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토벤 피아노 협주곡 5번 2악장
*2악장 병 : 모든 곡에서 서정적이고 음울한 2악장을 편애하는 증상
세상의 모든 예술가들은 비정규직이다. 교회나 궁정에 소속된 일부 몇몇 대가를 제외하고는 모차르트도 베토벤도 생계를 걱정하며 사는 평범한 예술 노동자였다.
현대에도 일부 스타 음악가들이나 연주 수입이나 음원 수입으로 큰돈을 벌지만 대부분의 예술가들은 항상 먹고사는 것이 걱정이다.
대중 예술가들은 좀 사정이 나을까? 그 분야도 소수의 스타를 제외하면 대부분 자영업에 가까운 고용 형태이니 다들 생계 걱정이다.
특히 2019년 말부터 전 세계로 퍼져나간 코로나 바이러스로 인해 공연예술계는 큰 타격을 입었고, 직접 무대에 서는 예술가들 뿐 아니라 그 업에 종사하는 많은 스태프들이 어려움을 겪고 있다.
베토벤은 차분히 자신의 경력을 쌓으며 1809년 3월부터 루돌프 대공을 포함한 귀족 3명으로부터 '평생 연금'을 받기로 하고 창작 활동에 안정을 기할 수 있었는데 같은 해 5월에 나폴레옹이 군대가 빈을 점령하면서 상황이 급변한다. 피난을 가 버린 귀족들에게서 연금은 중단되었고 빈에 남은 베토벤은 생계를 유지하기는 커녕 생명의 위협을 느끼게 되었으며 그의 난청은 포탄 소리에 더욱 악화되었다고 한다.
그 전쟁의 포화 속에 작곡된 피아노 협주곡 5번의 2악장은 선율이 너무나 아름답고 마음이 고요해진다. 약음기를 끼고 연주하는 바이올린의 섬세한 소리가 폭격을 이겨낸 곡이라고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
그 참혹한 전쟁터에서 베토벤이 이 곡을 작곡할 수 있었던 힘은 조용하고 평화로운 전후 세상에 대한 갈망이었으리라 상상해본다. 그래서 이 곡에 붙은 부제 '황제'는 내게 이질적이다. 베토벤 사후에 악보 출판 업자에 의해 명명된 이 제목은 협주곡의 분위기와 이미지로 명명되었지만 역사적으로 당시 베토벤이 '황제'를 생각하며 썼다는 것에는 동의하기 힘들다.
이 곡을 실제로 연주해보면 복잡하지 않은 깔끔한 선율과 트릴이 마음을 아주 안정시키며 마음의 잡념을 가라 앉힌다. 당시 베토벤에 입장에서 생각해보면 이 2악장이야말로 베토벤이 처한 상황과 완전히 다른 세상을 꿈꾸며 작곡했다는 것을 추측할 수 있다.
인류사에 유례없는 전염병이 창궐하는 이 시기에 동시대를 사는 많은 분들이 이 위대한 작곡가의 아름다운 선율로 위로받기를 소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