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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솜 Dec 21. 2019

3화 무엇을 그렸고 왜 그렸을까

작가가 무엇을 나누고 싶은 걸까

"어디를 그리고 싶은 지 잘 정해보고, 그려봐요." 


에어비앤비 체험인 <파리에서 예술가 되어보기 Be an artist in Paris>의 강사 Romain이 말했다. 노트르담 성당이 보이는 René Viviani 정원에 의자를 펴고 앉았다. 20분이 주어졌다. 웅장한 두 개의 탑이 눈에 들어왔지만, 올해 화재로 인한 피해를 복구하는 부분에 더 마음이 쓰였다. 안전 철조망과 크레인이 붙어있는 모습이 현재의 노트르담이니까, 지금을 담고 싶었다. 


"복구 작업을 그리고 싶었군요." 어설픈 스케치이지만 Romain이 알아봐 주며 말했다. "모든 작품에는 의도가 담겨 있어요. 캔버스 사이즈 조차 선택이죠. 구성, 구도, 비율 등을 보며 의도를 추측하는 거죠. 더 굵은 선 혹은 진한 색으로 나타내고자 하는 부위를 강조할 수도 있어요." 이처럼 누군가 시간을 들여 만들어낸 작품에는 무언가를 나타내려는 의도가 들어있다. 그래서 누군가의 작품 앞에 서면, 제일 처음 스스로에게 묻는다. '무엇을 나타내고자 한 걸까.'



추론하며 음미하는 즐거움

오르세 미술관 입구에 들어와 한 층 내려가면 종교화들이 전시되어 있다. "나는 종교가 없지만, 신을 향한 마음으로 인간이 만들어 내는 것들은 정말 경탄스러워." 같이 간 친구들에게 말했다. 그러자 한 친구가 되받아쳤다. "믿음으로 그린 게 아닐걸. 당시엔 돈을 받고 의뢰받은 그림을 그리는 사람들도 많았어. 복음을 위해 누가 의뢰한 거겠지." '왜 그렸을까'를 꼭 맞출 필요도 없고, 작가에게 묻지 않는 이상-혹은 작가 스스로도 꼭 집어-정확히 알 수는 없다. 단지 그것을 추론하며 그림을 음미하는 과정이 즐거울 뿐. 


물론 그림에 대한 배경지식이 많다면, 추론하는 데 더 재미가 붙을 수 있다. (물론 창의적 해석을 방해할 여지도 있지만.) 예를 들어 '메멘토 모리 Memento Mori'라는 개념을 보자. 이는 라틴어로 "너의 죽음을 기억하라"인데, 관람자의 유한성 그리고 인간 삶의 짧음과 부서지기 쉬움을 상기시키기 위해 사용된다. 보통 시계, 촛불, 과일 그리고 꽃을 그린다. 여기서 파생된 개념은 '바니타스 정물'이 있다. 'Vanitas'는 허영이란 뜻으로, 덧없이 짧은 생임에도 부리는 허영심을 경계하기 위해 사용된다. 보통 즐거움을 대표하는 와인, 책 그리고 악기 등을 그려 넣는다. 이런 배경을 알고 있다면, 베르나르 뷔페의 <허영>을 만났을 때 그가 그려보고자 한 내용이 금방 와 닿는다. 이미 알고 있어서 재미가 덜하다면 다른 바니타스 정물들과 비교해 보는 방법도 좋다. 반면, 정보가 없어서 활동적으로 음미하게 되는 그림도 있다. 동일한 작가의 <죽음>이란 그림을 보자. 




잠시 스크롤을 멈추고, 뷔페의 <죽음>을 음미해보자. 왜 이 그림을 그렸을까 혹은 왜 이런 방식으로 그렸을 까. 




베르나르 뷔페 전시회에서 <죽음>을 처음 봤을 때 '대체 뭐지?!'라고 생각했다. 내게 죽음은 우울 혹은 두려움에 가까운데, 이 그림은 코스튬 파티를 연상시켰기 때문이다. 그림이 걸려있던 공간의 설명은 대략 이렇다. '노년에 파킨슨 병에 걸려 붓을 제대로 쥐지 못하는 날이 많았다. 죽음이 다가오는 것이 두렵기도 했겠지만, 죽음은 곧 병에서의 해방도 의미했을 것이다.' 설명의 도움을 받아 내 식대로 해석하자면, 그에게 죽음은 화려하지만 볼품없고, 즐겁지만 무서운 것 아니였을까.   



많은 그림 중 볼 그림을 정하는 법 


특정 전시회는 몇 점의 그림이 전시되어 있고 시간을 내어 음미할 수 있지만, 커다란 미술관에 가면 그림이 너무도 많아 선택을 해야 한다. 처음 루브르에 갔을 때 당혹감이 느껴졌었다. 사방을 빼곡하게 채운 그림들. '이 수많은 작품들 중 어떤 것은 음미할 가치가 있고, 어떤 것은 없는 걸까?' '어떤 기준으로 선택하고 그 그림과 시간을 보내지?' 


경험을 통해 체득한 것과 조언을 조합해보면, 먼 거리에서 둘러보고 점차 거리를 좁히는 방식을 정리할 수 있다.  

0) 나는 무엇에 관심 있나를 알아둔다 : 정물, 인물, 풍경 등등

1) 멀리서 주제를 보며 전시실의 그림을 둘러본다. 

     관심 없는 경우 지나치고 관심이 가는 경우 그림 앞에 자리를 잡는다. 

2) 일 미터 정도의 거리를 두고 관찰한다 : 사이즈, 구성, 구도, 비율, 색감 등 

3) 가까이서 디테일을 본다 : 터치, 재료 등 


방을 가득 채운 그림들 속에서 내가 관심 있는 대상을 나타낸 작품들을 쏙쏙 만나보자. 

자, 그럼 이제 미술관을 서성여보자! 



Bernard Buffet, Vanité (베르나르 뷔페, 허영)

Bernard Buffet, La mort (베르나르 뷔페, 죽음)

Alexandre Jean-Baptiste Brun, View of the Salon Carré at the Louvre (알렉상드흐 쟝-밥띠스트 브훈, 루브르궁 살롱 꺄헤** 전망) 



* https://www.tate.org.uk/art/art-terms/m/memento-mori

** 살롱 꺄헤 : 프랑스 왕립 아카데미 전이 열렸던 장소로 정방형의 방인 루브르궁의 응접실을 의미한다. 살롱전(Le salon)이라 불렸는데, 과거 귀족들만 관람이 가능하였다가 1789년 프랑스 대혁명 이후 일반인들에게도 공개되었다. 혁신적인 그림보다 종교화, 역사화를 높이 평가한다는 작가들의 불만이 모여 Salon des Refusés, 살롱 데 르퓌제(낙선자 전)이 탄생했다. 이 전시 출품작 중 논란이 되었던 것이 에두아르 마네의 <풀밭 위의 점심>이다. 


[출처] '매춘부'를 등장시킨 충격의 미술전람회 '살롱' |작성자 코바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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