짜장을 볶다 말고 생각하는 음악과 요리의 닮은 점
어릴 때부터 귀가 예민했다. 들리는 음악을 모두 좋아해서 동네 피아노 학원에 대뜸 문 열고 들어가 언니들이 치는 피아노 소리를 하루 종일 듣고 오기도 했다. 네 살 밖에 안 된 꼬맹이라 학원에서는 나를 받아주지 않았지만 미래의 고객이니 구경하는 것을 그냥 두었다.
집에 돌아오면 대문에서 초인종을 누르고 내가 만든 '문 열어 송'을 불렀다.
"어엄마 문 열어 주세요!" 한 번에 열리지 않으면 정확히 완전 1도를 올려 조옮김해 다시 불렀다.
"어엄마 문 열어 주세요." 한 4도쯤 올리면 그제야 문이 열렸다. 나는 신나서 쪼르르 집 마당 안으로 들어갔다. 마당으로 퍼지는 엄마가 밥하는 냄새는 나를 정말 행복하게 했다.
음식 배달이라는 개념도 별로 없던 시절, 어린 내 동생을 돌보다 밥할 기운이 없어진 엄마는 빈 냄비를 들고 내 손을 잡고 처음으로 중국집에 데려가 주셨다. 지글지글 불타는 소리, 웍과 국자가 부딪히는 소리, 주문을 하는 소리... 음악처럼 들렸다. 굉장한 음악이었다. 그곳에서 짜장 소스를 냄비에 담아주면 엄마는 집에 와서 밥 위에 얹어주셨다.
시커멓고 이상한 음식으로 보였지만 그 고소하고 달콤한 맛이라니!
그렇게 나는 짜장과 처음 만났다.
음악은 시간 예술이다. 시간이 흘러가는데 실수가 있으면 돌이킬 수 없다.
미술은 퍼포먼스가 아닌 이상 수정이 가능하지만 음악은 실수가 결과가 된다.
요리는 음악과 상당히 비슷하다. 미리 완벽하게 재료를 세팅하지 않으면 중간에 멈춰진다. 그러면 결과도 당연히 좋지 않다. 흔히들 음악 하는 사람은 예민하다고 하는데 대부분 맞는 이야기다. 듣는 귀가 예민해야 정확한 연주를 할 수 있으니 당연하다. 음악을 해서 예민해진 건지 예민해서 음악을 하게 되었는지는 모르지만.
요리하는 사람도 그러한듯하다. 주방에서 들리는 여러 가지 소리들, 칼질하는 소리, 불로 조리하는 소리, 그릇이 부딪히는 소리, 주문하는 소리.... 그 소리의 향연 한가운데 준비된 재료를 가지고 나 혼자만의 순서를 진행하며 흔들림 없이 해야 한다. 중간에 방해 요소가 생기면 결과는 만족스럽지 못하다.
중간에 멈춤 없이 자연스럽게 하나의 과정이 끝나고 나오는 결과물!
그 완성도 있는 음악, 요리는 우리를 충분히 만족시킬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아이들 방학을 맞아 세 끼를 다 먹여야 하는 엄마 입장에서 최소의 비용으로 최대의 효과를 내는 짜장을 볶으며 음악에까지 생각이 미치는 이유는...
불 조절을 잘못해서 파 기름을 내다 파를 태울 뻔했고, 초대형 웍에 많은 양을 볶다 보니 화력이 약해 생각보다 시간이 걸린 것에 당황했기 때문이다. 다행히 자연스레 무마했고 결과물도 괜찮았다.
이렇게 포르티시시모(ff : 가장 세게 연주하라)의 소리에 프레스토(Presto : 매우 빠르게) 템포의 연주는 성공적으로 막을 내렸다.
재료 : 춘장 300g, 돼지고기 500g, 양파 4개, 양배추 1/4 통, 파 두 대, 식용유 5~6큰술, 설탕 5~6큰술, 녹말물 7~8큰술, 물 2~3컵
*양이 적은 분은 이 재료의 반만 하세요. 그럼 4~5인분 정도 됩니다. 대형웍이 없으신 분들도 반만 하시면 됩니다.
*춘장은 사자표 볶은 춘장을 구입해서 따로 볶지 않았어요. 볶아서 나온 제품이라 편리합니다. 한 깡통에 2.24kg이니 7회 정도 분량이 나옵니다. 일반 춘장은 기름에 한 번 볶아주세요.
1. 파를 잘게 썬다. 양배추와 양파도 먹기 좋은 크기로 썰어둔다.
2. 고기는 껍질까지 붙은 뒷다리살을 구입해서 큼직하게 썰어둔다.
3. 초대형웍(지름 36cm)에 약한 불로 식용유를 두르고 파 기름을 낸다.
4. 고기를 파 기름에 볶다가 얼추 익으면 양파와 양배추를 센 불에 볶아낸다.
5. 고기와 야채가 얼추 익으면 춘장을 넣고 볶다가 물을 넣고 끓인다.
6. 설탕을 넣는다. 설탕은 춘장의 쓴맛을 제거해주기 때문에 생각보다 많은 양이 들어가야 맛있다. 입맛대로 가감할 것.
7. 한소끔 끓인 후에 물녹말을 넣어 저어준다.
8. 밥 위에 얹거나, 칼국수나 우동면을 삶아 얹어 먹어도 맛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