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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남쌤 Jan 18. 2020

이야기가 있는 주방 18. 알뜰한 당신

왜 엄마들은 그렇게 바리바리 들고 다니는가

"엄마! 무거운 거 들고 다니지 말고 그냥 배달시켜.."

"배달시키려면 많이 사야 하는데 조금씩 사다 먹는 게 나아"


슈퍼마켓에서 배달을 시키면 될 텐데 엄마는 뭘 바리바리 들고 다니셨다. 무거운 걸 들고 다니는 게 안타까워 내가 성인이 된 후에는 대형마트에 장을 보러 같이 가곤 했다.


시간이 흐르고 나도 엄마가 되었다. 어릴 때는 교육을 받고 직업을 가지면 집안일은 안 하고 살 수 있을 줄 알았다. 인간이라면 기본적인 의식주를 해결해야 한다는 것을 결혼을 하고 나서야 비로소 알게 되었다.


맛있는 음식을 하기 위한 싱싱한 식재료를 구매하는 행위는 굉장한 노동이지만 또 즐거움이다.

새로 이사 온 동네에는 백화점 식품관부터 대형마트까지 여러 곳의 장보기 옵션이 있다. 물건의 품질은 아주 좋으나 가격이 비싸게 느껴진다.

전에 살던 곳에서는 농협 하나로클럽에서 농축수산물을 구매했는데, 품질에 비해 가격이 정말 좋았다.


엊그제 시금치 한 단에 3천원을 하는 것을 보고 살짝 부아가 났다. 청양고추도 한 봉지에 3천원.

상품은 아주 매끄럽고 좋았지만 그 쌀쌀맞은 가격에 그냥 내려놓고 돌아섰다. 믿는 구석이 있어서 그랬다.


어제 아들이 다니는 치과에 방문했다. 병원에 주차를 하고 우리 둘은 시장으로 나섰다.

아들은 시장통에서 파는 손칼국수를 나는 손수제비를 한 그릇씩 먹었다. 구수한 멸치 향이 나는 뜨끈한 국물을 연거푸 마시니 뱃속이 훈훈해진다.  아들과 나는 국수와 수제비를 조금씩 나누어 먹기도 하고 겨울엔 이게 제일 좋다..는 얘기도 나누면서 즐겁게 식사를 마쳤다.


아들은 치과에 들어가고 나는 시장 탐방에 나선다. 감자탕용 뼈를 살까.. 한 솥 끓인 지 얼마 안 되었으니 다음에 하자.. 그럼 된장국을 끓일까.. 과일은 뭐가 남았더라.. 이런저런 생각을 하는데 똑 떨어진 파김치가 생각이 났다.


자주 가는 채소가게에 혹시나 하고 들어갔더니 깔끔하고 영롱하게 다듬은 쪽파가 있다. 한 단에 5천원! 가격도 좋다. 욕심을 내서 두 단을 샀다.

겨울에 단맛이 나는 섬초도 비닐봉지에 꽉꽉 담아 2천원, 청양고추도 한 봉지에 2천원.

신나서 장을 보았다. 식구들 좋아하는 인절미, 팥시루떡, 절편도 세 팩에 5천원.


통통하게 속을 넣은 김밥과 떡볶이도 둘째를 위해 사고 양손 무겁게 들고 주차장으로 가다 보니 딸기도 사고 싶다. 그런데 쪽파 두 단이 이미 무겁고 부피가 커서 들 손이 없다. 그건 동네에서 사야겠다고 할 수 없이 지나친다.


주 3회 이상 장을 보고 그때마다 양손 무겁게 사서 끙끙대고 들고 오는데, 내 엄마의 모습이 겹친다. 그때 엄마 나이도 내 나이와 비슷했을 거다. 내게는 무거운 거 들고 다니지 말라는 딸은 없지만 짐을 들어주는 아들들이 있다.


별 거 아닌 장 보는 행위에 왜 그리 에너지를 쏟는지 이해할 수 있는 나이가 되었다.


집에 와서도 장본 것들을 풀고 정리하느라 또 한참의 시간을 쏟는다.

쪽파의 양이 너무 많아 파전 부쳐먹으려고 한 줌 덜어놓는다.

쪽파를 깨끗하게 씻어 물기를 빼고 액젓에 절인다.

섬초에는 흙이 많아 꼼꼼히 씻어내고 살짝 숨만 죽게 데친다.

찹쌀풀을 쑤고, 양파를 갈고 양념을 준비한다. 그래도  다듬은 파를 사서 씻기만 해 김치를 하니 좋은 세상이다.


파김치에 맛이 들면 곰탕을 한 솥 끓여서 밥을 말아 한 수저 뜨고 파김치를 먹고 싶다. 생각만으로도 배부르고 행복하다.


장을 보는 사람의 마음은 이렇게 모두 같은 마음일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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