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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가 있는 주방 19. 된장 아욱국

국물의 깊은 맛은 인생의 쓴맛에서 나온다.

by 남쌤

으허, 시워~~~~ㄴ하다!

할아버지도 아버지도 밥상 앞에서 국을 드시며 하시는 말씀이 어린 나로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다. 저렇게 펄펄 끊는 국을 훌훌 드시며 시원하다니...


중학생이 되어도 오뎅 국물, 라면 국물이나 좋아했다. 친구들과 하교 후에 사 먹는 그 분식들은 그야말로 내 인생의 시원한 청량제였다.


대학에 들어가 술을 마시기 시작하며 국물이 주는 해장 효과를 경험했지만, 직장에 다니면서 그 시원함의 비밀을 알 수 있었다.


안생의 쓴 맛, 신 맛, 떫은맛, 매운맛을 보게 되니 국물이 저절로 당겼다.

직장은 학교와 달랐다. 주 1회 한 번씩 실적 보고를 해야 했는데, 나는 신입이라 실적이 필요 없었으나 하고 있는 업무에 대한 진행상황을 본부장님께 보고 해야만 했다. 사실 내가 맡은 신사업은 누가 봐도 접어야 하는 게 분명했고, 담당자인 내가 제일 잘 알고 있었다.


접어야 할 사업을 여러 지사와 협력업체의 이해관계로 바로 접을 수도 없었고, 나도 쪼대로 때려치울 수도 없었다. 회의는 업무시간을 넘겨 퇴근 후에도 계속되었고, 이어지는 술자리는 나를 국밥 성애자로 만들었다.


엄마가 맑은 콩나물 국을 끓여 놓은 다음 날 새벽 5시 반. 27세의 어리고 빛나던 과거의 내가 군기가 바짝 들어 기상을 했다. 온 식구들이 잠든 그 시간, 나 홀로 주방에서 김치와 청양고추를 쫑쫑 썰고 뚝배기에 콩나물 국을 담고 끓기 시작하면 달걀 하나를 톡 풀고 찬 밥을 토렴 했다.


출근용 메이크업은 뒷전이었다. 나는 오늘의 해장이 나를 직장으로 데려다줄 거라는 것을 본능적으로 알고 있었다. 화장 그까짓 거 국밥을 먹은 후에 대충 하고 시업이 8 시인 직장에 20분 전엔 도착하려고 기를 쓰고 달렸다. 늦은 퇴근으로 만성 운동부족에 시달리는 나는 광화문 흥국생명 빌딩에서 계동 현대사옥까지 일부러 달렸다.


지지부진한 업무를 마치고 마시는 술은 입에 썼다. 독일지사와의 협력사업으로 일 년 간 애를 썼지만 실적은 전무했다. 그때 어른들이 노상 하시는 말씀을 이해할 수 있었다

‘입이 쓰다.’


그 쓴 술을 마시고 다음 날 먹는 국은 내게 소울푸드일 수밖에 없었다


친정엄마가 가끔 끓여주시는 아욱국은 건새우가 듬뿍 들어가 참 시원했다. 그 시원함의 비결이 멸치와 건새우라고 생각했는데 나이 들어 내가 그 국을 끓여보니 그 시원함은 아욱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채소코너에 싱싱한 아욱이 눈에 띄면 지나치기 힘들다. 끓이기도 쉽고 맛도 좋으니 속풀이 해장이든 인생 해장이든 한 냄비 끓여 해장을 해보자.


재료: 아욱 한단, 멸치, 건새우, 된장 2~3 큰술, 양파 반개, 감자 두어 개, 파 한대, 마늘 1~2 큰술, 청양고추 취향대로 듬뿍


1. 아욱을 깨끗이 씻어 굵은 줄기를 손으로 잘라내고 너무 큰 잎은 잘게 찢어 놓는다. 감자는 껍질을 벗기고 숭덩숭덩 자른다

2. 멸치와 다시마로 육수를 넉넉히 낸다.

3. 된장을 풀고 건새우를 한 주먹 넣는다.

4. 감자를 넣고 한소끔 끓인 후 나머지 재료를 넣고 끓인다. 감자가 익으면 다 된 것!


*수제비 반죽을 잘 뜯어 아욱 된장국에 넣어 끓여보자. 서울 근교 맛집에서 엄청나게 잘 팔리는 털레기 수제비와 맛이 거의 똑 같다.



다른 반찬 필요 없다. 아욱국이 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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