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남자들은 눈치가 없는가..
우리 동네에는 정말 맛있는 중국집이 있다. 일반적인 중국집이 아니다. 주방은 너무 깔끔하고, 오너 셰프 포함 요리사와 스텝들이 흰색 티셔츠를 입고 일한다. 더러워지면 하루에도 몇 번씩 갈아입는다고 한다.
기름때 낀 주방에서 땀에 절은 러닝셔츠를 입고 만드는 요리를 누가 좋아할 수 있겠나... 할 수 없이 먹기는 하겠지만. 이 식당은 위생면에서 일단 합격이고, 맛은 더할 나위 없이 훌륭하다.
주문을 받으면 그 자리에서 조리를 시작한다. 짜장면을 주문하면 만들어 놓은 짜장 소스를 부어 주지 않는다. 무조건 새로 짜장을 만들고, 면을 제면하여 서빙해준다. 모든 메뉴를 이렇게 만들어주니, 채소는 아삭하고 고기와 해물은 재료의 즙이 입안에서 터진다.
이런 맛을 유지하며 요리를 해 주니, 이 집에서는 한꺼번에 식사를 할 수 없다. 요리를 먼저 서빙해주고, 식사는 각자 차례로 하나씩 시차를 두고 서빙해준다.
그래서, 먼저 나온 사람의 메뉴는 공공재로 전락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아이들 것이 먼저 나오면 나는 애들이 잘 먹지 않는 채소를 건져 먹으며 내 식사를 기다리는데, 오늘 사달이 났다.
작은 아들의 짜장면이 나오자 남편이 아들의 면을 고기와 함께 크게 한 젓가락 드신다. 헉! 짜장 소스나 한 숟가락 드실 것이지..
둘째 아들의 항변이 이어진다. '이따가 아빠 것도 한 입 주세요! 꼭이요!'
큰 아들의 동파육 마라탕면이 나오자 남편이 숙주를 집는다. 큰아들은 숙주를 좋아하니까, 나는 아들이 잘 먹지 않는 청경채를 집는다. 역시, 큰 아들의 항변, '저 숙주 좋아한단 말이에요!'
남편이 살짝 주춤하며 속도를 조절하더니, 급기야 새우 한 마리를 건져 드신다. 헉!!!
중국요리에서 탕이 주는 의미를 생각해보자. 매콤한 국물에 아삭한 채소, 주인공은 동파육이었지만, 새우는 주재료가 아닌가?!! 이걸 주인장의 윤허 없이 과감하게 집어 먹을 수 있는 것인가? 이것은 도발이다.
사춘기에 접어들어 목소리가 변한 아들이 갈라진 하이톤으로 외친다.
'새우를 드시면 어떡해요?'
남편은 한 껏 억울한 표정이다. 이게 나라냐? 하는 얼굴이다.
'야! 너 다음부터 나한테 아이스크림 한 입만 하지 마!!! 앞으로 절대 안 줄 거야! 오늘부터 잘 두고 봐, 앞으로 너한테 미칠 손해가 얼마나 클지!!'
40 중반의 남편이 6학년 아들과 나누는 고품격 대화이다. 위계에 의한 협박이라니. 부자간의 긴박한 심리전을 느낄 수 있다.
남편의 식사가 나오자 이내 우리 테이블은 고요해졌다.
대강 남편도 식사를 마치고, 아들들도 다 먹어가는데 남편이 큰아들 그릇에서 목이버섯을 집는다. 큰애는 목이버섯을 먹지 않는다.
아들 : '아, 왜 내 거 또 가져가요?'
남편 : '너 목이버섯 안 먹잖아'
아들 : '안 먹어도 아빠 안 줘요, 엄마 줄 거예요'
나 : '나 목이버섯 안 좋아해'
아들 : (기어이 아버지 젓가락에 있는 버섯을 빼앗아 내 접시에 주면서) '싫어도 먹어요, 아빤 안 줘요'
졸지에 가족 비호감으로 전락한 남편, 이게 다~눈치가 없어서 그런거다.
* 이 글을 '남자아이 키우기'에 넣어야 하나 진지한 고민을 했으나, 결국 내가 키우는 것은 아들 셋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이 글은 이 카테고리가 맞다.
* 이 글에 올라간 사진은 단골 중국집에서 먹은 음식들이다. 오늘은 너무 정신 없이 웃느라 사진을 찍을 수 없었다. 그래서 다른 사진들로 대체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