늦은 밤, "삭힘의 미학"이라는 다큐멘터리를 보았습니다. 산미구엘을 커다란 유리컵에 따라 들고, 냉장고로 향하는 탐욕스러운 제 눈길을 다른 곳으로 돌리기 위해 애쓴 결과였죠. 우연히 보게 된 이 프로그램을 통해 즐거운 세상 탐험을 했죠. 턱받이 할 뻔했어요. 다양한 음식들 중, 우리나라와 아이슬란드의 홍어, 모쒀족의 저표육이 제일 기억에 남네요.
전라도의 잔칫상과 제사상에 빠지지 않고 올려지는 홍어, 붉고 도톰한 생선살들이 즐비하게 늘어서 반짝거리며 손님을 끄는 광주 양동시장 골목에 가면 코에 훅 스미는 진한 향이 넘실거리며 시장 골목을 채우고 있죠. 대만에 갔을 때 골목에서 한 번씩 밀려오던 독특한 향에 어지럼증을 느낄 때와는 달리(취두 부였던 거 같어라. 아니, 확신해요. 그 향기!) 이 골목의 냄새는 비록 제가 직접 먹지는 못하지만 참 친숙하게 다가와요.
능숙하게 포를 떠서 일회용 용기 위에 맛깔스레 배열하고 순식간에 랩으로 포장해 버리는 달인 같은 손놀림을 보고 있는 즐거움도 시장 구경의 즐거움을 배가 시키는데 일조하죠. 나이 드신 할머니, 할아버지들께서 홍어코라 하는 물컹한 부위를 초장에 찍어 맛있게 드실 때 짓는 흐뭇한 미소들을 보는 것도 즐거워요.
이런 홍어를 아이슬란드 사람들도 먹는다고 해요. 그것도 크리스마스이브 전날, 시장에서 사 온 홍어를 조리해서 온 가족이 둘러앉아서 먹는다더군요. 우리와 조리법이 조금 다른지라 저들은 어떤 맛을 느끼며 먹는가 궁금했는데 인터뷰에서 '독특하게 쏘는 맛으로 먹는다'라는 여성분의 말을 듣고 웃었죠. 우리가 느끼는 맛이랑 같구나 싶어서요. 우아한 곡선의 은제 촛대가 두 세기 전의 유물 같은 고풍스러운 탁자 위에 놓인 홍어나 탁주잔 위에 뽀얀 막걸리 찰방이며 흥에 겨워 움직이는 우리네 잔치상이나 홍어살들을 열심히 나눠먹는 모습은 매한가지 정겹고 따뜻한 풍경이어서 좋더군요.
그리고 중국의 모쒀족이 즐겨 먹는다는 "저표육(주피아오로우)"가 등장합니다. 먹거리가 생겨난 이유도 궁금하고, 원난성의 소수민족이라 하는 모쒀족의 풍습도 궁금해서 찾아보게 되었죠. 이름이 낯익다 했는데 이들이 바로 지구상에 마지막 남은 모계사회 부족이라고 합니다. 모쒀족에게는 결혼제도가 없답니다. 여자들은 평생 여러 애인을 갖으며 자유롭게 생활을 하다 출산하면 아이는 오로지 어머니의 자식으로 인정되며, 혈통은 모두 모계로 이어진다고 합니다. 가모장인 할머니, 할머니의 딸과 아들, 딸이 낳은 손주들로 이루어진 모계 대가족이 모쒀족 가정의 기본 단위가 되는 셈이죠.
성인식을 치른 여성은 자기만의 방인 '꽃방'을 갖는답니다. 이름이 참 이쁘죠? 꽃방. 모쒀족의 남자들은 이 방 창문을 두드리며 좋아하는 여인에게 구애를 한답니다. 남자가 마음에 들면 문을 열어주고 관계의 꽃을 피우나 평생을 같이 하지는 않는다는 독특한 풍습을 갖고 있는 부족입니다. 이곳에서는 10월부터 이듬해 동짓날 사이 집집마다 돼지를 잡습니다. 커다란 흑돼지를 잡아 끓는 물을 부어서 날카로운 칼날로 순식간에 털을 벗기죠. 안에 있는 모든 장기들을 다 꺼내고 비워낸 몸통에 흰 소금을 곱게 뿌려 염장을 합니다. 꼼꼼하게 소금옷을 입힌 돼지는 갈라진 배를 다시 꿰매 긴 장대에 걸어 집의 가장 따뜻한 공간에 놓아두죠. 음... 그 향이 대체 어떨지 가늠이 되지 않아요.
