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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남쌤 Jun 08. 2019

철 지난 영화 리뷰

사운드 오브 뮤직으로 본 시각의 세대 차이

나의 십 대를 지배한 영화 세 편- 아마데우스, 사운드 오브 뮤직, 시네마 천국

이 영화 세 편은 비디오테이프(그래, 나 국민학교 나왔다)가 너덜 해지도록 보고, 새로 녹화 떠서 보고, 또 닳도록 봐서 대사와 음악을 다 외웠었다.


작년에 학교에서 수업하면서 활용한 영화 '사운드 오브 뮤직'을 여러 번 다시 보게 되었는데,  신분과 시대를 초월한 낭만적인 사랑 이야기로 보던 십 대의 느낌과는 확연히 달랐다.


예전엔 엄마 잃은 7남매의 결핍이 보였는데, 지금은 7남매를 길러야 하는 가사노동이 보인다.

엄마 없이 자라나는 가여운  아이들. 아버지는 엄격하기만 하고 일곱 명의 남매를 통제하려니 군대처럼 제식훈련을 하고, 가축을 부를 때나 쓰는 휘슬로 아이들을 부르고.. 내가 아이들의 입장이었으니 그 아이들의 애정 결핍이 보였다. 그러나, 40 중반의 고만고만한 아이들을 기르는 엄마가 되어 영화를 다시 보니, 부잣집이어서 빨래나 요리를 직접 할 필요는 없지만 아이들 교육부터 고민까지 엄마가 보듬어야 하는 영역이 보이는데 자그마치 아이들이 일곱 명!!! 도가니가 아파오고 오십견이 오는 거 같다.


예전엔 I’m sixteen, going on seventeen~’ 노래가 나오는 큰딸 리즐과 우편배달부 랄프의 씬이 심장을 떨리게 했는데, 이제는 마리아와 폰트랩 대령이 서로의 마음을 확인하는 씬에서 심쿵!

어릴 땐 폰 트랩 대령이 그저 그런 아저씨였는데, 지금 보니 세상 잘 생긴 데다, 심지어 당시 30대 후반의 나이. 슈레이더 남작부인은 여우 같은 중년인 줄 알았는데, 목에 주름 하나 없는 늘씬하고 재력 있고 쿨한 여인.

남작부인 때문에 마리아와 대령의 사랑이 이루어지지 않을까 봐 안타까웠는데, 지금 생각하니 남작부인이야말로 돈 있어, 미모 있어, 자유롭게 이 남자 저 남자 만나면 되지, 뭘 그 나이에 새삼 결혼씩이나 하고, 7남매 엄마를 하려고 하시나. 아무리 잘 생긴 게 최고라지만 어서 도망쳐!라고 얘기해주고 싶으나, 역시 똑똑한 여인이라 쿨하게 열정 없음을 탓하며 퇴장!


예전엔 아이들을 가르치며 엄마 같은 사랑을 나누어 주고, 자신도 모르게 폰트랩 대령에게 빠져드는 마리아의 지순한 사랑이 아름다웠는데, 아는 동생이 지금 저 결혼한다 하면 등짝 스매싱을 날릴 듯. 처녀가 남의 자식 일곱을 키운다니. 수녀원에서 나와 세상 물정 모르니 저러지.

마리아의 엄마가 한국 드라마의 주인공이었다면, 당장 대령의 저택으로 쳐들어가 순진한 내 딸, 수녀원에서 기도나 하던 애를 무슨 수로 꼬셔서 결혼 운운하냐며, 애가 일곱이나 딸려서 염치가 있냐고!! 집안을 뒤집어 놓을 듯. 아침 드라마 스타일의 막장 드라마 2회분이 나올 듯하다.


그 부잣집 애들에게 엄격한 잣대를 들이대며 검소하게 사는 아빠. 돈 쌓아두면 뭐하누, 주지도 않고..

철 지나서 버리려는 커튼 쪼가리로 애들 옷을 지어 입히는 순진한 처녀 선생. 애 아빠 버릇 그렇게 들이면 안 됨.. 이 둘의 만남은 해도 너무 한 듯.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러 고비를 넘겨 오직 사랑뿐인 로맨틱한 결혼에 골인하지만, 독일 정부에 밉보여 블랙리스트에 오른 대령은 전재산을 버리고(왜?!) 대가족을 이끌고 조국인 오스트리아를 탈출한다.

정의로운 사람은 나라에 좋지, 남편으로 좋을 리가 없지..

어릴 때는 영화의 끝이 해피 엔딩이어서 좋았으나, 지금은 엔딩이 시작으로 와 닿는다.


재산은 놔두고 도와주던 집사 하나 없이 망명을 했으니 모든 일은 스스로 해야 할 텐데, 대령이 집안일을 해 봤을 리가 만무하고, 애들은 어리니 1, 2번 아이들과 마리아는 가사 노동에 총력을 다해 투입되었을 듯.

아이들 일곱 명에 어른 둘, 총 아홉 식구의 식사와 빨래만 해도 어마어마할 듯. 삼각김밥에 사발면, 초코 우유 하나씩만 먹어도 한 끼에 3만 원인데, 최소한의 식비로 살아도 하루에 10만 원. 월세와 다른 생활비를 합치면 숨만 쉬어도 월 6백은 필요할 터. 그 잘 생긴 대령이 목 늘어난 티셔츠 입고 거실에 앉아 있을 생각 하니, 남의 집 일인데 한숨이 나온다. 아이구야....

10대가 보는 세상과 40대가 보는 세상이 이리 달라질 줄이야. 사랑이 밥 먹여주는 줄 알았던 그 시절이 그립다. 나이는 확실히 먹은 게 분명하고, 꿈과 희망 대신 현실감각과 숫자 계산으로 머릿속이 채워졌다. 슬프다. 나이만 먹고 철은 안 들고 싶다.


*사진의 저작권은 20세기 폭스사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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