걷는 순간이 좋습니다. 발바닥 전체가 땅에 닿게 내리누르면 중력을 이기고 일어선 나의 근육들이 조밀하게 응집되며 온몸이 개운하게 펼쳐지는 기분이 들거든요. 손에 든 카메라, 네모난 프레임 안에 세상이 담기며 나만의 화각으로 풍경을 훔쳐오는 일도 느리게 걸을 때 가능하죠.
순백의 설원 위 이런 산책에 대해 극찬한 작가가 있습니다. 스위스의 로베르트 발저는 실제로 산책 중 눈 위에 쓰러져 죽음을 맞이한 사람이죠. 음... 대충 보시고 객사했다 생각하시면 안 됩니다. 산책에 대한 예찬론을 들어보실래요?
활기를 찾고 살아 있는 세상과 관계를 정립하기 위해 반드시 해야 하는 일입니다. 세상에 대한 느낌이 없으면 나는 한마디도 쓸 수가 없고, 아주 작은 시도, 운문이든 산문이든 창작할 수 없습니다. 산책을 못 하면, 나는 죽은 것이고, 무척 사랑하는 내 직업도 사라집니다. 산책하는 일과 글로 남길 만한 것을 수집할 수 없다면 나는 더 이상 아무것도 기록할 수 없습니다.
ㅡ 로베르트 발저
열심히 걷던 그가 바라본 세상은 흰 눈으로 가득한 들판이었고, 그 풍경은 순백의 수의가 되어 그를 덮어주며 끌어안습니다. 마지막 순간 그의 눈에 담긴 흰 빛이 어쩌면 사람들이 말하는 죽음 직전 만나게 되는 차원의 문에서 새어 나온다는 빛이 되어주지 않았을까요?
방학특강으로 아침 9시부터 밤 11시 넘어서까지 이어지는 수업으로 좋아하는 산책을 못하니 마음이 어두워져 가요. 로그함수의 궤적을 따라 양의 무한대로 발산하는 탈출욕구가 이만큼 치솟습니다. 그런 저를 위로하기 위해 짐 자무시의 <패터슨>이란 영화를 다시 봅니다. 좋아하는 유튜브 음악편곡자 Off Web의 영상 속에서 우연히 보게 된 영화의 한 장면을 보고 반했었는데, 직접 보게 된 영화 속 그가 저와 정말 많이 닮아 놀랐더랬죠.
미국 뉴저지주의 소도시, 패터슨에서 살아가는 주인공 패터슨은 윌리엄 카를로스 윌리엄스란 그 도시 출신의 시인의 시를 좋아합니다. 버스 운전을 하며 생계를 이어가는 그에게 하루는 늘 똑같아요. 시리얼을 먹고 커다란 도시락 가방을 들고 출근을 하죠. 운전을 하며 승객 이야기를 엿듣고 퇴근을 하면서 비뚤어진 우편함을 바로 세우고 들어와 저녁을 먹고, 애완견 마빈을 산책시키고 동네의 펍에서 맥주 한잔을 하며 하루를 마감합니다.
한치 다름없는 날들이 매일 쌓여갑니다. 그의 하루에 변수가 생긴다면, 교통 신호의 오작동이나 아내의 꿈 이야기를 통해 유심히 보게 되는 쌍둥이들의 대량 등장, 아니면 자신이 적는 시 속 색다른 단어들의 등장 정도가 아닐까 싶어요.
그만큼 고요하고, 동일하고, 정갈하고 따분한 그의 일상이 영화 속에서 흘러가죠. 그런데 왜 그 일상을 보는 것에서 감동을 받을까요?
일정한 시간에 노트를 펼치고 끊임없이 시를 써가는 그는 그 글을 읽을 어떤 독자를 염두에 두고 쓰고 있는 게 아녀라. 그저 자신의 내면을 정화하고 또 다른 내일을 대비할 힘을 축적하는 시간을 노트 위에 설계하고 있는 거였죠. 변함없는 그의 꾸준한 일상의 모습들이 나날이 쌓여가 패터슨이라는 인물의 인생의 그림이 되는 시간의 지층을 만들고 있는 거였죠. 그 사실이 정말 큰 위로가 돼요. 누가 보든, 보고 있지 않든 순수한 자신의 기쁨이 동력이 되어 지리한 일상을 이겨낼 힘을 만들어 준다는 걸 패터슨을 통해 다시금 깨달았거든요.
실제로 짐 자무시 감독은 시 속에 등장하는 윌리엄 카를로스 윌리엄스라는 시인과 패터슨을 동일시해 우리에게 평범한 일상의 소중함을 말하고 싶었는지도요. 윌리엄스 시인은 40년간 가정의로 일하며 오전에는 가정방문으로 환자들을 찾아가 진료를 하고, 오후에는 진료실에서 환자들을 진찰하고 치료하던 사람입니다. 그의 부지런한 일상 사이 처방전 사이에 떠오르는 인상을 적어둘 만큼 글에 진심이었던 시인의 모습이 자신의 글이 수줍어 내놓지 못하고 비밀노트에 적어가기만 했던 패터슨과 닮아있다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애완견 마빈이 주인의 부재 사이 갈가리 찢어버린 시가 적힌 비밀노트를 망연자실 바라보다 퍼세익 강과 폭포를 보러 가 앉아있던 그에게 마치 산타처럼 등장한 낯선 시인은 그를 위로하는 윌리엄스의 목소리처럼도 보여요.
글을 쓰는 이들이 그토록 바라는 영감이란 건 다른 데서 특별하게 얻어오는 것이 아닌, 내 생각의 범주를 넓히고 조금 더 깊이 있게 들여다보며 기록할 때 씨앗처럼 돋아나는 것임을 영화를 보며 깨달았죠. 그 씨앗이 발아가 되어 오늘은 정보 검색을 위해 만들어 놓은 인스타그램 계정에서 그림 하나를 보았죠. 초창기 작품들부터 최근까지. 고흐를 주제로 그리는 그의 그림들이 위트 있고 독특해서 한참을 내리 열람했죠. 하나의 주제로 자신이 말하고 싶은 것들을 표현할 수 있는 작가의 저력과 독창성이 정말 놀라워요.
이렇게 하루가 꾸준히 흘러가요. 벌써 1월도 반이 훌쩍 지났다는 것이 놀라울 만큼 그렇게 또박또박 24년의 1월이 흘러가네요. 여러분들은 어떤 하루를 보내셨나요? 동일한 패턴이지만 그 속에서 찾아낸 씨앗 하나, 있으실까요? 포옥 품고 잠드시길요. 포근한 달빛 아래 가만히 움트는 씨앗이 만들어 줄 내일이란, 아직 열어보지 않은 선물 같은 시간을 고대하시면서요. 꼭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