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남쌤 Sep 01. 2019

시간이 쌓여 만들어진 만두집

오래되고 익숙한 가게가 주는 복잡한 감정

2001년 즈음, 남자 친구(현재 남편)가 살고 있던 연남동은 지금의 유흥가의 흔적은 하나 없는 아주 조용한 주택가였다. 당시 학생이던 남편과 직장인이던 나는 주로 연남동, 홍대에서 밥을 먹고 데이트를 했다.


남편이 살던 집의 골목에는 작은 김밥집, 떡볶이집, 만화가게 등이 있었고, 우리는 만화책을 보다 김밥에 라면을 먹기도 하며 소소한 추억을 쌓았다.


어느 날, 그 골목에 아주 작은 만두집이 생겼다. 중국어를 하는 부부가 운영하는 작은 가게.

인테리어라고 할 것도 없이 벽지를 대강 바르고 테이블은 세 개가 있는 허름한 가게.

메뉴는 고기만두, 군만두, 찐만두, 물만두(당시 전부 3,000원~3,500원 정도)의 만두 네 종류와 오향장육과 탕수육(9,000원)의 요리 두 가지뿐.


중국집 메뉴인데 짜장, 짬뽕도 없는 가게라니 궁금증이 일었다.

들어가서 찐만두와 군만두를 주문했다. 한국말이 서툰 50대 정도의 아주머니가 주문을 받아 주방에 있는 부군에게 중국어로 주문 내용을 전달한다. 아주머니는 주문을 받고서야 만두피를 밀어 만두를 빚고, 주방장은 만두를 받아 조리한다. 이러니 시간이 좀 걸릴 수밖에 없는데, 이렇게 만두를 빚는 모습을 보고는 기대가 되어 인내심을 갖고 기다렸다.


찜기에 김이 올라 만두를 익혀야 하니 시간이 걸리는데, 군만두를 먼저 주시지 않는다. 찐만두를 먼저 주신 후에 대강 먹고 나니 군만두를 주신다. 아마 군만두의 맛이 찐만두보다 강해서 그런 게 아닐까 생각했다.


찜통에서 접시로 옮긴 찐만두를 한 입 베어 무니 뜨거운 육즙이 사르르 넘어온다. 생강향이 살짝 코를 스치며 돼지고기 냄새가 맛있게 섞인다. 군만두는 직접 빚은 피에 바로 구워주시니 그 맛은 설명할 필요 없이 바삭 쫄깃하다. 중국집의 간장, 식초, 고춧가루 배합한 장에 군만두를 한 입 바삭 먹고 단무지로 상큼하게 한 입.


당시 싸지도 비싸지도 않은 만두 가격이었지만 조리 과정을 보고 나니 오히려 저렴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뒤로 여러 날에 걸쳐 탕수육도, 오향장육도 , 만두도 종류별로 다 먹어보게 되었다.

음식은 당연히 하나하나 다 맛있었다.


단골이 되어도 시종일관 무뚝뚝한 아주머니는 항상 목소리가 컸고, 주방에 있는 남편과도 큰 소리로 싸우면서 주문을 전달하고 오더 순서가 꼬이면 또 큰 소리로 싸우는 풍경. 풍채가 좋은 아주머니와 조금은 마른 편의 아저씨, 이들이 중국어로 옥신각신 싸우는 걸 보면서, 오늘 또 싸우시네, 그만 싸우세요~하고 인사를 하기도 했다.


그동안 우리는 결혼을 하고, 그 가게도 연남동에서 몇 번의 이전을 했다. 이전 후에도 몇 번 방문했지만 휴업을 몇 년간 하고 나도 아이 낳고 기르느라 기억 저편으로 멀어졌다.


최근에 연희동 사러가 쇼핑센터에 들를 일이 있어 주차를 하고 나오는데, 익숙한 간판이 보인다. 검색을 해 보니 그 만두집이 맞았다. 반가운 마음에 아이들과 점심을 먹으러 들어가 주문을 하는데, 아주머니가 살이 많이 빠지셨고, 부부가 많이 늙으셨다. 아주머니는 주문을 받으면서 내 얼굴 한 번 쳐다보고, 음식을 가져다주시면서 남편 얼굴 한 번 쳐다보고, 중간에 한 번씩 우리 테이블을 흘끗흘끗 보신다.


주인 부부는 늙고 왜소해졌지만, 맛은 그대로이다. 아이들도 너무 맛있게 잘 먹는다.

다 먹고 계산하면서 잘 먹었다고, 처음 오픈하셨을 때 단골이었다고, 그때는 결혼 전이었는데 이제는 애들도 있다고 아주머니께 말씀드리니 반색을 하신다.


"어쩐지 낯이 익어서 계속 쳐다봤어. 아이고 반가워!"

"그런데, 왜 이렇게 살이 많이 빠지셨어요?"

"힘들어서 그래, 일이 너무 힘들어" 하시며 울컥하신다.

"요즘은 아저씨랑 덜 싸우세요? ㅎㅎ"

"아니, 그때랑 똑같이 싸워!!" 하면서 크게 웃으신다.


아주머니와 남편 분은 여전히 사납게 싸우시는데, 아주머니 목소리가 많이 작아졌다. 예전엔 아주머니의 완승이었는데, 힘이 많이 빠지셨다.


잘 먹고 나오면서 괜히 마음에 쓸쓸한 바람이 분다.

음식은 그대로인데 늙는 건 사람뿐이다.



*오향 만두 : 연희동 사러가 쇼핑센터 정문 맞은편

https://place.map.kakao.com/18657057



작가의 이전글 차이코프스키와 함께 했던 스무 살의 여름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