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보는 외우는 것이 아니라 몸으로 익히는 것
2022년 반 클라이번 콩쿠르의 최연소 우승자 임윤찬에 대한 찬사가 쏟아진다. 전문가, 비전문가 구분 없이 사람 보는 눈은 비슷하다. 협연하는 지휘자의 엄마 미소를 보니 더 맘이 푸근하다.
사방에서 임윤찬 이야기가 쏟아지니 나까지 뭘 말을 더하나, 했는데 그 어린 소년의 세미 파이널 리사이틀을 보니 눈물이 난다. 프로그램은 리스트의 초절기교 연습곡. 총 12곡으로 시간도 길지만 그 내용이 어마어마하다. 기교적으로도 음악적으로도 대단히 어려운 곡들이다.
무대에서 한 시간 5분 동안 물 한 모금 마시지 않고 쉬는 시간도 없다. 그 소년에게 의지할 것은 흰 손수건 하나. 손에 땀이 나고 이내 온몸에 땀이 흐르지만 그 엄격한 무대에서 자신을 다독이고 다스릴 수 있는 존재는 오로지 자신뿐.
악기를 연주해보지 않은 사람들은 그 긴 곡을 어떻게 외워요?라고 질문한다. 대부분 연주자들이 악보를 외우려고 애쓰지 않는다. 악보는 연습시간이 쌓여 저절로 인이 박히는 것. 안 되는 부분을 따로 잘라서 연습하고 왼손을 분리해서 따로 연습하고 오른손도 따로 연습하고 리듬을 달리해서 연습하고 또 리듬을 다르게 해서 연습하고 양손을 붙여보고 다시 분리해서 연습하다 보면 잘 안 되는 부분이 극복이 된다. 이런 연습을 쪼개고 또 쪼개서 계속하다 보면 머리에서 악보를 잊어도 손이 저절로 가는 단계가 온다. 그것이 연주할 준비가 되었다는 신호이다. 이 신호를 빨리 받으려면 연습량이 절대적이다.
악기 연주는 지름길이 없다. 전혀 없다. 그저 시간과 집중이 쌓여야 결과물이 나오는 정직한 영역이다. 이 과정을 다 알고 학생들을 지도할 때도 이렇게 말하지만 나는 인생에서 항상 지름길을 찾는다. 육아도 일도 사람도 사랑도 지름길은 없다. 하나하나 쌓인 시간과 공으로 결과물이 나온다는 것을 알면서도 인간은 이렇게 우매하다.
저 짧은 콩쿠르 기간 동안 연주한 작품들의 숫자만으로도 임윤찬과 다른 참가자들의 눈물과 고통이 느껴진다. 우승은 임윤찬이 했지만 저 콩쿠르를 준비한 모든 피아니스트들이 승자다. 너무나 뻔한 말이지만 그렇다. 음악은 아름답지만 그 아름다움은 연주자, 작곡자들의 눈물을 먹고 성장한다.
연주가 끝나고 임윤찬의 머리를 보면 장거리 달리기 선수처럼 젖어있다. 그 어린 소년이 살아온 인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