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남쌤 Aug 09. 2020

이야기가 있는 주방 23. 집밥의 단가

돼지고기 콩나물 찜

2000년대 중반부터 요리책이 다양하게 쏟아져 나왔다. 이전의 요리책이라면 방배동 가정요리 선생님, 재벌가로 시집간 유명 영화배우의 중국요리 선생님, 한국 전통 요리 전문가 선생님 등이 저술한 부잣집 며느리들을 위한 근엄한 요리책이 주류를 이뤘다. 그 책들도 좋았지만 과정이 복잡하고 요리는 어렵다는 생각을 할 수밖에 없었다.


그 틈새를 파고 유튜브도 없던 시절에 블로그로 요리를 시작해서 반응이 좋았던 일반인들이 요리책을 내는 시기가 도래했다. 그때 많은 인기를 얻었던 '나물이'님의 요리는 참 신선했다.


호텔 주방장이 아닌 일반인 남자가 요리를 하는 경우는 상당히 드물었는데, 그분의 블로그는 간단한 레시피와 보장된 맛으로 큰 인기를 얻었다. 식재료도 흔하고 저렴한 것들로 맛있게 집밥을 할 수 있게 알려주었는데, 그분의 도움을 많이 받았다.


그 붐을 타고 2천 원으로 차리는 밥상, 3천 원으로 만드는 밥찬, 5천 원 시리즈 등이 나오면서 요리는 고급스럽고 어려운 것이 아닌 일상으로 다가왔다.


결혼할 때 남편은 학생이었고, 내가 버는 돈도 많지 않아 우리 둘은 그저 아끼며 살았다.

집 앞에 있는 하나로 마트에 결혼하고 나서 초여름이 오자 참외를 사러 갔는데 가격이 생각보다 비쌌다. 그런데, 그 옆에 알뜰 코너에서 노랗게 잔뜩 익어 약간 반점이 생길락 말락 하는 참외를 한 아름 묶어놓고 3천 원에 파는 것을 둘이 발견하고 신이 나서 들고 왔다. "참외는 후숙 과일이니 이게 더 좋아!" 하면서 하나씩 깎아 베어 물었는데 얼마나 달콤하고 부드럽던지, 멜론이 부럽지 않았다.


지금도 후숙 과일은 그 시절을 생각하며 알뜰 코너에서도 종종 사 먹곤 하는데, 신혼의 추억이라 그런지 지금은 그나마 먹고살만해져서 그런지 그 맛이 나질 않는다.


그 궁상맞으면서도 애들처럼 신났던 신혼에 종종 해 먹던 고기 요리가 있었으니 콩나물 돼지고기찜, 일명 돼콩찜 되시겠다. 돼지고기는 다릿살로 준비하면 단가가 낮아지고 콩나물은 시장에서 500원어치 사면 한 보따리를 주던 시절이니 82cook에서 이 레시피를 발견하고 너무 행복했다. 냄비에 재료를 투하하고 약불로 찜처럼 익히다 한 번만 뒤적여 주면 되니 여름에 불 앞에 있기 싫을 때 효과 만점의 고기 요리!


재료 : 돼지고기 500그램(부위는 상관없음. 저렴 버전으로 뒷다리살을 구입하면 단가가 확 내려감. 오늘은 무려 삼겹살로 준비), 양파 1개, 콩나물 한 봉지, 대파 1대


양념 : 고추장 1.5T, 고춧가루 1.5T, 다진 마늘 1T, 국간장 0.5T, 진간장 1T, 설탕 1T, 생강가루 약간, 후춧가루 약간.


1. 양념은 미리 섞어둔다. 양파는 편으로 썰고, 대파는 어슷 썰고, 콩나물은 씻어서 건져둔다

2. 달궈진 웍이나 냄비에 식용유를 두르고 양파, 콩나물, 고기, 양념 순으로 쌓는다.

3. 약불로 줄이고 뚜껑을 덮는다. 10분 후 냄새가 알맞게 나면 뚜껑을 열고 대파를 투하한 후 양념을 고루 섞은 후 센 불에 30초쯤 끓인다.

5. 간은 소금이나 고추장으로 한다. 짜면 물을 조금 넣는다. 정종도 좋다.

*그때는 없던 아들들이 태어나고 이 음식을 같이 즐기게 되었다. 둘째는 고기가 익어가니 아귀찜 냄새가 난다고 한다. 양념과 콩나물이 같아서 그런 듯하다. 밥에 비벼 먹어도 맛있고 깻잎에 싸 먹어도 향긋하다. 콩나물의 아삭한 식감과 돼지고기가 참 잘 어울린다.

작가의 이전글 이야기가 있는 주방 22. 카모메 식당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