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정한 동심 파괴
랄랄라 랄랄라 랄라라라랄라랄라라
랄랄라 랄랄라 랄라라라랄라랄라라
랄랄라 랄랄라 랄라라라랄라랄라라
랄랄라 랄랄라 랄라라라랄라랄라라
먼동이 터 오는 아침에
길게 뻗은 가로수를 누비며
잊을 수 없는 우리의 이 길을
파트라슈와 함께 걸었네
하늘과 맞닿은 이 길을
랄랄라 랄랄라 랄라라라랄라랄라라
랄랄라 랄랄라 랄라라라랄라랄라라
랄랄라 랄랄라 랄라라라랄라랄라라
랄랄라 랄랄라 랄라라라랄라랄라라
파트라슈~
'만화영화'라는 단어를 발음해 본 지도 오랜만이다.
내가 어렸을 때(1980년대 초중반)는 오후 5시 반이 되면 아이들이 놀이터에서 싸악~사라졌다. 그때부터 시작되는 만화영화들로 어린이들의 '안방극장'이 펼쳐지기 때문. 지금처럼 채널이 수 백개라던지, IPTV 같은 건 상상도 못 하던 시절이었다. 오직 공영방송 채널 3개, 문화방송 1개의 심플한 채널만 있었고, 그나마도 본방을 사수하지 못하면 재방송을 해주지 않는 한, 영영 다시 볼 수 없는 시절이었다.
그 시절에 얼마나 많은 만화영화들을 보며 가슴이 설레었나. '들장미 소녀 캔디'를 보면서 '이라이자' 뒷담화를 하고, '톰과 제리'를 보면서 데굴데굴 구르며 웃고, '독수리 오형제'를 보며 정의감에 불타던 어린이들. 목에 보자기를 두르고 고무장화를 신으면 지구를 구할 수 있었던 그 시절.
그중에 가장 먹먹하고 충격으로 남은 만화영화가 있었으니, 바로 '플랜다스의 개'.
이 만화는 1975년에 발표되었으나, 우리나라에서는 1981~1982년도에 방영되었다.
아이들이 동경하는 큰 개가 학대당하다 네로에게 구출되고, 개 주인이 다시 소유권을 주장하자 낙심하는 네로.
그 네로와 파트라슈를 위해 없는 살림에 돈을 쥐어짜서 포악한 주인으로부터 파트라슈를 구해주는 할아버지. 하루하루 성실하게 살아가는 두 조손에게 희망은 별로 없어 보인다.
동네 유지의 딸 아로아가 네로를 좋은 친구로 여기며 네로의 그림에 대한 재능에 용기를 북돋워 주지만, 가난한 놈이 그림이나 그린다(문화콘텐츠 사업이 얼마나 유망한데.ㅉㅉ)며 무시하는 아로아의 아버지 코제트의 반대로 둘의 교제는 반대에 부딪힌다.
*이건 저번에 게재한 사운드 오브 뮤직과 달리, 나이 먹어서 봐도 이해 안 되는 부분이다. 얘네들 기껏해야 초등 4, 5학년 정도인데 그 둘을 반대하고 말고 할 게 뭐 있냐 말이다.
평소 네로가 존경하는 화가 루벤스의 정신을 기리며 열리는 그림 경연 대회. 이 대회에서 수상하면 상금 200프랑과 미술 공부를 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다는 정보를 입수한 네로. 희망에 부풀어 올라 대회를 준비한다.
그 와중에 할아버지는 생활고와 노환으로 네로를 혼자 남겨두고, 네로의 엄마 곁으로 돌아간다. 세상천지 혼자 남은 네로는 우유배달을 하면서 그림 대회를 준비한다.
할아버지와 파트라슈를 그린 진정성 있는 네로의 작품은 심사위원들의 호평을 받지만, 미술 교육을 정식으로 받은 학생들의 테크닉에 밀린다. 결국 대상은 좋은 선생님의 레슨을 받은 부잣집 아들에게 돌아간다. (세상이 원래 좀 그렇다) 네로는 큰 충격을 받는다. 미술 교육을 받을 수 있는 기회를 놓치게 되었으니 이제 그에게는 희망이 없다.
