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남쌤 Jul 27. 2019

비싼 악기가 소리도 좋은가요?

항상 궁금했던 악기 가격 대비 소리의 품질

결론부터 얘기하면 '대체로' 그러합니다. 그럼 초보자는 어떤 악기를 사야 하나요? 전공자는요? 제가 하나하나 차근차근 알려드리겠습니다.


초등학교 입학을 하면 엄마에게 끌려가서 배우는 피아노, 한 번씩 경험이 있으실 거예요. 학원에서 처음 치는 피아노는 아마 십중팔구 상태가 안 좋았을 겁니다. 여러 아이들이 연주 전에 손을 씻지도 않고, 손에서 끈끈이가 나오는 꼬꼬마들이 주먹으로 치기도 하고, 팔꿈치로도 공룡으로도 연주하니까요. 그래서, 학원에서는 대체로 저렴한 중고 피아노로 개업을 합니다. 그런 피아노들은 관리가 잘 안되어 있어 소리가 참 듣기에 힘듭니다.


대형 연주장에는 전속 조율사들이 있고, 좋은 품질의 피아노가 구비되어 있습니다. 연주 전에 이 분들이 조율해준 그랜드 피아노를 한 번 쳐보면 느낌이 참 좋습니다. 아무도 밟지 않은 붉은 벨벳 카펫을 내가 제일 먼저 밟은 기분입니다.


피아노는 누구에게나 평등한 악기입니다.

피아니스트들은 자신의 악기를 갖고 다니며 연주할 수 없기 때문에 공연장에 있는 피아노에 바로 적응해야 하는 직업적인 숙명이 있습니다. 그러니, 악기 가격에서 그나마 좀 더 자유로울 수 있죠. 물론 탑 연주자들은 좋은 브랜드의 콘서트 그랜드 피아노를 소유하고 있지만, 현악기만큼 비싸지 않습니다.


피아니스트를 제외한 솔로 악기 연주자들은 자신의 악기로 연주하기 때문에, 악기의 품질이 연주를 좌우합니다. 장인은 연장을 탓하지 않지만, 연장이 좋으면 장인도 빛을 더욱 발하죠. 게임에서 아이템빨이 중요하듯 같은 실력의 연주자들끼리 비교했을 때, 좋은 악기를 들고 연주하면 달리기나 쇼트트랙에서 인사이드로만 달리는 정도의 효과가 있습니다.


제가 중학생 때 플루트에 미쳐서 하루에 3시간씩 입술이 부르트고 수증기가 줄줄 맺혀 떨어지도록 연습했습니다. (건반이나 현악기와 달리 부는 악기는 쉬지 않고 3시간씩 하기 어렵습니다) 처음에 소리 내기가 비교적 쉬운 플루트는 어느 정도 수준까지 도달하기가 그나마 괜찮습니다. 그러나, 배의 힘을 조절해 호흡의 속도로 고음을 내야 하는데, 여기서 소위 말하는 '삑사리'가 잘 생깁니다. 아무리 연습을 해도 내가 기대하는 맑고 고운 소리가 안 납니다. 복막을 밀어 호흡의 밀도를 높여도, 복근으로 호흡을 조여도, 입술 모양을 이리저리 바꿔봐도 소리가 맘에 안들 때, 친구의 헤드 실버 플루트를 불어 보았습니다. (플루트는 3개로 나뉘어 조립해 사용하는데 입술이 닿는 머리를 헤드라고 함. 이 부분이 은으로 된 것은 헤드 실버, 전체가 은이면 올 실버, 금이면 올 골드라고 함)


이미 지칠 대로 지쳐서 배에 힘도 주지 않고 그냥 되는대로 대충 스케일을 불어 보았습니다.

앗!!! 기대한 소리가 납니다. 자세를 고쳐 앉고, 제대로 해보았더니 황홀한 소리가 납니다. 나도 이런 소리를 낼 수 있구나... 헤드 실버가 이 정도면 올 실버는 소리가 실크 같겠구나.. 처음으로 욕심이 생겼습니다.  


그래도, 관악기는 현악기처럼 억 소리 나게 비싸지 않습니다. 금속을 가공하여 만드니까요.

*관악기도 목관악기와 금관악기로 나뉘는데, 이 분류는 나중에 한 번 더 다루겠습니다.


현악기 제작자 선배님의 공방 벽에 붙은 사진과 브릿지들


현악기는 좀 더 복잡합니다.

우리가 잘 아는 바이올린, 첼로 등 현악기는 일단 나무가 주재료입니다.

나무의 종류와 건조 상태, 원재료부터 큰 차이가 납니다. 장인이 밀도 높은 나무를 가공해 천천히 건조하여, 소리가 깊게 나도록 짧게는 몇 년에서 수십 년까지 관리하여 만든 현악기와 대량으로 공장에서 프레스로 찍어 만든 악기의 소리는 당연히 차이가 큽니다. 장인이 하나하나 현악기의 뒤판을 균일하게 아름다운 커브로 깎아내고, 자신만의 바니쉬(악기 제조 후에 바르는 코팅제. 장인마다 배합비율이 다르고, 바르는 횟수, 두께에 따라 악기의 음색이 달라진다.)를 정성스레 바르고, 건조하는 과정은 그야말로 예술작품을 빚는 일입니다.


