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엄마가 있다 - 오지랖

여덞 번째 고자질

by 낭만똘짱

엄마. 나 축구 대회에서 동메달을 땄어. 물론 내가 선수로 뛴 건 아니야. 뭐 이 바닥에서 손흥민은 아니고 박항서 정도는 되나 봐. 아무튼 내가 지도한 아이들이 상을 타니까 너무 기뻤어.


학교에는 스포츠클럽이라는 게 있어. 예전에는 운동부만 경기에 나섰지만 요즘에는 생활체육을 권장하는 의미에서 모든 학생이 참여해. 그리고 운동부 선수를 제외한 나머지 아이들끼리 종목별로 대회를 치르지. 그 대회의 이야기야.


우리 학교는 배구 열풍이 들어서 운동 잘하는 아이들은 다 배구 경기에 나서. 한 사람이 한 종목밖에 못나기 때문에 다른 종목은 선수가 빈약했지. 그래도 굳이 나가려는 아이들이 있어서 팀을 만들어봤어. 운동 잘하는 아이들에게 늘 치이던 소위 말하는 후보선수였던 6학년과 신체적으로 작은 5학년 아이들로 말이지. 입상보다는 출전에 의의를 뒀어. 나는 몇 날 고생이지만 아이들은 평생 추억이 될 테니까.


아이들이 정말 열심히 연습했어. 안타깝게 잘하지는 못했지만. 그게 한두 달 연습에서 될 건 아니었나 봐. 조금씩 연습하면서 실력이 늘어가는 아이들을 보면서 초등학교 때 운동장에 나가는 걸 무서워했던 내 옛 생각도 났어. 주장도 뽑았어. 우리 반에서 가장 다툼이 많았던 아이. 덩치가 제일 컸던 아이. 피시방을 제일 자주 가던 아이. 세상에서 게임이 제일 좋다던 아이 었어. 완장을 달아주면 좀 더 열심히 하려나 했는 데 정말 열심히 하더라. 뭐 자기들끼리 안 싸우고 즐거우면 됐지.


대회는 시작했어. 그런데 이겨버렸어. 이겨버리다니 웃기지. 정말 기대를 안 했거든. 대진표가 운이 좋았나 봐. 그것도 2:0으로 이겼어. 모두가 놀랬지. 제일 놀란 건 나야. 사실 물품구매도 출장도 하루치만 결재했거든. 그런데도 아이들은 이미 결승전을 고민했어. 이제 4강인데 말이야. 뭔가 짠하기도 했고 미안하기도 했어.


다음날 4강전을 했어. 어제는 운이었나 봐. 그래도 무승부로 연장전까지 갔어. 질 줄 알고 후보 친구들 한 번씩 뛰게 해 주겠다고 선수 교체를 다 해버렸어. 고생 같이 했는 데 운동장은 밟게 해 줘야지. 그런데 이거 어쩔까나 승부차기에 들어갔어. 교체로 나간 선수는 승부차기를 할 수가 없어. 그래서 그나마 잘하는 아이들보다 정말 처음 해보는 아이들이었지. 긴장해서 골 대안으로도 못 차곤 했어. 상대방도 비슷한 상황이었나 봐. 5명이 넘어서도 무승부는 이어졌어. 6명. 7명. 8명째 우리 팀 키커를 보니 주장이었어. 멀리서도 큰 덩치와 팔에 낀 완장이 보였지.


하... 평소에도 공을 잘 못 차서 고민이었는 데 어쩔 수 없었어. 사실 뒤돌아 짐을 정리했어. 못 보겠더라고. 한동안 조용해서 뒤돌아보는 순간 아이가 찬 공이 그물을 흔들었지 뭐야. 실수였는 지 실력이었는지 모를 정말 멋있는 슛이었어. 아이들이 미친 듯이 좋아했고 그 기세에 눌려서 인지 상대방 아이의 마지막 공은 하늘로 날아갔어.


승부차기 승리.


종료 휘슬이 불리고 주장 아이는 내게 뛰어왔어. 캬. 박지성과 히딩크 같았어. 그 표정을 잊지 못해. 변성기 어색한 목소리로 “게임보다 축구가 더 좋아요”라고 이야기할 때는 뭔지 모를 보람도 들었어. 나는 그 주장 완장 집까지 차고 가라고 했어. 가서 부모님께 너의 무용담을 꼭 말씀드리라고 했어. 신나서 집으로 가는 아이를 보면서 나는 핸드폰을 들었어.


안녕하세요 오늘 ㅇㅇ이가 축구대회에서 큰 활약을 했어요. 우리 팀의 주장이기도 합니다. 아이가 오면 크게 칭찬해주세요.


라고 썼다가 잠시 고민했어. 이게 초등학교 6학년 학부모님께 보낼 메시지인가. 오지랖인가. 어련하면 칭찬해주시겠지모라고 생각해서 그냥 안 보냈어. 아니 사실 보낸 줄 알았어. 고민하면서 미루다가 말아버렸나 봐.


다음 날 학교로 오니 주장 아이가 시무룩해있었어. 사정을 물어보니 집에 가서 엄마한테 자랑을 했는 데 돌아오는 엄마의 말씀이

“그래서 뭐”였데.


후회가 되었어. 신이 잔뜩 난 아이가 자초지종을 잘 설명했을 리는 없고, 아무것도 모르는 바쁘신 엄마는 상황을 잘 파악하기가 힘드셨나 봐. 아무튼 그 말을 전해주는 아이의 표정을 보니 마음이 너무 아팠어.


한 학기 동안 정말 열심히 했는 데 말이지. 결국 우린 다음 경기에서 0:8로 시원하게 지고 공동 3등으로 동메달을 땄어. 그래도 좋아하는 아이들 사이에서 아직도 표정이 굳어있는 주장 아이를 보았어. 대회가 끝나고 모두들 일상으로 돌아왔어. 학교 마치면 축구부 아이들은 운동장으로 가고 그 아이는 다시 피시방으로 갔어. 그래 겨울이 다가오니까 추워서 그랬을 거야.


엄마. 그 날 내가 아이 엄마한테 문자를 보냈더라면 상황이 달라졌을까. 엄마라면 그런 문자를 받았을 때 어떨 거 같아. 괜히 더 부담스러웠을까. 다른 아이들 부모님이 아시고 차별한다고 섭섭해하셨을까. 그럼에도 내가 보냈어야 하는 게 맞는 건가. 뭐가 맞는지 잘 모르겠어. 근데 확실한 건 나는 그 순간이 떠오를 때마다 후회가 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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