길 수 있지만 그 기준을 넘기는 순간 취향과 주관의 영역이기 때문에 궁극의 미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논리. 그래서 모두를 만족시킬 수 있는 알 수 없는 무언가를 찾기 위해 궁구하고 시간을 허비하기보다는 목적과 대상에 맞는 전략적인 디자인을 해야 한다는 주장. 


이 주장을 펼치고 나서, 나는 한차례 그 디자인 꼰대에게 훈계를 들어야 했다. 술이 취해 내 이야기를 제대로 듣지 못했을 수도 있지만 아마도 그 친구가 듣기에 최고의 결과물을 뽑아내기 위해 마지막의 마지막까지 치열하게 노력하지 않고, 중간 어느 정도 올라간 완성도에서 클라이언트나 특정 고객 누군가가 만족했다면 적당히 하고 말겠다는 이야기로 들렸던 모양이다. 뉘앙스가 좀 달라서- 그런 의도로 한 이야기는 아니었지만 또 완전히 틀린 이야기도 아닌지라 더 논쟁을 이어가지는 않았었다.



그 뒤로 간혹 혼자서 이 주제를 떠올릴 때가 있다. 하지만 여전히 내 생각은 바뀌지 않았다. 

그래서- 그렇게 학자처럼 궁극의 미를 찾아서 떠나는 여정을 한다고 해서, 과연 진짜 궁극의 디자인을 했는가? 아니, 좀 더 직설적으로 네가 한 디자인이 완벽한... 그 누구도 반박불가능한 최고의 디자인이었다고 확신해?라는 질문을 던진다면 그 친구는 나에게 그렇다고 당당하게 대답할 수 있을까?


디자이너는 학자가 아니다. 현실에서 특히 현업의 필드에서 디자인이란 제한된 환경에서 최선의 결과물을 뽑아내는 작업이다. 그 제한된 환경은 시간이 되기도 하고, 단가가 되기도 하며, 특정 누군가의 취향이 되기도 한다. 다시 생각해 봐도 세상 모두를 위한 완벽을 추구하기보다 전략적으로 정확한 목적과 대상에 맞는 최선을 찾는 것이 맞는 것 같다.

이전 09화 디자인 카르텔?!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