그 와중에 동네에 있는 풍차에 불이 나고, 하필 그때 아로아에게 인형을 가져다준 네로가 방화범으로 지목되는 불운이 겹친다.
크리스마스를 맞아 아로아의 아빠, 코제트는 은행에서 2000프랑의 대출을 받아 사업을 확장하려 하는데, (역시 돈은 돈이 버는 것) 집에 돌아오는 길에 분실하고 만다. 이 돈을 찾겠다고 크리스마스이브에 직원과 함께 눈보라 속에서 돈을 찾아 헤매는데, 직원이 이 눈 속에서는 찾기 힘들다고 하자, 그 돈을 못 찾으면 네 월급도 줄 수 없다는 코제트! ( 진짜 나쁜 놈이네. 본인 부주의로 돈을 잃고 왜 직원 월급을 엮어? 이거 노동부에 고발해야 함)
그동안 파트라슈는 눈에 묻혀있던 돈 주머니를 찾아 네로에게 주고, 주인공 네로는 이런 큰돈의 주인은 코제트일 거라 생각하고 아로아의 집을 방문한다. 아로아의 어머니는 너무 고마워하며 음식을 대접하려 한다.
하루 종일 굶은 데다 눈길을 헤매던 파트라슈는 잠이 들고, 네로는 빈집에 할아버지가 기다리고 있을 거 같아서 가봐야 한다며 파트라슈를 부탁하고 아로아의 집을 나선다.
네로는 월세도 밀리고 돈도 희망도 없으니 파트라슈를 부탁하고 인생의 마지막을 계획하고 나선 것이다.
집에 돌아온 코제트는 돈을 찾아준 네로를 찾았으나 이미 집도 깨끗하게 정리되어 있는 상태. 그때 그 집으로 미술 대회 심사위원 중 한 명이 찾아와 그 대회의 진정한 1등은 네로라며, 자신이 네로의 미술 교육을 책임지겠다고 한다.
진정한 1등.. 아.. 그딴 거 말고 진짜 서류로 줬어야지.
찬바람과 눈보라가 치는 겨울에 길을 나선 네로는 평소에 보고 싶던 그림이 걸려 있던 성당에 마지막으로 들어가고, 소원하던 그림을 보게 된다.
차가운 성당 바닥에 누워있는 네로에게 다가와 마지막을 함께하는 파트라슈.
그때 흐르는 음악은 슈베르트의 '아베마리아'.
아로아는 차가운 바닥에서 눈을 감는 네로의 마지막 순간을 예감하고 네로의 집을 뒤쳐 나온다.
네로와 파트라슈의 영혼을 천사들이 데려가며 엄마와 할아버지가 있는 먼 나라로 간다고 한다.
그곳은 춥지도, 배고프지도 않고 행복할 거라고. '내 주를 가까이하게 함은'의 노래가 눈물과 함께 흐른다.
이게 끝이야? 네로랑 파트라슈가 죽어? 루벤스 그림 보고 싶다는 그 소원 하나 이루고?
당시 7세였던 나는 너무나 큰 충격을 받았고 말 그대로 꺽꺽대며 대성통곡을 했다. 그 날 저녁밥을 먹지 못 한 것 까지 생생하게 기억난다. 그 어린아이 하나 마을이 품어 주지 못하고, 영양실조에 동사라니.
한 동안 만화를 보지 못 할 정도의 큰 충격을 받았고, 그 후유증은 정말 오래 남았다.
그 기억을 되살리며 다시 한번 만화를 보니, 이 작품은 나이 먹어서 봐도 그때 그 감정이 그대로 살아났다.
1시간 반 짜리 단편용으로 만든 '플란다스의 개'를 다시 보며, 44세 아줌마는 7세의 어린아이로 돌아갔다.
세월이 흘러 마음이 많이 단단해진 줄 알았는데, 아직도 내 속에 어린아이가 있다.
*유튜브에 1시간 반짜리 편집본이 있습니다. 추억에 잠겨 보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