보통 1년이 지나면 먹을 수 있지만 6년에서 7년 사이 삭힌 걸 최상의 것이라 생각한답니다. 그렇게까지 오랜 시간 관리를 할 수 있다는 건 그 집이 부자이며, 집안 여인들이 굉장히 부지런하다는 걸 뜻하기에 마을 내의 큰 자랑거리가 된다고 합니다. 삭힘의 시간이 지나 집안 어른 제사를 마치고 온 가족이 둘러앉아서 저표육을 얇게 저며 한 점씩 입에 넣고 오물거리면서 먹는 장면이 나오는데 저도 모르게 같이 침을 삼킬 만큼 맛있어 보여요. 투명하게 변한 저표육의 육질이 맛깔스레 빛나는데 표면이 촉촉하니 안에는 호박보석처럼 영롱한 노란빛으로 반짝거려요. 시간이 만들어 낸 또 다른 미술품처럼 다가왔죠.
모산조형미술관 오주완 작품
부패와 발효는 한 끗 차이죠. 두 작용 모두 미생물이 유기물들을 분해하는 동일한 과정을 거칩니다. 그런데 하나는 아예 버릴 것이 되어버려 치워 지고, 다른 것은 독특한 풍미를 지닌 훌륭한 음식으로 식탁에 오르죠. 썩은 음식과 삭힌 음식. 그 구분은 어디에서 시작될까 궁금해집니다. 원효대사가 맛있게 마신 해골물처럼 그저 마음먹기에 달린 걸로 이런 음식들을 발견해 냈을까요? 음식에서 이어진 생각의 끈이 마음으로 이어집니다. 그리고 우리네 삶으로도요.
삭힘과 썩음. 어떤 것은 삭힐수록 안에 고여 지혜의 정수로 남아 삶을 지탱하는 추가되어줄 수 있겠죠. 하지만 어떤 것들은 제때 덜어내지 못해 결국엔 썩어버려 아예 도려내야만 하는 것들도 있겠구요. 마음도 그렇거든요. 고여있어 흘러나갈 틈을 찾지 못하면 변하기 시작해요. 심지까지 보일 듯 맑았던 공간이 켜켜이 쌓인 걸쭉해진 진액들로 더럽혀져 색이 변하고, 그다음엔 말투도 행동도 변하게 되죠.
혜환 이용휴의 산문집에 이런 글이 나옵니다. 그의 벗인 신처사라는 사람이 자신이 사는 집에다 편액을 백인당百忍堂이라 하고, 혜환선생에게 기記를 지어달라고 부탁을 해서 쓴 글을 옮겨보자면,
"나는 이른다. 인忍이라는 글자는 인忍을 따르고 심心을 따른 것이다. 칼날이 가슴을 찌르면 참기가 어렵다. 인刃은 금金이고 심心은 화火이다. 금이 화를 만나면 참기는 더욱 어렵다. 또 천지는 겨울로 인忍을 삼고, 강과 바다는 내려가는 것으로 인忍을 삼으니, 사람이 참지 않을 수 있겠는가?
자신에게 잘못을 범해도 따지지 않고, 도전하여도 응전하지 않은 연후에야 이에 성취함이 있게 되는 것이다."
참고 견디는 시간들이 있죠. 우리들의 일상에서요. 영상 보기 전 맥주 안주 안 먹고 참는 것도 포함시켜 본다면 인내해야 할 것들이 참 많습니다. 내가 하고 싶은 일도 해야 할 일들에 밀려 우선은 뒤로 해야 하고 끊임없이 인내심의 한계치를 시험해 오는 주변 사람들까지. 우리를 둘러싼 환경 속 소리들이 날카로운 뼈가 되어 우리를 찌르고 있다 생각이 드는 날이 있습니다.
그러던 중 삭힌 음식의 미학과 혜환 이용휴 선생의 글로 하루동안 제게 꽂힌 소리의 뼈들을 뽑아내고, 마음의 모난 구석을 다듬으며 "삭혀"봅니다. 이렇게 삭히면 저도 언젠가 저표육 버금가는 마음의 결과물들을 만들어 낼 수 있을 거라 믿으면서 말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