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회 빛을 찾는 사람들 사진전 개막식인 오늘, 어제저녁 회원들 다 같이 설치한 작품들이 밤새 무사한지 살펴볼 겸 집을 나선다. 개인적으로 첫 번째 참가하는 전시회라 설레고 떨리는 마음을 다잡기가 힘들다. 커다랗게 인화돼서 만나는 사진 속에는 그 장면을 담던 순간의 내 마음과 날씨, 생각까지 모두 담겨있어 더 큰 감동을 준다. 한 가지 몰두할 수 있고, 내가 사랑할 수 있는 일이 있다는 건 분명 축복이다. 전시장 한쪽에 나란히 세워진 내 사진들을 차분히 다시 볼 걸 생각하며 아무도 모르게 히죽이는 중이었다.
시내로 향하는 2차선의 도로 중 왼쪽 줄에 차를 대고 신호가 바뀌길 기다리는 중이었다.
청라 쪽으로 빠져나가는 출구가 연결된 나의 오른쪽 선은 맨 앞 1대만 정차해서 신호대기를 할 수 있다. 만일 출근길의 용자라면(가령 어제 마신 술이 덜 깨 아직 사리분별이 불가능한) 죽 이어질 뒤차들의 행진을 무시하고 오른쪽에 차를 댈 수도 있지만, 이 동네 사람들의 암묵적인 합의는 비교적 잘 지켜져 항상 한대만 서 있는 편이다.
내 오른편에 선 차의 운전자가 보인다. 담배를 입에 비스듬히 물고 인상을 찌푸린 채 핸드폰 화면을 연신 두드리고 있다. 검지족의 놀라운 타법을 시전 하며 그는 누군가와 성마른 대화를 시도 중이다. 브레이크를 밟고 있을 텐데도 앞으로 조금씩 밀리는 그 차가 어쩐지 불안하다. 신호가 바뀌자마자 앞으로 튀어나갈 준비를 하고 있는가 보다. 누군지 몰라도 지금 그의 대화상대와 만나게 되면 말죽거리 잔혹사 한편은 찍을 것 같은 표정이다.
사거리 건너편을 본다. 리어카 한대가 맞은편 도로에서 우리쪽을 향해 오고 있다. 횡단보도 선과 불과 30여 미터 차이인 리어카, 오른편 차선에 정차한 흰색 포터의 상황을 주시하고 있으니 내 머릿속에는 한 편의 상황극이 펼쳐진다. 앞을 제대로 확인하지 않은 상태에서 그 차가 출발했다가 나중에서야 리어카를 보고 급정거를 하거나 차선을 급하게 변경해 내쪽으로 넘어 올 가능성이 크다. 한블리 아저씨에게 지금 이 시간의 블랙박스를 보내본다면 이다음 상황에 대한 추측과 함께 방청객 모두 한 목소리로 침음성을 흘릴 가능성이 엿보이는 상황이다.
만약 내 상상 속 그런 일이 일어난다면 리어카를 끌고 있는 분은 피할 수 있을까? 뒤에 쌓인 한 무더기의 폐지를 보아하니 쉽사리 손잡이 방향을 바꿀 수도, 또 행로 안에 마땅히 피할수 있는 공간도 없어 보인다. 나는 신호가 바뀌고 속으로 3까지 센 뒤 출발을 한다. 벌써 뒤에선 빨리 가라고 경적을 울린다. 차 뒤에 광고판을 하나 달까 싶다.
"그렇게 급하면 어제 오지 그랬슈?"가 반짝반짝 춤추면서 지나가는.
예상이 맞았다. 급하게 출발한 포터의 운전자는 앞에 오던 리어카를 보지 못하고 급당황하더니 깜빡이도 켜지 않은 채 내쪽 차선으로 훅 들어온다. 느릿하게 따라간 난 비상등을 켜고 그에게 길을 내준다. 속으로야 육두문자가 나오지만 대비하고 있던 차라 뒤차들에게도 신호를 주며 찰나의 상황을 마무리 짓는다. 차선을 침범했던 성마른 그는 미안하다는 신호도 없이 제 갈길을 가느라 담배연기보다 진한 매연만 뿜어대며 간다.
느릿하게 스치는 리어카 아저씨, 그는 이러한 상황을 아는지 모르는지 정말 해맑은 얼굴로 열심히 걷고 있다. 입모양이 마치 "영치기영차, 영차차!"란 구호를 외치는 듯 옴짝옴짝 움직이고 있다. 폐지를 주워 팔아도 물가 상승률을 따라갈 수 없는 가격은 매일 하향세라 했다. 전보다 박해진 고물상의 매입 금액으로 하루 내내 발품을 판 이들의 곡소리가 커져간다는 뉴스를 읽은 지 얼마 되지 않는다. 그런데도 아저씨의 얼굴이 소풍나온 어린아이처럼 밝고 천진한다.
그때였다. 앞선 아저씨의 리어카에 가려져 있던 뒤따라 오는 작은 리어카가 보인다. 마치 개미의 가슴과 배처럼 바짝 붙어 오는 리어카는 여자분이 끌고 있었다. 부부인 듯 닮은 인상에 옴짝이던 아저씨의 입술 구호에 맞추어 화답하듯 움직이는 아주머니의 입술이 보인다. 두 분은 지금 무슨 노래를 하고 있을까? 아니면 무슨 이야기를 소리 높여하고 있을까? 자신들이 함께 나눌 점심에 대해, 자식들의 미래에 대해, 다음의 행선지를 향해... 물음표로 비워놓은 두 분의 말풍선. 무엇이든 따뜻한 온기가 담긴 말들이 오갈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저마다의 삶의 시간은 서로 다른 결로 채워지기에 섣부른 동정이나 판단을 하지 않고 지켜보며 듣는 일부터 먼저 하려고 노력한다. 사진이 좋은 이유도 때론 소리가 사라진 채 나만의 셔터속도로 붙들린 세상의 틈을 기록할 수 있어서이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늘 느릿한 걸음, 완보가 답이다.
달팽이처럼 느릿하게 하지만 꾸준한 걸음으로 만나는 세상. 오늘의 주인공인 저 두 분의 하루가 부디 안녕하셨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