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auré: Requiem, op. 48
*2악장 병 : 모든 곡에서 서정적이고 음울한 2악장을 편애하는 증상
2악장의 슬프고 느릿한 선율을 좋아하는 사람답게 레퀴엠을 아주 좋아한다. 모차르트의 레퀴엠은 죽은 자의 영혼을 위로하는 곡답게 비장한 선율로 마음을 가라앉히는데, 포레의 레퀴엠은 다르다.
포레의 레퀴엠은 태교음악에도 손색이 없을 정도로 맑고 아름다운 분위기를 자아낸다. 이게 레퀴엠 맞나, 싶을 정도로 아름다움에 끌리지만 결국 그 내용은 진혼곡이다.
할아버지를 목사님으로 둔, 모태신앙의 나는 평생을 하나님으로부터 도망치기 바빴다. 성인이 되기 전까지 주일은 온전히 교회에서 보내며 예수님을 사랑하기도, 그로부터 도망치기도 하다가 성인이 되면서 갈등을 반복하며 결국은 교회로부터 도망치는 데 성공했다.
나는 도망에 성공했다고 생각했지만 예수님은 도처에 계신다. 포레의 레퀴엠에서도, COLDPLAY의 새 앨범에 있는 'When I Need a Friend'에서도 예수님은 나를 끌어내신다.
크리스마스 즈음에 큰 아이가 독감에 걸려 많이 앓았다. 아프고 난 후에 아이는 많이 여위고 눈이 깊어졌다. 어느새 내 키를 훌쩍 넘긴, 이제는 청년에 가까운 내 아기가 회복하는 것을 보고 있자니 어린 생명의 싱싱함이 느껴진다. 밥 한 술을 넘기고 과일을 먹을 때마다 새로운 에너지가 채워지는 모습을 지켜보자니 아이러니하게도 내 죽음을 느낀다.
40대 중반의 나이, 젊지도 늙지도 않은 어색한 나이. 한 해가 저무는 것이 아무 감흥도 없고 별다른 느낌도 없는 그저 그런 감정의 나이지만 해가 저물면 죽음을 향해 한 발자국씩 다가간다는 것을 느낀다.
'100세 시대에 장수는 축복이 아닌 벌'이라고 생각했던 나는 일흔 즈음에 조용히 죽고 싶다는 생각을 오래도록 해왔다. 그러면 앞으로 내게 남은 시간은 25년. 내 아이들이 손주 낳는 것을 보고는 갈 수 있나? 생각해보면 자신이 없다. 젊을 때는 민폐 끼치지 않고 조용히 죽음을 맞이할 수 있는 것만을 생각했는데 인생의 중반을 넘겨보니, 내 아기들에게 조금이라도 더 방패막이를 해 주고 그 아이들이 부모가 되는 것도 지켜보고 싶다. (이 또한 내 마음대로 되지 않는다는 것도 알 정도의 나이를 먹었다.)
2019년의 한 해가 저물고 2020년의 새해가 다가오는 요즘은 그래서 복잡한 심경이다.
* 유튜브에서 감상할 수 있는 영상 중에 음질이 좋다. 40분이 채 안 되는 곡이므로 하나를 추천하기보다는 전부 다 감상하기를 권한다. 첫 곡부터 마지막까지 뭐 하나 놓칠 수 없는 아름다운 작품이다.
https://youtu.be/08GyEGqBC70[00:08]
I. Introit et Kyrie [06:33] __ II. Offertory [15:11] __ III. Sanctus [18:46] __ IV. Pie Jesu [22:12] __ Agnus Dei [27:42] __ Libera me [32:08] __ In Paradisu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