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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ono Nov 10. 2023

완보緩步가 답이다











 제2회 빛을 찾는 사람들 사진전 개막식인 오늘, 어제저녁 회원들 다 같이 설치한 작품들이 밤새 무사한지 살펴볼 겸 집을 나선다. 개인적으로 첫 번째 참가하는 전시회 설레고 떨리는 마음을 다잡기가 힘들다. 커다랗게 인화돼서 만나는 사진 속에는 그 장면을 담던 순간의 내 마음과 날씨, 생각까지 모두 담겨있어 더 큰 감동을 준다. 한 가지 몰두할 수 있고, 내가 사랑할 수 있는 일이 있다는 건 분명 축복이다. 전시장 한쪽에 나란히 세워진 내 사진들을 차분히 다시 볼 걸 생각하며 아무도 모르게 히죽이는 중이었다.  



 시내로 향하는 2차선의 도로 중 왼쪽 줄에 차를 대고 신호가 바뀌길 기다리는 중이었다.

청라 쪽으로 빠져나가는 출구가 연결된 나오른쪽 선은 맨 앞 1대만 정차해서 신호대기를 할 수 있다. 만일 출근길의 용자라면(가령 어제 마신 술이 덜 깨 아직 사리분별이 불가능한) 죽 이어질 뒤차들의 행진을 무시하고 오른쪽에 차를 수도 있지만, 이 동네 사람들의 암묵적인 합의는 비교적 잘 지켜져 항상  대만 서 있는 편이다. 


 내 오른편에 선 차의 운전자가 보인다. 담배를 입에 비스듬히 물고 인상을 찌푸린 채 핸드폰 화면을 연신 두드리고 있다. 검지족의 놀라운 타법을 시전 하며 그는 누군가와 성마른 대화를 시도 중이다. 브레이크를 밟고 있을 텐데도 앞으로 조금씩 밀리는 그 차가 어쩐지 불안하다. 신호가 바뀌자마자 앞으로 튀어나갈 준비를 하고 있는가 보다. 누군지 몰라도 지금 그의 대화상대와 만나게 되면 말죽거리 잔혹사 한편은 찍을 것 같은 표정이다.  


 사거리 건너편을 본다. 리어카 한대가 맞은편 도로에서 우리 쪽을 향해 오고 있다. 횡단보도 선과 불과 30여 미터 차이인 리어카, 오른편 차선에 정차한 흰색 포터의 상황을 주시하고 있으니 내 머릿속에는 한 편의 상황극이 펼쳐진다. 앞을 제대로 확인하지 않은 상태에서 그 차가 출발했다가 나중에서야 리어카를 보고 급정거를 하거나 차선을 급하게 변경해 내쪽으로 넘어 올 가능성이 크다. 한블리 아저씨에게 지금 이 시간의 블랙박스를 보내본다면 이다음 상황에 대한 추측과 함께 방청객 모두 한 목소리로 침음성을 흘릴 가능성이 엿보이는 상황이다.


 만약 내 상상 속 그런 일이 일어난다면 리어카를 끌고 있는 분은 피할 수 있을까? 뒤에 쌓인 한 무더기의 폐지를 보아하니 쉽사리 손잡이 방향을 바꿀 수도, 또 행로 안에 마땅히 피할 수 있는 공간도 없어 보인다. 나는 신호가 바뀌고 속으로 3까지 센 뒤 출발을 한다. 벌써 뒤에선 빨리 가라고 경적을 울린다.  뒤에 광고판을 하나 달까 싶다.

"그렇게 급하면 어제 오지 그랬?"가 반짝반짝 춤추면서 지나가는.


 예상이 맞았다. 급하게 출발한 포터의 운전자는 앞에 오던 리어카를 보지 못하고 급당황하더니 깜빡이도 켜지 않은 채 내쪽 차선으로 훅 들어온다. 느릿하게 따라간 난 비상등을 켜고 그에게 길을 내준다. 속으로야 육두문자가 나오지만 대비하고 있던 차라 뒤차들에게도 신호를 주며 찰나의 상황을 마무리 짓는다. 차선을 침범했던 성마른 그는 미안하다는 신호도 없이 제 갈길을 가느라 담배연기보다 진한 매연만 뿜어대며 간다.




 느릿하게 스치는 리어카 아저씨, 그는 이러한 상황을 아는지 모르는지 정말 해맑은 얼굴로 열심히 걷고 있다. 입모양이 마치 "영치기영차, 영차차!"란 구호를 외치는 듯 옴짝옴짝 움직이고 있다. 폐지를 주워 팔아도 물가 상승률을 따라갈 수 없는 가격은 매일 하향세라 했다. 전보다 박해진 고물상의 매입 금액으로 하루 내내 발품을 판 이들의 곡소리가 커져간다는 뉴스를 읽은 지 얼마 되지 않는다. 그런데도 아저씨의 얼굴이 소풍 나온 어린아이처럼 밝고 천진한다.


 그때였다. 앞선 아저씨의 리어카에 가려져 있던 뒤따라 오는 작은 리어카가 보인다. 마치 개미의 가슴과 배처럼 바짝 붙어 오는 리어카는 여자분이 끌고 있었다. 부부인 듯 닮은 인상에 옴짝이던 아저씨의 입술 구호에 맞추어 화답하듯 움직이는 아주머니의 입술이 보인다. 두 분은 지금 무슨 노래를 하고 있을까? 아니면 무슨 이야기를 소리 높여하고 있을까? 자신들이 함께 나눌 점심에 대해, 자식들의 미래에 대해, 다음의 행선지를 향해... 물음표로 비워놓은 두 분의 말풍선. 무엇이든 따뜻한 온기가 담긴 말들이 오갈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저마다의 삶의 시간은 서로 다른 결로 채워지기에 섣부른 동정이나 판단을 하지 않고 지켜보며 듣는 일부터 먼저 하려고 노력한다. 사진이 좋은 이유도 때론 소리가 사라진 채 나만의 셔터속도로 붙들린 세상의 틈을 기록할 수 있어서이다. 렇게 하기 위해서는 늘 느릿한 걸음, 완보가 답이다.


 달팽이처럼 느릿하게 하지만 꾸준한 걸음으로 만나는 세상. 오늘의 주인공인 저 두 분의 하루가 부디 안녕하셨길 바란다.











좌 : 무구의 응시                               우 : 밤의 숨결
좌 : 귀천                                우 : 잊혀진 이야기










* 같이 듣고 싶은 곡


- 비킹구르 올라프손의 피아노연주곡 모음

https://youtu.be/6lw9kbY1F7A?si=Psi9RBJ0CsfYCOvL










#빛찾사사진전

#깨알홍보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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