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번 빠지면 헤어 나올 수 없는 민요의 치명적 매력에 대한 보고서
자주 가는 요리 사이트의 자유게시판에서 '이 노래 정말 매력적이에요, 들어보세요'라는 글을 클릭하지 않았다면 나는 여전히 국악에 대해 관심도 흥미도 없었을 것이다.
하늘 아래 새로울 것이 없는 예술 분야에서, 이렇게 오래된 음악이 이렇게 새로울 수 있다니! 민요는 한 많은 노인들이 부르는 것일 줄로만 알았던 무식한 내게, 새로운 음악세계가 확장되는 순간이었다.
이 매력적인 밴드를 유튜브에서 보자마자 뭔가에 홀린 듯 검색을 시작했고, 바로 다음 날 연남동의 '채널 1969'에서 공연을 한다는 소식을 접했다. 이런 강렬한 끌림은 오랜만에 느껴보는 것이어서 퇴근을 서두르고, 아이들 밥을 먹이고 남편에게 조기퇴근을 종용한 뒤 바톤터치를 하고 공연장으로 날아갔으나, 선착순에서 잘리는 불운을 겪었다. 그래도 포기하지 않고, 음원을 들으며 팬카페에 가입을 하고, 이 신선한 밴드의 공연을 네 번이나 보게 되었다. 매 공연마다 친구들을 데리고 갔는데, 이 밴드의 음악을 처음 듣는 친구들도 다 같이 떼창을 하는 경험을 하게 되었다. 우리 피에는 민요가 흐르는 줄 그제야 깨달았다.
이제 씽씽은 해체되었지만, 나의 관심은 민요에서 판소리로, 기악으로 더욱 확장이 되었다.
민요의 가사를 듣다 보면 찌르르하며 울컥하는 순간이 오는데, 그 오래된 가사를 살펴보면 우리 조상들이 얼마나 지독한 사랑꾼이었는지를 알 수 있다.
경기민요 '청춘가' 중
가슴 아픈 사랑 한 번 안 해본 사람이 있겠는가..
잊으려니 병이 된다는 이야기를 담담하게 노래하니 슬픔이 더 북받친다.
경기민요 '창부타령' 중
경기민요 '갈까보다' 중
숨기지도 못 하고 스며드는 사랑에 애태우다 가족들도 버리고 사랑 따라 나서는 바보같은 낭만. 그 사랑 후에 오는 잊지 못하는 아픔. 우리 민요에 흐르는 사랑 이야기다.
이 가슴 아픈 사랑 노래의 정점에 있는 민요가 있다. 양반댁 아씨를 사모하는 종놈의 이야기. 신분 차이로 좋아한다는 말 한 번 못 건네보고, 아씨는 곱게 단장하고 시집을 간다. 종놈은 아씨를 태운 가마채를 잡고 울먹이고 아씨는 종놈을 달랜다.
서도민요 '자진아리' 중
아씨는 종놈에게 시집간 데로 머슴 살러 오면 헤진 버선 기워준다는 이야기를 한다. 사랑하는 여인이 결혼한 곳에 머슴 살러 갈 수가 있겠는가.. 아씨도 종놈도 온통 눈물바람이었을 듯.
이 절절한 사랑을 노래하는 민족이라니, 정말 로맨틱하지 않은가.
신나는 민요에서 나오는 흥도, 이 지독한 사랑 타령에서 나오는 낭만도 다 우리의 DNA에 각인되어 있다. 거부하지 말고 일단 들어보시라, 빠져들게 된다.
*재즈반주로 편곡한 이희문&프렐류드의 ‘자진아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