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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ono Dec 07. 2023

영혼의 시선



 드문드문 생각나는 어린 날 기억의 한 장면이 있. 연신내 초등학교 담벼락에 와 여동생을 나란히 세워 놓고 필름카메라로 우리들 모습을 찍던 엄마. 허리 부분이 길게 재단되고 어깨가 직각에 가깝게 똑 떨어지는  버튼의 감색 재킷에 긴 주름치마를 입고 끝이 둥글고 굽은 낮은 구두를 신었던 그날의 엄마가 한 번씩 또렷하게 떠오른다. 헤어스타일은 사자갈기처럼 부푼 파마머리로 입술은 보랏빛 팬지꽃으로 물들어 있고, 한쪽 눈썹은 잔뜩 일그러져있고, 다른 쪽은 필름카메라의 둥근 렌즈가 눈대신 자리해 빛나고 있었던 엄마의 어느 날이 김장한다며 며칠 고생해서 흰머리가 더욱 늘어난 요즘의 모습과 선명한 대조를 이룬다.

 


 가끔 목에 카메라를 걸고 막냇동생을 품에 안거나 업고 와 여동생은 입으로 조종하시며 북한산에 가 돗자리 펴고 앉아 오수를 즐기다 우리를 촬영하시거나 무언가를 엎지르고 나무 밑으로 도망가는 로 인해 목에 핏대를 세우시기도 했던 우리 고여사 님. 그 순간순간들이 정지된 화면으로 남았던 우리들의 어린 날이 담긴 사진첩은 안타깝게도 여러 번의 이사로 인해 잃어버렸다. 누군가 발견을 했더라면 다양한 표정과 동작의 우리들 모습으로 들춰보다 웃음 지었을지도 모를 따뜻하고 슬픈 날들의 기록들. 어디에서 끊겼을까, 우리들의 기억은. 엄마는 어쩌면 한국의 비비안

마이어일지도 모른다. 그때 찍은 엄마의 사진들을 생각해 보면 구도와 색감, 빛, 배경 등등 사진에 필요한 다양한 요소들을 고려해 찍은 멋진 장면들이 참 많았는데... 지금 내가 사진에 몰두하게 된 것도 어쩌면 엄마의 영향이지 않을까 싶다.  



다른 누군가를 찍는다는 건 어쩌면 그 사람의 일부를 가두는 일 같다는 생각이 든다. 특정한 날, 특정한 사건 속에 그대로 봉인된 그의 일부는 오랜 시간이 지나도 완벽한 서사가 되어 시간의 더깨 흐릿해진 기억을 되살리는 마법의 펜시브가 되어준다. 그러나 인물사진을 찍은 일은 굉장한 용기가 필요하다. 초상권 따위 없다 일찌감치 선언하고 가 틈만 나면 담는 조카의 얼굴도 아이의 기분과 건강상태, 그날의 환경이 만들어내는 피부결의 변화 등 매일매일 다르다. 한참을 지켜보다 오늘은 이 한 장이면 된다고 카메라를 거두기까지 아이를 향한 집중의 시간이 필요하다. 낯선 이를 담는 일은 이보다 더 큰 집중과 이해를 필요로 하기에 인물을 향한 카메라 렌즈 조준은 아직도 많이 먼 이야기다.







 앙리 카르티에-브레송의 사진전에 다녀왔던 날의 사진첩을 뒤적인다. 어느 날 문득, 아침에 눈뜨니 무엇이라도 하고 싶은 욕구에 앉아있질 못하겠는 그런 날이 있다. 그날도 꼭 그런 날이었다. 아침에 눈을 뜨니 끈적한 습기에 감싸인 공기가 를 짓누르는 그런 기분이 들어 혼자 숨을 몰아 쉬다 소름 돋을 정도의 찬물로 씻고 집을 나섰다. 무작정 카메라 들고 뛰어나갔는데, 여름휴가 떠난 집들이 많은 덕분에 생겨난 수업 스케줄 빈 틈을 더 길게 벌려두고 달렸다. 눈 감으면 딱지 떼일 서울로!

불면의 밤 덕분에 사람들이 덜한 새벽을 따라 달리니 전시 오픈 시간보다 일찍 도착해 서 그가 쓴 책 "영혼의 시선"을 꺼내 읽으며 기다렸던 날.








나에게 사진은 순간과 순간의 영원성을 포착하는, 늘 세심한 눈으로부터 오는 자연스러운 충동이다. 드로잉은 우리의 의식이 순간적으로 파악하는 것을 섬세한 필적으로 구현해 낸다. 사진은, 성찰을 드로잉 하는 순간적인 행위이다." - 1992. 4. 47

            - 앙리 까르띠에 영혼의 시선 중 p. 41











사진가는 환경을 존중해야 하고, 사회적 배경을 묘사하는 삶의 환경을 포함시켜야 한다. - 중략- 얼굴의 표정만큼 순간적인 게 무엇이 있겠는가. 얼굴이 주는 첫인상은 거의 대부분 정확하다. 사람들을 자주 만나게 되면서 그 인상은 더 풍부해지고, 그들을 친밀하게 더 잘 알게 됨에 따라 깊은 본성을 표현하는 것은 더욱 힘들어진다.     -  p.30







 초상사진을 찍을 때, 이에 동의한 희생자의 내면의 침묵을 포착하고 싶어도, 그의 셔츠와 살갗 사이에 카메라를 밀어 넣기란 매우 어렵다. 연필로 그리는 초상화로 말하자면, 내면의 침묵은 화가에게 달린 것이다.  p.75






라이카 카메라 3대를 목에 걸고, 껑충껑충 뛰어다니며 때론 가만히 숨도 쉬지 않고 정물처럼 벽에 붙박이가 되어 누군가를 지켜보고, 어떤 날은 전쟁의 한복판에 서서 스나이퍼가 되어 한 장면씩 제대로 사냥해 오는 그가 찍은 인물 사진들을 오래도록 들여다본다. 다른 사진들은 인터넷을 통해서도 이미 여러 번 만났던 이미지들이지만,  "영혼의 시선"을 통해 인물 사진에 대한 그의 생각들을 만나본지라 그의 말처럼 화면에 담긴 인물들이 갖고 있는 체홉의 단편소설 같은 이야기들을 상상하며 거니는 순간들이 좋다.






들여다본다.

나를 스치는 사람들의 일상과 이야기를.

귀를 기울인다.

그들의 표정과 하고픈 이야기들이 무엇인지를.




그가 해왔던 기록의 시간들을 가만히 마음에 담으며 주변의 인물들에 대한 기록을 해보고 싶어 손가락이 꼼지락거린다. 오른손 검지손가락이 사진을 들여다보며 쉴 새 없이 움찔거린다. 나라면 저 장면을 어떻게 찍어볼까란 가정 속에서 숨 죽이며 응시하던 순간들이 떠오른다.


 

 그가 말했던 결정적인 순간까지는 아니더라도, 내 하루에서 가장 소중한 순간들을 기록할 수 있는 날이 되길 가만히 바라는 아침. 빛은 눈부시게 비어버린 들판을 감싸고 있다. 모네의 그림처럼 반짝이는 성에꽃 피어난 들판의 곤포 사일리지라도 만나러 가야겠다. 오늘 하루 여러분에게도 마음에 오래 남는 눈부신 한 장면은 꼭 자리하길 바라며, 이만 총총.










* 같이 듣고 싶은 곡


: n@di : Letter


https://youtu.be/E6i5yDXjvf8










#영혼의시선

#앙리카르티에-브레송

#n@d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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