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끝나지 않는 밥, 밥, 밥..
코로나 바이러스로 개학이 무려 3주나 연기되었다.
집안에서 뉴스를 보며 돌아가는 일이 심상치 않다고 느꼈고, 개학 연기를 어느 정도 예상했다.
작년에 일을 그만두었지만 학교에서 학생들을 오래 가르쳤다. 아이들은 학교에 오면 서로 얼굴을 마주하고 얘기하고 웃고 떠들며 침을 튀기기도 하고, 밥을 먹으면서 서로 싫어하는 반찬을 바꿔먹기도 하며 즐겁게 학교 생활을 한다. 이런 활동을 전면적으로 금지하더라도 오랜만에 만난 친구들과 서로 말하지 말라는 건 일단 불가능하다. 아이들은 금세 잊고 즐거움을 추구하기 마련이고, 화장실이든 운동장이든 교사의 눈길이 미치지 못하는 사각지대가 있으니 이 전염병의 확산이 수그러들 때까지 집에 있는 게 안심이다.
다만 맞벌이 부부, 특히 어린아이를 둔 부부들이 참 힘들어졌는데 어서 이 병이 지나가기만을 기도하는 수밖에..
아이들 데리고 외식도 하기 힘들어 집에서 이 비상 상황에 세 끼니를 꼬박 해 먹고 있는데 원래 집순이인 나도 이 상황이 참 괴롭다.
결혼 후에 직장에 다닐 때도 퇴근하면 마트에 들러 장 보고 집에 오자마자 밥을 하고, 밤에는 운동을 하느라 밤 외출을 거의 하지 않고 살았다. 직장을 그만둔 후에도 별반 다를 바 없는 생활을 하고 있는데, 자발적으로 집에 있는 것과 강제로 집에 있는 것은 참 다르다. 답답하고 괴로워서 아이들 먹이는 집밥을 더욱 가열차게 페이스북에 올리고 있다. 이걸로 나의 가택연금상태의 스트레스를 푸는 것이다.
그런데, 간간히 페이스북 댓글들을 보면 여성과 남성 페북 친구들의 반응이 참 다르다.
남성 페친들은 맛있겠다, 우리 집도 다음엔 저 메뉴를 먹어야겠다... 등의 반응인데,
여성 페친, 특히 아이를 둔 엄마들 반응 중에 '우리 애들에게 미안하다'. '나는 좋은 엄마가 아닌가 보다'.. 등의 반응이 간간히 보인다. 이들은 직장 생활을 하는 엄마들이라 내가 포스팅을 하고도 미안해진다.
그래서, 직장 다니면서 밥 해 먹기가 쉽지 않으니 그런 생각 말라고 답을 하지만 그 마음을 잘 안다.
내가 아는 범위의 엄마들은 집밥을 자주 못 해먹이면 모성애가 없나..라는 죄책감을 달고 산다.
직장을 다니면서 나도 그 죄책감을 벗어나질 못 하고 되도록 밥을 해 먹이려 애썼다.
하지만 반조리 상태의 국에 밥을 말아주는 것과 몸이 부서지도록 차려서 올린 밥상에서 국에 밥을 말아먹는 것이 영양학적으로 무슨 차이가 있는지 의문이 든다.
밥을 한다는 것은 다른 가사 노동과는 확연히 다르다.
빨래, 청소, 설거지는 퇴근을 하고 집에 와서 편한 옷으로 갈아입고 다 할 수 있는 일이다.
요리는 다르다. 냉장고 안에 있는 음식들과 식재료의 재고를 파악하고 있어야 하고 모자라는 식재료와 새 메뉴에 필요한 재료를 항상 생각하고 있어야 한다.
퇴근길에 피곤한 몸을 이끌고 동동거리며 장을 보고 무거운 짐을 들고 집에 도착하면 편한 옷으로 갈아입을 새도 없이 주방 싱크대에서 손을 씻고 냉장고에 넣어야 할 재료와 냉동고에 넣어야 할 것을 구분해 갈무리하고 소분해서 정리한다.
아이들은 배고프다고 야단이고 정신은 하나도 없지만 씻어놓은 쌀(냉장고에 미리 씻어서 넣어둔다)을 밥솥에 먼저 앉힌다. 그제야 아이들 안아주고 일과를 물어보고 나머지 요리를 한다.
일하는 엄마가 밥을 해 먹인다는 것은 이런 것이다. 내 아이들이 워낙 잘 먹어서 나는 할 수 없이 집밥을 주로 해 먹였다. 그리고 그건 내가 시간강사로 그나마 일반 직장인 엄마에 비해 시간적 여유가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그러니 엄마들이여, 파트타임이든, 전업주부든, 풀타임이든 본인이 할 수 있는 선에서 감당하시라.
내가 밥을 남들처럼 차려 먹이지 못한다고 죄책감 느끼지 마시라.
내가 온라인에서 타인과 소통을 한지 이제 만 2년이 채 안되었다. 그 전에는 아이 키우며 주말부부 하면서 혼자 동동 거리며 육아 독립군 노릇을 하느라 아예 이 판을 알지도 못 했다. 아이들 어렸을 때 간간히 블로그를 해보려 했지만 힘에 부쳐 계속할 수 없었다. 그래서 늦게 배운 SNS에서 만나는 많은 친구들에게 많이 배우고 즐거움을 느낀다. 아이들 키우며 힘들고 외로웠을 때 알았더라면 많은 위로를 받았을 거라 생각하지만 허상도 있다.
일단 나부터 허상이다. 온라인에서는 가장 좋은 순간만을 올리고 싶은 사람들의 욕망이 있다.
집밥을 해 먹이기 위해 지금도 나는 고군분투하지만 온라인에서의 나는 유쾌하고 쿨하려고 애쓴다.
예쁜 사진을 위해 플레이팅도 신경 쓴다. 남들이 보면 세 끼니 그렇게 먹는 줄 알겠지만 프라이팬 째 놓고 뜨겁게 먹는 음식을 더 좋아한다.
그러니, 엄마들이여. SNS를 보고 나는 불량 엄마인가 하지 마시라.
그놈의 집밥 때문에 죄책감을 느끼지 마시라.
*산더미 같이 고구마튀김을 잔뜩 해서 아이들 먹였다. 몸에서는 기름내가 나고 머리는 봉두난발에 속은 니글거려 아이스커피 진하게 내렸다. 꼴은 우습지만 이 사진을 보라. 얼마나 우아한가. 속지 마시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