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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솜 Dec 17. 2019

2화 미술? 쉽게 음식으로 생각해 봅시다

미술을 대하는 두 개의 마음가짐

성인이 되고 그림을 배운 적이 있다. 매주 토요일마다 4시간씩 화실에 나가 그림을 그렸다. 얼추 대상을 비슷하게 그리게 되었을 때쯤 아크릴 물감*으로 작품을 시작했다. 어떤 대상을 묘사할지, 어떤 형태로 그릴 지, 어떤 색을 사용할지, 어떤 색을 덧댈지. 고작 60cm 남짓의 작은 그림이었는데, 고민하며 하나하나 완성해 가는 데 4개월 정도 걸렸다. 작품을 온전히 완성해 본 이후, 그림을 볼 때 가지는 마음이 생겼다. '이 그림에는 열과 성이 담겨있다.'



미술, 마음이 담긴 노동

열은 '무언가를 사랑하는 마음' 성은 '고강도의 정신적 신체적 노동'을 의미한다. 다른 작품에서 故신해철 씨의 노년 모습을 그린적이 있는데, 열성 팬이 아녔는데도 그릴 때마다 애틋했다. 어떤 대상을 선정하고 실제 세계에 그려내는 과정은, 대상에 대한 사랑이 이미 전제되어 있거나 애정을 만들기 마련이다. 그림이 한 개의 점 일지라도, 그 형태로 찍기까지 작가는 많은 고민을 하고 무언가를 전달하길 갈망할 것이다. 어떤 그림을 보더라도 누군가가 마음과 노동을 담았다고 전제한다. 음식으로 비유하자면 조리가 아닌 요리다. 이러한 마음으로 그림을 보자 굳이 들인 그 노동에 대한 궁금증이 생기기 시작했다. '왜 이 대상을 그렸지?' '왜 이 구도를 택했지?' '왜 이 색을 사용했지?' 등. 덕분에 그림 보는 일이 재밌어지기 시작했다.



바로 알 수 있는 그림 vs. 알아야 느껴지는 그림

질문을 통해 그림을 해석하는 습관을 들인 후에는 다음 질문이 생겼다. '위대한 예술은 똭! 느껴지는 걸까?' 가끔은 유명하다는 그림을 보더라도 별로 동하지 않았고, '예술을 느끼는 능력이 부족한가' 생각하기도 했다. 예를 들면 모나리자. 여러 미술관과 전시회를 다니며 스스로 깨달은 점은, '각자'에게 똭! 느껴지는 그림과 알아아만 느껴지는 그림이 있다는 점이다.** 마치 먹자마자 맛있는 요리도 있고, 알아야 더 맛있는 와인도 있는 것처럼.



동일한 작가라고 해도 두 가지 다른 분류의 작품으로 다가올 수 있는데, 내겐 모네가 그랬다. 2016년 멜버른 NGV를 방문해서 이런저런 그림을 보고 있었다. 당시엔 인상파는 고흐만 알고 있던 정도였다. <베퇴이유>란 그림 앞에 섰을 때 구조, 색감, 터치를 통해 풍겨 나오는 그 은은함에, 문자 그대로 사로잡혔다. 몇십 분을 그렇게 서 있었다.  반면, 올해 만난 <침대에서 죽어가는 카미유>는 달랐다. 함께 간 친구가 설명을 해주지 않았다면 '이게 모네 작품이라고?'하고 넘어갔을 그림이었다.


(아래 글을 읽기 전에 잠시 그림을 감상하면서 어떤 감정이 드는지 느껴보자.)



거친 터치, 절망적이진 않지만 희망적이지도 않은 색감. 함께 간 친구가 "물을 맞고 있는 사람 아닌가?"라고 오해할 만큼 확실하게 드러나지 않는 형태. 이 그림은 모네의 첫 부인이 죽어갈 때, 그녀를 품에 안고 그린 그림이라고 한다.*** 설명을 들은 후 본 그림 앞에서, 나는 사랑하는 여인의 죽음을 마주하며 그림을 그렸을 한 사람을 상상했다. 그녀가 세상에서 사라지는 마지막 순간, 찰나라도 빠짐없이 남기고 싶었을까? 시간의 제약과 감정을 고려하니 마치 크로키**** 같아 보이며 더 절박하게 느껴졌다. 알아야만 보이는 작품이었다. 이렇듯 나름대로의 두 가지의 분류가 생긴 후에는, 그림 앞에서 느껴지는 감정에 대한 부담이 덜어졌다. 느껴지면 느껴지는 대로, 안 느껴지면 그림 관련 정보를 참조하며, 더 가볍게 즐길 수 있게 되었다.



나는 어떤 스타일의 요리가 좋나면요

외국에서 한식당을 방문한다고 생각해보자. '한국과 똑같은 맛이 좋다' 혹은 '새롭게 재해석한 퓨전이 좋다' 등등 각자의 취향이 있을 것이다. 그림도 양 극단에 '실물과 똑같은 그림'이 있고 '사물과 개념을 재해석한 그림'이 있다. 문화심리학자 김정운 씨는 '인상파가 대중에게 인기 있는 이유'를 이 분류로 설명한다. 똑같은 그림은 정물, 아주 새로운 그림은 현대미술이고 그 중간에 인상주의가 있다. 정물은 해석의 여지없이 그림과 관람자의 거리가 너무 가깝고, 현대미술은 해석의 여지가 많아 거리가 너무 멀다. 못 알아먹을(?) 가능성도 잦다. 인상주의는 명료하진 않지만 풍기는 뉘앙스로 이미지를 해석할 수 있는데, 그 거리의 적절함으로 대중의 인기가 있다고 해석한다. 그의 해석대로 이전에는 인상파가 가장 좋았으나, 요새는 현대 미술도 꽤나 재밌다. 내 맘대로 해석을 채울 수 있는 그 거리가 마음에 들기 때문이다. 


이번 방문 동안, 파리 미술관인 루브르-오르세-퐁피두가 미술의 흐름대로 작품을 배치했다는 점을 알게 되었다. 사물을 생동감 있게 그려내는 정물 위주는 루브르, 어디로 튈지 모르는 현대 미술이 퐁피두고 그 사이의 미술이 오르세에 전시되어 있다고 한다. (현대미술에 익숙지 않은 사람이라면, 퐁피두에서 한 층을 올라갈수록 격한 낯섦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어떤 작품과 나의 거리는 안드로메다 수준이랄까. 격한 충격!) 파리에 방문할 계획이 있는 사람은 자신의 취향에 맞게 방문하고 즐기면 더욱 좋겠다. 

 


* 아크릴 물감은 유화처럼 덧댈 수 있으나, 수채처럼 빨리 마르는 장점이 있는 재료다. 색의 온화함은 유화에 비해 아쉽지만.


**. 물론 그림을 만나는 맥락도 중요하다. 모나리자를 오롯이 감상할 수 있는 환경이 주어졌다면, 알아야만 느껴지는 그림이 아니라 똭! 느껴지는 그림이 되었을 수도 있다. 바글바글하게 모인 사람들 틈새에서 관람하는 모나리자란, 별 감흥이 없었다.


***. 침상에서 그렸다는 설도 있다.


****. 일반적으로 비교적 빠른 시간 내에 대상을 포착하는 그림으로 보통 선으로 나타낸다. 


관련 그림

Claude Monet, Vétheuil (클로드 모네, 베퇴이유) @National Gallery of Victoria, Melbourne (Y2016)

Claude Monet, Camille Monet on Her Deathbed (클로드 모네, 침대에서 죽어가는 카미유) @Musée d'Ors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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