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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ono Oct 26. 2023

노래의 이유






내 새끼, 죽은 자들은 언제나 우리의 소리를 들을 수 있단다. 그렇지 않다면 우리가 왜 노래를 부르겠니?

우리는 그들이 가 버리고 나서도 여전히 즐거움을 찾을 수 있다는 것을 그들에게 알리기 위해 노래한단다.

내 조카를 부드럽게 안으며 어머니는 첫 계단을 오르는 동시에 나를 돌아본다.

그들이 우리에게 바라는 것은 그것뿐이란다.

                          - 골든 선 피어스 브라운 저










대성당의 문 손잡이




 오래전에 기사 한편 읽은 적이 있습니다. 영화

'디테인먼트(Detainment)'가 제91회 아카데미 수상후보작에 올랐다는 기사였죠.  별들의 잔치인 영화제에서 '라이브-액션 단편영화'라는 분야에 이 작품이 후보로 올려졌다더군요. '덴마크 영화감독이 할리우드에 가서 승전하고 있네.'라며 무심히 지나쳤어요. 그때는 영화 내용을 몰랐죠. 그러다 얼마 지나지 않아서 그 영화가 실화를

바탕으로 만들어졌고, 피해자의 엄마가 하는 인터뷰를 보면서 전 소위 멘붕을 경험하게 됩니다. 



 제임스 벌거 살인사건이라고 검색을 하면 25년 전 영국에서 일어난 살인사건에 대한 뉴스들이 연관검색어까지 수십 개가 나옵니다. 영국에서  최초로 10살의 미성년자인  아이들이 징역형을 선고받고, 감옥에 투옥이 된 당시 굉장한 이슈가 된 사건이죠. 사건은 당시 10살이던 존 베너블스와 로버스 톰슨이라는 소년들이 영국 리버풀이 있는 한 쇼핑센터에서 엄마와 쇼핑 나온 2살짜리 아기 제임스 벌거를 발견하며 시작됩니다. 혼잡한 틈바구니 속에 엄마와 떨어져 혼자 있던 아기를 본 소년들은 제임스를 불러 태연하게 같이 손을 잡고 쇼핑센터를 나오죠. 그리고 근처에 있던 낡아서 폐쇄된 기차역으로 데리고 갑니다.



 그곳에서 상상할 수 없는 일들을 저지릅니다. 아기의 눈에 페인트를 붓고, 항문과 입에 건전지를 넣고, 기차연결 이음 쇄(약 10kg 무게)로 머리를

내리치는 등 42개 정도의 고문을 저질렀다더군요.

모두 부검 결과 밝혀진 사실들입니다. 기사를 읽는 순간 손끝이 차가워졌죠. 그들은 의식불명이 된 아이를 기차가 다니는 철로에 놓고 도망쳐 결국 아이가 산산조각 나게 만들었다더군요. 정말로 끔찍했어요. 성선설을 주장한 맹자를 데려와 이 사건을 읽어보고 다시 말해보라고 다그치고 싶을 정도로 이들이 저지른 일들이 납득이 가질 않았죠. 동기도 없는 저들의 불특정 대상을 향한 범죄의 잔악함이 상상을 초월할 정도니까요.



 어린 제임스를 소년들이 데리고 갈 때 그 모습을

 지켜본 사람들은 그들이 형제들인 줄 알았답니다. 가해자들의 나이가 정말로 어렸으니 형들이 어린 동생을 보살피고 있다고 생각했다더군요. 그들은 "왜 그런 범죄를 저질렀을까?"라는 생각에서 감독은 영화를 만들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소설 <케빈을 위하여><콜드 블러드>를 읽으면서도 언제나 이런 범죄의 이면에 감춰진 범죄자들의 성장배경, 살아오며 체득한 가치관이 만들어 내는 인간의 행동양식에 대 생각을 많이 하게 됩니다. 이유를 알아야 그들에게 대처할 수 있는 방안도 마련할 수 있을 테니까요. 하지만 지금 이 사건처럼 이유가 정해지지 않은 것들이 더 많아지고 있다는 사실이 두렵습니다.  



