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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남쌤 Jun 24. 2019

남자아이 키우기 02.

나한테 왜 이러니, 응?

좋아하는 공연을 보러 가려고 준비하는 평화로운 토요일 오후, 둘째 아들의 같은 반 친구 엄마로부터 톡이 왔다.

'내일 3시에 신바람마트 앞에서 아이들 만나서 록이네 차로 서대문 자연사 박물관 간다는데 맞나요?'

'제가 아이들을 태우고 박물관에 간다고요? 처음 듣는 이야긴데요. 그렇게 구체적으로 약속을 해 놓고 저한테는 말도 안 했나 봐요'

'준이가 그렇게 하기로 했다고 하는데, 록이 엄마 혼자서 힘드실 거 같아서 연락드렸어요'


공연 보러 가는 차 안에서 자초지종을 물으니, 학교에서 시간 맞는 아이들끼리 박물관에 가서 조사하는 숙제를 내줘서 남자아이들 4명이 그렇게 하기로 했단다.


"그럼 엄마한테 말을 해야지? 당장 내일인데 운전해서 데려가야 하는 엄마가 모르고 있으면 어떡하니? 그리고, 다른 집들도 준비를 하고 있을 텐데 너 혼자만 걸린 문제가 아냐! 그리고, 보호자 없이 아직 어린 4학년 남자아이 네 명을 차에 태우고 왕복 1시간 걸리는 곳에 가는 건 곤란해. 친구들 전화번호 아니?"

"아니요, 몰라요."

허허허. 나머지  두 명의 친구들 이름을 알아내서 아이반 학부형 단체 톡방에 알렸다.

균이와 은이 엄마 계시면 공공기관 방문 숙제 건으로 개인 톡 달라고.


다행히 연락이 금방 닿아서 4명의 엄마들이 톡을 시작했다.

보호자 없이 혼자 아이들 데리고 가는 건 부담스러워서 그러니, 공공기관 방문해서 조사하는 숙제의 장소를 바꿔보자고 제안했고, 엄마들은 반겼다.

다른 엄마들도 내가 데려간다는 것을 알고 있었으나, 은이 엄마는 아이가 농담하는 줄 알았다고.

우리는 걸어서 조사할 수 있는 동네 파출소에서 일요일 오후 3시에 만나기로 했다.

둘째가 1학년 때 그린 그림, 해맑다. 정말 해맑기만 하다.


약속된 시간이 다가오는데, 록이는 화장실에서 독서 중이시다. 어서 나오라고 재촉하는데도 느릿느릿.

파출소에 가서 뭘 물어볼지 생각했냐고 물으니, 아무 생각이 없다.

네가 인터뷰를 해야 하니, 뭐가 궁금한지 써보자고 살살 달래 가며 질문을 4가지 정도 적게 했다.


파출소 앞에 가니 어린 동생이 있는 준이 엄마를 제외하고는 엄마들도 같이 오셨다. 우리는 파출소에 들어가 경찰분께 아이들 숙제로 공공기관 방문해서 조사를 해야 하는데, 바쁘지 않으시면 아이들 인터뷰에 응해 주실 수 있냐고 여쭈었다. 경찰 아저씨는 너무나 친절하게 아이들을 맞아 주셨고, 넓은 책상에 둘러앉아 아이들 이름을 한 명, 한 명 물으시며 아이들 질문도 받아주시고, 본인이 하고 싶은 얘기도 해주셨다.


그동안 엄마들끼리 수다가 벌어진다.

은이 엄마(이 집은 나처럼 아들 둘)는 아이가 록이네 차를 타고 박물관에 가야 한다는 말을 들었을 때, 믿지 않았다고 한다. 아들 말은 일단 믿지 않으신다고. 그래도, 숙제라고 하니 가족들끼리 박물관에 가려고 하셨단다.


균이 엄마는 중학생 누나가 한 명 있고, 4학년 균이가 아들이다. 아이들이 정해진 양식에 인터뷰 내용을 적는 것을 보고는 "숙제는 모둠에서 한 명이 대표로 제출하나요? 우리 아이는 양식을 안 받은 거 같은데.."

"아니요, 각자 내는 거예요, 가방을 뒤져보면 나올 거예요. 저는 항상 아이 가방을 확인합니다. 안 그러면 공지사항 같은 걸 전달받지 못해요" 내가 대답했다.

은이 엄마도 가방을 뒤져서 알림장 사이에 껴 있는 양식을 본인이 챙겨 오셨단다.


내가 균이 엄마에게 "따님 키우다가 아들 키우시니 한숨 나오시겠어요.." 하니, 너무 반가운 얼굴로 대답한다.

"이게 정상인 거죠? 어디 물어볼 데도 없고, 모자란 건가 고민했어요."

"정상이에요. 모지리들입니다." 내가 대답했다.   

"모지리 맞아요, 둘째까지 아들만 키워보니 확신했어요" 은이 엄마도 동의한다.


가방은 뒤죽박죽, 전달사항은 다 먹어버리는지 내게 오지도 않으니 내가 찾는 수밖에. 아들 키우는 엄마들은 다들 고개를 끄덕인다.

'그래도 이런 모지리들이 자라서 일가를 이루고 가장이 되고, 돈을 벌고 하니 참 신기하지요.' 하니, 다들 웃음이 번진다.


아이들은 인터뷰를 무사히 마쳤고, 경찰 아저씨에게 감사 인사를 하고, 파출소를 나섰다. 숙제를 무사히 마쳤다는 안도감에 엄마들도 여유 있는 표정이다. 아이들은 뜨거운 햇살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자기들끼리 장난을 치며 여전히 해맑다.


저 해맑은 모습이 그래도 오래갔으면 싶다.


둘째가 7세 때 그린 '본인의 뇌구조'

*둘째 아이가 유치원에서 쉬는 시간에 그려온 그림이다. 본인의 뇌에 있는 생각들을 그린 그림인데, 내용이 정말 웃긴다. 아침에 일어나서 소리 질르기, 여자'에'들, 똥 싸기, 먹을 것, 게임...

40대 남자의 뇌구조와의 차이점을 찾아볼 수 없다. 유치원은 회사로 바꾸고, 터닝 메카드는 오디오나 차로 바꾸면 20대부터 80대까지의 범용 뇌구조로 쓸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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