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의 수준을 결정하는 기준은 무엇인가..
나훈아의 콘서트가 항상 궁금했다. 60대 이상 어머님을 모시고 다녀온 딸들이 할 수 없이 따라갔다 입덕한 간증을 수년간 들어왔다. 무엇이 연령대 상관없이 팬으로 끌어들이는지 정말 궁금했다.
어렵게 티켓을 구해 콘서트를 가게 되지는 않을 것 같아 한 번쯤 티브이에서 만났으면 했는데, 아뿔싸! 추석 특집 방송이 끝나고서야 편성을 알게 되었다.
SNS에서는 다들 나훈아만을 얘기하는 중에 남진을 얘기하는 사람들, 새롭게 나훈아에게 입덕한 사람들의 이야기가 줄줄이 이어졌다. 나훈아가 최고네, 음악성은 남진이 낫네.. 여러 의견들이 오가는 가운데 급기야 나훈아를 왜 좋아하는지 이해를 할 수 없다고 폄하하는 사람들까지 등장했다.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장안의 화제 나훈아의 '테스형'을 들어보았다.
a mimor 코드로 시작하여 딱 네 개의 코드만 사용한 간결한 음악이다. 이 노래는 가사가 심오하면서 재밌어서 사람들이 좋아하는 듯하다. 복잡하지 않은 음악은 대중들이 쉽게 듣고 따라 하게 되어있다. 잘 만든 노래다.
다음 악보는 내가 학생일 때 곡을 쓰면서 항상 참고하고, 대학 입시생들에게도 항상 필수로 분석하게 한 쇼팽의 프렐류드이다. 이 곡의 멜로디는 굉장히 단순한데 반주의 화성 진행이 아주 훌륭하다. 왼손 화음 중에 한 두음이 하향 진행하며 변화하는 느낌을 최소화 하지만 한 마디 안에 화성이 세 번 변하는 곳도 많이 있다. 듣는 사람은 전혀 알아챌 수 없을 만큼 편안하다. 굉장히 세련되게 표현한 복잡한 구조의 음악인데 듣는 사람은 아주 평화롭다.
나는 트로트를 크게 좋아하지는 않지만 그 특유의 뽕삘을 느끼고 즐긴다. 트로트를 폄하하는 사람들이 주로 그 뽕삘을 촌스럽다고 하지만 한국인의 DNA에는 사실 그 뽕삘이 면면히 흐른다. 우리 전통 민요를 들어보면 그 뽕삘을 느낄 수 있는데, 트로트가 일본의 엔카의 영향을 받았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많지만 우리 민요를 들어보면 그 이야기에 수긍할 수 없다.
다음은 내가 좋아하는 경기민요를 현대적 느낌으로 편곡한 '노랫가락'인데, 이 곡을 분석해 보니 놀랍게도 세 가지의 코드만 사용되었으며 그중에 하나는 딱 한 번만 나온다. 결국 이 긴 곡을 코드 두 개로 끌고 나가는데, 이 곡을 누가 단순하다 할 것인가.
음악은 느끼고 향유하는 사람들이 기호에 따라 호불호는 나뉘지만 수준을 논할 수 없다.
트로트는 독일 가곡보다 수준이 낮다고 할 수 없으며, 무당굿에 쓰이는 음악이 전통 궁중음악보다 그 완성도가 낮다 할 수 없는 것이다.
죽은 이의 마지막 길에 상여를 메고 울며 부르는 '상여소리'의 진정성과 음악적 수준을 모차르트의 레퀴엠과 견줄 수가 있겠는가.
음악은 듣는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고 위로하는 것으로 그 수준을 평가할 수 있겠다. 절대적인 기준과 수준을 논하는 것은 무의미하다.
잘생기고 아름다운 사람들만이 사랑에 빠지고 결혼하는 것이 아니 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