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시계는 거꾸로 간다. 쉼이 있는 다른 이들의 일요일이 내게는 긴장감 가득한 하루이다. 전투에 임하는 각오로 굳어있는 몸을 깨우기 위해 오늘은 등산을 포기하고 요가를 한다고 버둥대며 아침을 열었다. 이 생에선 허락되지 않는 유연성을 노력으로 극복해 보고자 고군분투해보지만 쥐가 난 다리를 붙들고 쪼그려 앉아 외마디 비명을 지르는 일이 다반사이다. 그 뒤 이어지는 시험대비 특강과 앙상블 합주까지 마치고 나니 귀와 마음이 소란하다.
이명처럼 따라붙는 하루의 소리들을 덜어낼 곳이 필요했다. 핸들을 돌려 차선을 바꾼다. 사랑하는 나의 바다, 털썩 짐 부리는 낙타처럼 모래사장 위에 주저앉으니 나를 감싸는 바닷바람의 습습함이 되려 내 정신을 맑게 해 준다. 마음의 소란을 비워낼 수 있는 환기구로 작은 섬이 엎드려 잠들어 있는 오천항의 오후 6시의 바다만큼 근사한 것이 또 어디 있을까?
인적 없는 백사장, 조개껍데기가 작은 방파제가 된 곳을 한참 걷고 있는데 저만치 웅크리고 있는 작은 새가 보인다. 파도가 발 앞에까지 밀려와 찰박이는데도 피하지 않고 곤히 잠든 새라니. 봉이 김선달보다 더한 태평으로 바다를 요람 삼아 잠들어 있는 녀석의 호기가 신기해 다가갔다. 이 녀석 봐라?
가까이 다가가는데 부리 앞까지 가도 미동이 전혀 없다. 360도로 주변을 돌아도 고개 한번 움직이는 법이 없는 새. 무슨 일이 있는 걸까? 녀석의 수면, 혹은 사색을 방해하는 내가 모래사장 위를 걸으면서 만드는 소리들이 미안해져 셔터를 누르던 손가락도 멈추고 물끄러미 녀석을 바라본다. 파도 소리가 우리를 감싸고 서로의 숨소리를 귀에 담는 꽤 오랜 시간이 지나자 드디어 고개를 들고 움직인다. 퍼뜩 든 고개, 내가 여기 왜 어떻게 있는지 모르겠다는 당혹스러운 눈빛이 잠에서 덜 깬 어린아이 같아 미소를 짓는데 비뚝비뚝 움직이다 앞으로 엎어져 일어나지를 못한다. 어떻게 도와야 저 녀석이 제대로 일어날지 마음이 급해진다.
날개를 펼치지 않고 마치 오래 엎어져있어 저려오는 팔다리를 어쩌지 못해 주저앉은 것처럼 허둥대는 발을 보다 직접 손을 대는 건 서로에게 위험할 것 같아 주변에 막대기 등을 찾아 달려오니 다행히도 다시 일어나 앉아 있다. 처음 내가 발견한 것처럼 그 자세를 잡더니 숨을 고르듯 가슴을 부풀리고는 그 위로 고개를 천천히 묻는다.
문득 지금 나는 어쩌면 이 녀석의 마지막을 바라보고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도움을 받지 않고, 힘겹게 일어나 앉은 모습에서 장곡사의 빛바랜 탱화 아래 놓여있던 불상을 보는 기분이 든다. 읽고 있던 책의 여파 때문이었을까? 박지영의 소설 <고독사 워크숍>의 또 하나의 등장인물을 만난 기분이었다.
심야코인세탁소에서 보낸 초대장에 응한 불특정하나 특정된 사람들이 자신에게 왜 고독사가 필요한지, 자신이 원하는 마지막을 위한 준비의 필요성을 보여주다 도리어 자신이 지금 살아가는 세상에서의 존재 이유를 찾아가는 소설이다. 제목이 주는 불편한 기운 때문에 읽기를 미루다 손에 들고는 결국 꼬박 밤을 새우게 만든 책이다. 책 속에 이런 대목이 나온다.
"친절과 배려가 탄수화물에서 나오듯 고독할 수 있는 힘 역시 강인한 체력과 단련된 근육에서 나왔다. 타인의 고독을 지켜 주는 힘 또한. 일 분이라도 혼자 플랭크 자세를 해 본 사람은 알게 된다. 혼자 버티며 산다는 건 얼마나 고독한 일인지. 수연 역시 반복된 훈련을 통해 알게 되었다. 우리의 고독은 대체로 단련될 수 있다는 걸."
- <고독사워크숍> p. 255
고독이, 가장 시리고 서러울 수 있는 시간이 도리어 단련을 통해 무뎌지고 그 무딤이 마지막 순간의 우리를 더욱 견고하고 위엄 있게 만들어 주는 원동력이 될 수 있다는 역설이라니. 그렇다면 지금 이 녀석의 고독은 어떤 의미일까? 무리와 떨어져 이렇게 앉아있은지는 얼마나 되었을까? 홀로 있는 시간이 주는 깊은 잠과 느려지는 맥박수는 굳어진 날개를 위로하기 위한 자연의 선물일까?
가장 고독한 순간에 더욱 절실해질 삶을 살아가는 이유에 대한 통찰. 책 속 등장인물들의 내밀한 이야기들이 새와 나, 단 둘이 서 있는 바닷가 물결 위로 펼쳐진다. 잘 짜인 글을 만난 즐거움. 서사의 탄탄함이 만들어내는 섬세한 연결과 또렷하게 구현되는 인물들의 생동감에 여운이 오래 남는 글을 마음속에 복기해 본다. 그리고 그들을 위로하듯 전해지던 말을 가만히 새에게 들려주듯 적어본다.
오 부장으로 출근하는 첫날, 오 부장은 할머니께 물었다.
할머니, 나 계속 이렇게 형편없이 살아도 될까?
할머니는 말했다.
당연하지. 세상이 왜 이렇게 형편없는 줄 알아? 형편없는 사람들만 살아남았기 때문이야. 그러니까 너도 형편없이 살아. 그러다가 가끔 근사한 일 한 번씩만 하면 돼. 계속 형편없는 일만 하면 자신에게도 형편없이 굴게 되니까. 근사한 일 한 번에 형편없는 일 아홉 개, 그 정도면 충분해.
살아 있는 거 자체가 죽여주게 근사한 거니까, 근사한 일은 그걸로 충분히 했으니까 나머지는 형편없는 일들로 수두룩 빽빽하게 채워도 괜찮다고.
뭐야, 할머니. 혼자 근사한 척은.
오 부장은 괜히 투덜대며 텅 빈 방을 둘러보았다. 할머니는 이제 없다. 하지만 할머니라면 그렇게 대답해 줄 것을 오 부장은 알고 있었다.
- <고독사 워크숍>, 박지영. p. 376 중에서
네가 접고 있는 날개도, 내가 주저앉아 있는 지금 이 순간도. 삶이란 내일을 그려내기 위한 쉼이니까. 잘 자. 그리고 다음번에는 날듯이 내 머리 위를 스쳐 지나가줘. 죽여주게 근사한 모습으로. 살아있다는 건 죽여주게 근사한 거니까! 그런 거니까!
나는 다시 잠든 새를 바다가 해를 삼 키우는 중의 해변에 그대로 두고 돌아섰다. 그 녀석이 스쳐갈 길 위에 빛들이 함께하길. 마지막 잠, 온전한 고독의 완성을 위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