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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ono Nov 02. 2023

Recordarse

내가 글을 쓰는 이유






 당신도 알 것 같은데, 스페인 말에 이런 게 있어요. 지금도 쓰이는 말인지는 모르겠어요. 그들은 잠을 깨울 때 "일어나"라고 말하는 대신 "recordarse"라고 말해요. 너 자신을 생각해 내라, 너 자신을 기억해 내라,라는 말이지요. 어머니는 이렇게 말씀하시곤 했어요. "Que me recuerde a las ocho(8시에 나 자신을 기억해 내게 해주렴)."

 매일 아침 난 이런 느낌이에요. 나는 거의 존재하지 않으니까요. 그래서 잠에서 깨면 늘 실망스러운 기분이랍니다. 내가 여기 있으니까요.  낡고 어리석은, 똑같은 게임이 계속되고 있으니까요.

 나는 어떤 사람이 되어야 해요. 정확히 그 어떤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내겐 수행해야 할 일들이 있죠. 그 가운데 하나는 온 하루를 살아야 하는 것이에요. 나는 내 앞에 놓인 그 모든 일상을 봐요. 모든 게 나를 피곤하게 하죠. 물론 젊은 사람들은 이런 식으로 느끼지 않을 거예요. 이 경이로운 세계에 돌아왔으니 참 기쁘구나,라고 느끼겠죠. 그러나 나는 그런 식으로 느낀 적이 없는 것 같아요. 젊었을 때조차 말이에요.

 나는 이제 그냥 받아들여요. 지금은 눈을 뜨면 이렇게 말하죠. 또 하루를 맞닥뜨려야 해. 그렇게 생각하면서 그냥 넘어가요.   


 - 보르헤스의 말 /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 윌리스 반스톤 저



김재호 : 숨바꼭질





 아침에 눈을 떠 눈꺼풀 위에 두껍게 내려앉은 잠의 무게를 밀어내기 위해 애를 쓰다 벽지에 일렁이는 빛들의 무도를 보죠. 눈 안에 담기는 모든 순간이 낯설게 느껴지면 나도 모르게 움츠러들어요. 그럴 때는 이불을 뒤집어쓰고 발가락만 두어 개 내놓고 달팽이 이마 위 더듬이처럼 탐색을 해요. 그리고 주문을 외우죠.


"Recordarse"

"Recordarse"

"Recordarse"


 아흔의 눈먼 시인, 불멸을 꿈꾸지 않고 자신이 지은 책 한 권 서재에 두지 않던 그. 그저 읽히고 잊히길 바랐던 보르헤스의 말을 되뇌곤 해요.



좌 : 등불                                  우 : 비 온 후




 똑같으나 똑같지 않은 하루를 매일 살아내죠. 하루씩은 괜찮아요. 하지만 년도가 바뀌고 생의 앞자리가 바뀔 때면 제 시간에서 사라진 어떤 시기가 생각이 나지 않아 억지로 기억해 내다 머리에 쥐가 나는 줄 알았더랬죠.



 나를 알아가며 내가 만들어야 할 삶의 시간을 어떻게 만들어가고 있는지에 대한 확신도 없이 그저 주어진 일과를 볼이 미어터지도록 떡을 먹는 어리석은 아이처럼 그렇게 소화해 내고 있었어요. 딱 한 번만 살기를 바라는 삶, 열심히 살면 그걸로 족하다 생각하거든요.




김재호 : 기다림




 그러던 중 리사 제노바의 스틸 앨리스를 읽게 되었죠. 조발성 알츠하이머병 진단을 받게 된 50대의 저명한 언어학자 앨리스. 죽은 이에게 영원한 안식을 허락하기 위한 레테의 강물이 살아있는 우리들에게 일찍 닿아 생기는 병이 알츠하이머병이라고 생각해요. 잔인하고도 두려운 병이죠. 내게 있는 모든 기억들을 지워버리고 마지막에는 아무것도 남지 않아 버리는.



 스틸 앨리스가 줄리언 무어 주연의 영화로도 만들어졌는데, 영화 속에서 알츠하이머 협회에 초대된 앨리스의 연설 장면이 나옵니다.


"시인 엘리자베스 비숍이 이렇게 말했죠.

상실의 기술은 어렵지 않다. 모든 것의 의도가 상실에 있으니.

전 시인이 아니라 조발성 알츠하이머 환자이지만 매일 상실의 기술을 배우고 있습니다. 전 고통스럽지 않습니다. 이 세상의 일부가 되기 위해서 예전의 나로 남아있기 위해서죠.

...

순간을 살라고 스스로에게 말합니다. 제가 할 수 있는 건 순간을 사는 것과 스스로를 너무 다그치지 않는 것, 상실의 기술을 배우고 스스로를 몰아붙이지 않는 것입니다."





김재호 : 여행자
김재호 : 나는 간다






 전혀 다른 두 인물의 말이 제가 글을 쓰게 만들었어요. 스틸 앨리스 속 그녀처럼 저의 오늘을 잊어버릴까 봐 기록하고, 보르헤스의 말처럼 눈을 뜨고 내가 보는 세상 속 내가 있는 자리가 어디인지를 매일 새롭게 좌표를 찾듯 알아가며 살기 위해 말이죠.



 혼자 써오던 글들을 밖으로 꺼내 보라고 독려한 사람이 제 동생이죠. 브런치 작가신청도 동생이 권유해서 한 일이죠. 그래서 동생에게 약속했던 스페인 여행기를 완성한 것이 이곳에서의 제 첫 번째 책이 되었습니다. 나름 뿌듯했어요. 기억들을 다시 나누고 확인하며 우리들이 가장 즐거웠던 순간들을 새롭게 써 내려갈 수 있었으니까요.



 어린 시절의 어두운 기억들 위로 덧입혀진 여행의 추억들로 지금 우리는 새로운 여행도 꿈꾸는 중입니다.





9월




 그리고 오늘 정말 오랜만에 연락이 온 친구를 만났습니다. 몇 년의 시간을 뛰어넘어 다시 닿은 날, 서로에게 들려줄 이야기들이 참 많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주어진 시간은 짧은데 말이죠. 몇 년 치의 말 대신, 친구에게 브런치 속 써놓은 글들을 읽어보라 내밀었죠. 글 쓰기를 잘했다 생각이 들었어요. 하게 쏟아내는 말 대신 일상이 담긴 글들로 하고 싶은 이야기들을 천천히 전할 수 있다는 것이 정말 좋더군요. 친구에게도 권했어요. 네 안의 이야기를 써보라고요. 듣고 싶거든요. 그 녀석이 지나 온 시간들이 어땠는지요.



영화 포스터 : 아... 벌써 몇 년!




 당신이 글을 쓰면 좋겠습니다.



당신 안에 갇혀 있는 이야기들이 공감의 힘을 얻고 세상에서 생각의 나무들로 자라나면 좋겠습니다. 잊히더라도 누군가의 마음속 한 소금의 씨앗이 되고, 가늠되지 않는 먼 내일 돌아볼 이정표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지금 이곳에서, 우리가 글을 쓰는 .



 "Recordarse"











* 같이 듣고 싶은 곡

터치드 - 새벽별









좌 : 앗! 지각이다.                    우 : 구름 산책







#모산조형미술관

#김재호전시

#스틸엘리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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