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 mio babbino caro 그리고 첫 키스
이 영화를 빼고 내 고등학생 시절을 얘기할 수 있을까..
여학생만 다니는 여고에 입학 해, 처음엔 학교에 여학생만 있는 게 어색했으나 시간이 흐르면서 여자들끼리 있을 때 특유의 편안함을 느끼게 되었다.
당시 고등학생 시절은 선생님 말씀에는 무조건 복종을 해야 했고, 때리면 그저 맞고 시시비비 가릴 생각도 할 수 없던 그런 시절이었다. 여학생들은 욕이란 걸 거의 하지 않으며(극소수의 노는 친구들 제외), 외부에서 남학생 만날 일도 없는(나만 그랬나..) 수도원의 수도승 같은 생활을 했다. 그래서, 여자 친구들끼리 더 잘 놀고 붙어 다니며 재밌는 책과 영화를 권하고 그랬던 시절이었다.
돌이켜 보니 책 좀 읽고, 고민도 많아 나 스스로가 어른답다고 느꼈던 그 시절의 나는 그저 덩치 큰 아기였을 뿐이다. 방구석에서 독서하고 피아노 치고, 노래하는 게 유일한 스트레스 해소였는데, 피아노 치는 게 입시 준비가 되면서부터는 영화로부터 많은 위로를 받았다.
고등학생 시절, 나를 위로한 영화 중에 가장 기억나는 두 편이 있는데, 하나는 유명한 '시네마 천국'이고, 나머지는 '전망 좋은 방'이었다. 두 영화 다 음악이 전부인 영화다.
전망 좋은 방... 제목만 떠 올려도 떠오르는 노래, 오 미오 바비노 까로. 사랑하는 나의 아버지..
https://youtu.be/cyQ4vkTwc4E (스마트폰에서는 주소를 클릭하세요. 영상을 누르면 재생 불가)
한 번도 가본 적 없는 피렌체를 열망하게 만들어 준 영화. 그곳에 가면 루시와 조지가 본 멋진 풍경을 보게 되리란 기대를 갖게 되었고, 피렌체 여행에 대한 꿈을 키우고 결국은 실현하게 되었다.
엄격하게 통제된 인생을 살고 있는 루시는 이탈리아 피렌체 여행에서 만난 자유로운 영혼의 조지에게 사랑을 느끼지만, 일상으로 돌아온 후 부모님이 좋아하는 답답한 남자 세실과 약혼을 하게 된다. 그런데, 이 남자랑은 대화조차 불가능하다. (아베나 담마진씨 같은 불통을 느낀다.)
루시의 동네로 이사 온 조지 부자. 이 우연으로 루시는 흔들리고 약혼자와의 사랑을 다시 확인해 보지만, 진실하고 뜨거운 사랑과 자기 자신의 존재감을 조지로부터 찾게 된다는 흔해 빠진 러브 스토리의 영화다.
그러나, 영화 전반에 흐르는 이탈리아의 풍경과 1900년대 초반의 섬세한 의상, 소품, 음악이 얼마나 멋진지 비디오테이프(나는 그 세대)로 10번 이상 보았다. 특히 조지가 루시에게 처음으로 키스하는 풍경은 아무것도 모르는 여고생인 내게 큰 떨림을 주었다. 허벅지를 넘나드는 풀이 있는 언덕 위에서 서로가 자석처럼 이끌려 키스하는 풍경은 사랑을 글로 배우던 내게 사랑에 대한 환상을 크게 심어주는 역할을 했다.
피렌체를 배경으로 한 많은 소설과 영화가 있지만, 이 영화와 소설만큼 뛰어나게 아름다운 묘사는 내게는 없었다. 쥐스킨트의 소설 '향수', 에쿠니 가오리의 소설 '열정과 냉정 사이'에도 피렌체가 나오지만, 그들의 피렌체보다는 포스터의 소설 ' 전망 좋은 방'의 피렌체가 사랑스럽다.
커피 한 잔 진하게 내려 푸치니의 'o mio babbino caro'를 들어보자. 마음에 온통 제비꽃이 뒤덮인 언덕이 펼쳐진다. 루시와 조지가 첫 키스 했던 바로 그 언덕 말이다.
*위 사진의 저작권은 제작사인
Channel Four, Curzon, Goldcrest, Merchant-Ivory, National Film Finance 에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