 아이들을 가르치는 데 있어서 판단의 기준이 되는 선과 악, 도덕이란 이름의 무형의 지표에 대해서 늘 고민합니다. 어느 순간에는 저도 적당한 타협과 포기로, 세상살이에 편리하단 핑계로, 한 번씩 편한 대로 규칙들을 재해석할 때가 있죠. 그럴 때마다 탄식하죠. '아, 나이를 먹어가면서 수치심이나 경계심, 정의감도 퇴색되어 가는 것인가!'라고 혼자 벽 보고 앉아서 중얼거릴 때가 있어요. 물론 나이를 먹는다고 다 그렇게 되는 건 아니죠. 지혜로워지고, 아이들보다 맑은 품성으로 삶의 지혜를 전해주시는 어른들이 얼마든지 더 많이 계시니까요. 이렇게 반성해 놓고는 얼마 안돼서 중앙선 넘어 불법유턴을 막 하고 있는 저란 인간은... 손 들고 있을게요. 자진 범칙금 납세요!


 



오스트리아에 있는 범죄자 수용소




 


 이 일의 요점은 그런 사건을 다루고 대하는 다른 사람들의 태도에 관한 것입니다. 끔찍한 사건을 미디어의 소재로 삼고 더군다나 사건의 피해자인 죽은 아이의 엄마에게 미리 사전동의도 구하지 않은 상태로 영화를 제작했다더군요. 제임스의 엄마 데니스 퍼거스는 자신의 트위터에 "소위

'영화'라고 하는 것이 만들어지고 아카데미상 후보에 오른 것이 얼마나 역겹고 화가 나는지 다 표현 못 할 정도다"라고 얘기합니다.


 

 영화를 감독한 빈센트 램은 그녀에게 영화가 그들을 불쾌하게 만들었다면 미안하다며 사과를 했죠. 미안하다는 말은 옆사람 발을 밟고도 할 수 있는 입니다. 상처를 덮은 딱지를 억지로

떼어내고 흐르는 피가 너무 많아 허둥대는 이에게 지혈제도 주지 않고, "미안해!"라고 하는 건 사과

일 수가 없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녀는 제임스 벌거 메모리얼 트러스트라는 단체를 통해 사랑하는 아들을 기리며, 제가 서두에 인용한 소설 속의 어머니처럼 노래를 하고 있습니다. 너무 빨리 곁

 을 떠난 아이를 기억하며, 그와 같은 피해를 입은 가족들을 돕는 것으로 살아갈 힘을 얻고 있는데 그 상처를 억지로 헤집는 영화제작을 보며 분노하게 된 것이죠.



 범죄를 저지른 그 소년들은 8년형을 받고 감옥에서 있다가 영구집행유예로 풀려났습니다. 벌거의 아버지는 공개적으로 그들에게 복수를

다짐했습니다. 너무 빨리 죗값을 치르고 나오는 그들을 지켜보며 어떤 심정이었을지, 상상이 가질 않아요. 그런데 법은 벌거의 아버지가 한 공개적 복수로 인해 신변보호차 그들의 이름도 바꾸고 보호받으며 살아가게 만들어 주었죠. 그렇게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잊히는가 했더니 가해자 중 하나인 베너블스는 보호감찰 중에 끔찍한 일을 당한 아동들 사진을 컴퓨터 하드에 수천 장 저장한 일로 다시 감옥에 가게 됩니다. 이들은 계도가 될까요? 그게 가능할까요? 이 질문에는 25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누구도 대답을 못하고 있죠.








 제작되고 소통되는 모든 미디어들이 갖고 있는 화제성에 목말라하는 속성들은 익히 알고 있지만, 사람들의 이목을 끄는 자극적인 주제를 선택했을 때 그로 인해 원치 않는 아픈 기억을 강제소환 당하는 피해자들에 대한 보호나 배려는 생각하지 않는 모습들이 씁쓸해지는 순간입니다.



 학폭의 피해자가 결국 생을 마감해야 끝나는 그들을 향한 과도한 관심과 살을 덧붙이는 뉴스의 재생산이 아닌 피해자가 감당하는 기억과 슬픔의 무게에 대한 생각을 더 많이 하길 바랍니다. 저 또한 한 장의 사진을 찍거나 혹은 화제성만을 생각해서 어떤 글을 쓰거나 하는 일로 다른 이들에게 피해를 주는 일은 없었는지 다시 한번 생각해 보게 되던 중입니다. 남겨진 이들이 부르는 기억의 노래들을 함부로 훼손하는 일이 없기를 가만히 기원하는 날이네요.

 














* 같이 듣고 싶은 곡


조성진 - 헨델 미뉴에트 (Wilhelm Kempff)

https://youtu.be/5ctnesYYicM?si=6CHJQrwA-2mXIPgj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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