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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남쌤 Feb 09. 2020

건강이 최고입니까?

나이 먹으니 달리 보이는 기준에 관하여

오랜 친구를 만났다.


중학교 입학식장에서 만난 키가 제일 큰 두 여학생은 운동장에 맨 뒤에 서서 칼바람을 맞으며 수다를 떨다 단박에 친구가 되었다.

남자 형제를 뒷바라지하느라 공장에 가는 정도는 아니었지만 남녀차별은 어쩔 수 없이 받고 자란 세대였고 크게 불만도 가지지 않았다. 가부장적인 아버지 밑에서 자라느라 항상 아버지 앞에서는 주눅 들어있는 우리였지만, 독서실이 있는 아파트 단지의 놀이터의 미끄럼틀 최상층에서 공부하다 말고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고 꿈을 나누는 우리는 누구보다 자유로웠다.


같은 고등학교에 진학하고, 비슷한 동네에 있는 대학교에 진학을 하고 연애를 하고 차이고 울고 술 먹고 서로 주정도 하면서 우리는 자매처럼 자랐다.


남자 형제들에게는 주어지는 용돈을 우리는 참 열심히도 벌었다. 그 친구도 나도 장학금을 받지 않으면 눈치를 보게 되니 공부도 열심히 하면서 과외 알바도 참 열심히 했다. 대학생은 책임감이 없다지만 나나 그 친구나 한 달을 벌어 살아야 하기에 놀러 간다고 과외를 미루는 일은 하지도 않았다.


서로 회사를 다니면서도 강사 알바를 하고, 학교 강사를 나가면 과외 알바를 단내가 나도록 했다.


그렇게 알아서 스스로 돈을 모아 비슷하게 결혼을 하고 아이도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며 둘 씩 낳아 토실토실 길렀다.  


아이를 기르면서 시댁에서 받는 스트레스를 같이 수다로 풀고 먹을 것을 나누고 14세에 만나 친구가 된 우리는 참 오래도록 잘도 어울렸다.


그동안 부모님은 늙어가시고 친구의 아버지는 병을 얻었다.

친구의 아버지는 영화배우처럼 잘 생긴 얼굴에 강력계 형사를 은퇴하도록 배가 하나도 없이 운동하는 최고의 경찰이셨다. 내 친구의 아름다운 얼굴은 그 아버지로부터 물려받았고 스트레스받는 상황에 친구의 얼굴을 보면 화가 풀리는 기적을 경험하기도 했다.


친구는 아버지가 초등학생 때부터 삼 남매에게 구보를 시키고, 화생방 대피 훈련을 시켰다고 했다.

어린 내가 들을 때는 황당하기 이를 데 없었으나, 그 아버지가 만나는 세상을 부모가 되어 짐작해보니 나 같아도 금쪽같은 내 새끼들에게 그렇게 했을 거 같다.


친구의 아버지는 루게릭 병에 걸리셨다. 현장에서 나쁜 놈 때려잡으며 집에서 자다가도 호출받으면 뛰어 나가시던 그 양반이 근육이 위축되니 그 심정이 어땠을까...


굳어지는 근육이 보기 싫어 집에서도 열심히 운동을 하고 몸을 건강하게 하신다는 얘기를 듣고 정말 놀랐다.

그러나, 근육이 굳어지는 것은 막을 수 없었고, 곧 치매에도 걸리게 되었다.


결혼을 해서 친구는 아이 둘에 자기 살림 건사하기도 바쁜 데, 아버지 뒷바라지까지 친정 엄마와 같이 하게 되었다. 자리를 보전한 환자라면 차라리 어렵지 않을 텐데 친구의 아버지는 정신이 돌아올 때 운동을 그렇게 하신다고 했다. 현직에 계셨을 때 못지않게....


그러니 간병인도 힘에 부쳐 떨어져 나가고 가족들만 돌볼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되었다.

언제나 그렇듯 혜택을 받은 아들은 의무에서 배제되고 딸들의 의무만 남게 되었다.  


이제는 기력이 다 하셔서 거의 앉거나 누워서 생활하시지만 15년 이상 투병 중이시다.


나도 우리 아이들에게 건강한 엄마로 남으려고 매일 운동을 한다. 대학생 때 너무 많이 감기에 걸려 면역력을 증진하고자 시작한 운동인데 아이를 낳고 기르며 체력의 중요성을 더욱 깨달았다.


내 몸을 내가 컨트롤할 수 있을 때의 건강은 유용하다.

그러나 내가 나를 컨트롤 하지 못 할 때의 건강은 주변을 다 피폐하게 하는 듯하다.


정답이 있을까..

항상 젊은 몸으로 살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지만 슬슬 노안이 오고 체력은 예전만 못 하다.


100세 이상 산다는 시대에 나는 어떻게 해야 자식들에게 폐를 덜 끼치고 나의 존엄성을 지킬 수 있을지 고민을 할 수밖에..



*비발디 : 세상의 참 평화 없어라

https://youtu.be/KdCAfK_CN8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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