우리가 흔히 아는 스트라디바리우스, 과르네리 델 제수 같은 현악기들은 수십억 대를 호가하는데,  앞의 과정을 거쳐 악기 소리도 좋지만 희소가치 때문에 더욱 그렇습니다.


제가 첼로에 빠져서 하루 종일 밥 먹고 연습만 할 때가 있었습니다. 그때 제가 구입한 악기는 국내산 공장제 중 가장 저렴한 기본 첼로(35만 원)에 스트링만 수입산(10만 원)으로 바꾼 것이었습니다.

물론 소리는 훌륭할 리가 없지만, 초보에게는 그럭저럭 괜찮았습니다. 현악기 소리는 500만 원까지는 대동소이하므로 기왕이면 덜 사기를 당하고 구입하고 싶어 공부를 많이 했습니다. 바이올린과 첼로를 제작하는 선배님을 만나서 이야기를 듣고, 관련 자료를 찾고, 제가 지도했던 아마추어 오케스트라 학생들의 첼로를 쉬는 시간마다 켜보기도 하고, 악기상을 다니며 300만 원에서 3천만 원짜리 악기도 연주해 봅니다. 제 맘에 드는 것은 2천만 원짜리 제작자 선배님의 악기였습니다.


어차피 비싸서 못 살 악기, 저를 가르쳐 주시는 선생님의 8천짜리 첼로에 2천만 원짜리 활로 연주해봅니다.

지판에 닿는 손가락의 느낌이 아주 편안합니다. 활도 첼로에 촥~ 붙습니다.

활이 뭘 그리 비싸냐.. 하시면 높이와 각도가 다른 현악기의 네 줄에 밸런스를 유지하면서 탄력 있게, 가장 이상적인 각도와 무게로 켤 수 있게 만들기 때문에 악기만큼 비쌀 수밖에 없습니다. 이 활로 저렴한 제 악기를 연주해도 훨씬 결과가 좋아집니다.


이 하이엔드의 세계는 답이 없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하나 짚고 넘어갈 것이 있습니다. 첼로 선생님이 제 악기를 연주하면 소리가 기가 막힙니다.  물론 비싼 악기보다야 울림이나 소리가 안 좋지만, 제가 연주하던 그 악기가 맞나 싶을 정도로 결과가 달라집니다. 그러니, 꼭 연장이 문제는 아니지만, 비루한 초중급 연주자에게 좋은 악기가 생기면 동기부여가 되어, 실력이 좋아지는 계기가 됩니다.


그럼, 결론적으로 초보는 어떤 악기를 사야 하나요?

성인이 관악기를 사신다면 너무 저가의 악기 말고, 그럭저럭 중가 정도의 악기를 권합니다. 그러나, 자녀의 악기는 신중하기를 바랍니다. 100~200 정도를 투자했는데, 아이가 3개월 하고 안 한다고 하면 부모 자식 간에 사이가 안 좋아집니다. 중고를 구할 수 있으면 한 두 달 배워보고 바꿔주는 것도 좋습니다. 너무 저렴한 걸 사주면 실력이 느는데 방해가 될 수 있으니까요.


현악기도 마찬가지입니다. 성인은 풀사이즈를 구입하기 때문에 본인이 감당할 수 있는 선에서 좋은 것을 권합니다. 그렇다고 아마추어가 천만 원 단위를 넘길 필요는 전혀 없습니다. 500만 원 이하에서도 좋은 것들을 찾을 수 있습니다. 다만 악기에 대한 연구를 많이 하십시오. 악기는 자동차처럼 스펙에 따른 가격이 정해진 품목이 아닙니다.

아이들은 성장 속도에 따라 악기 사이즈를 바꿔줘야 하기 때문에, 가장 저렴한 것보다 조금 상위 모델로 스트링만 좋은 것으로 교체해서 구입하시면 됩니다.


물론, 전공자는 영혼까지 끌어모아 좋은 것을 사야 합니다. 하지만, 뛰어난 재능이 있다면 악기를 임대해주는 스폰서들이 연락을 해옵니다.


한 대기업이 음악 영재들에게 고가의 악기를 무상 임대해주는 후원 활동을 해왔는데, 아주 현명한 투자였습니다. 현악기의 수는 제한적이라 시간이 지날수록 가격이 천정부지로 뛰고, 유명한 연주자가 연주한 악기라는 라벨이 붙으면 가격이 더 올라갑니다. 투자로서도 가치가 있으니, 여유 있으신 분들은 악기 옥션에 관심을 가지셔도 좋습니다.


현악기 하나를 만드는데 많은 시간과 공정이 필요합니다. 장인 한 명이 오랜 시간 동안 몇 대의 악기밖에 만들 수 없으니 비싼 가격이 머리로 이해가 됩니다. 저는 아직 저렴한 첼로와 스테인리스 플루트로 버티고 있습니다만, 복권에 당첨이 되면 악기부터 바꾸는 꿈을 꿉니다.


아름다운 소리를 꿈꾸는 여러분들에게 꿈이 이루어지기를~


오케스트라 연습실에 도열한 콘트라베이스들. 하드케이스 자체가 워낙 무거워 피아노처럼 붙박이로 두고 다닌다.  트랜스포머처럼 멋지다.


*표지 사진은 https://theviolinchannel.com/cremona-triennale-luthiere-competition-prize-winners-2018/ 에서 빌려왔습니다.







작가의 이전글 남자아이 키우기 03. 대화의 품격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