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캬악, 퉤. 내가 저년만 보면 재수가 옴 붙어. 오늘 또 쥉일 재수 없게 생겼구먼. 아즈냥, 아침부터 영판 베린겨."
뱃속 깊은 곳에서 밀어 올린 것 같은 타액이 분출되는 소리와 칼날 같은 목소리가 아침의 고요를 깨뜨린다. 닭장 안에 졸던 늙은 암탉 잔잔이가 놀라 일어나 품고 있던 달걀이 둥지 밖으로 밀려 나올 뻔한다. 나이를 드셔도 작아지지 않는 목청의 원천이 어디인지 궁금하다. 순길네 할머니의 아침 루틴이 시작되었다. 걸걸한 목소리로 시작되는 제문. 한결같은 미움이 담긴, 아니 나날이 더해가는 미움의 깊이가 담긴 양이네 할머니를 향한 그녀만의 하루 시작의 포문을 듣고 있노라면 나도 모르게 인상이 써진다. 오늘은 타액의 걸쭉한 농도까지 더해진 터라 손가락을 귀에 넣고 한참을 후비적거리고 싶어 진다.
여수목을 지나 골목으로 걸어 들어오는 양이네 할머니를 보고 한판 거하게 제문을 읊은 순길네 할머니는 재빨리 등을 돌려 자신의 집으로 향한다. 부쩍 굽은 허리 탓에 오른손에 쥔 지팡이가 걸을 때마다 땅을 파고들듯 힘차게 찍힌다. 방아 찧듯 땅을 울리는 지팡이 소리가 못질하듯 내 귀를 울린다. 순길네 할머니의 시력은 어마무시하다. 이제야 내 눈에는 양이네 할머니가 식별이 되는데 어떻게 알아보고 이렇게 말하고 등을 돌려 걸어가시는지 볼수록 신기하다. 지팡이와 어울리지 않게 재바르게 걸어가는 할머니의 뒷모습은 마치 소라게가 등에 진 껍데기를 이고 순식간에 갯벌 사이로 숨어드는 걸 지켜보는 기분이다.
저 둘 사이는 동네에서도 유명하다. 일찍 혼자가 되어 자식들 5명을 홀로 키워 내신 양이네 할머니는 모두 잘 자라 지역에서 이름 있는 자리 하나씩 도맡아 제 몫을 다해내는 중이라 자식 잘 키운 덕에 말년이 꽃길이라며 많은 이들의 부러움을 받고 있는 분이다. 그런데 유독 한 사람, 순길네 할머니에게선 늘 이렇게 악담만을 듣고 있다. 희한한 건 그런 소리를 듣고도 같이 맞대응을 하거나 화를 내시지 않는 양이네 할머니의 태도이다. 자신이 없는 자리에서 어떤 말들이 오고 가는지 아실 텐데도 어떻게 저렇게 초연하게 대처를 하시는지 마음속 생각이 궁금해진다.
내 가만히 토방에서 옆으로 배만 퍼져가는 시고르자브종 복길이와 놀면서 옆집 민구엄마께서 우리 엄마에게 전하는 말을 엿들은 바로는순길네 할아버지가 젊었을 적 양이네 할머니를 열렬하게 짝사랑을 했다고 한다. 하지만 절친에게 그녀를 뺏기고 그 슬픔으로 바닷가에 빠져 죽는다고 갯바닥 내리막길을 달음박질쳐 내려가다 넘어져 다리가 부러져 여름 내내 골방에 누워 골골거렸단다. 날개깃 다 빠진 오골계 모양으로 허옇게 뜬 얼굴로 골방을 벗어난 그가 제일 먼저 찾은 곳이 양이네 할머니의 혼례가 치러지던 집 뒤편 언덕이었고, 그곳에서 갖고 간 막걸리 3통을 들이붓고 울다가 잠에 든 할아버지를 찾아 등에 업고 내려온 사람이 민구엄마 시아버지라 하니 좁은 동네에 오래도록 회자될 열렬한 순애보가 다 있다니 놀랄 수 밖에. 농사일을 마치고 민구네 할아버지와 막걸리라도 한 잔 하신다며 자전거를 타고 가시던 석양빛에 가로등이 머리 위에 켜진 것처럼 반짝이던 눈부시게 휑한 이마의 할아버지가 그렇게 열렬하게 사랑을 한 젊은 날이 있었단다. 그런데 그 사랑이자신의 옆에 설 한 여자의 일생을 괴롭게 만들거라짐작이나 했을까?
시간이 지나 집안에서 정해준 혼사로 서천서 시집온 순길네 할머니는 새댁이 된 지 얼마 되지 않아 다른 여자 못 잊어 죽겠다고 난리 쳤다는 동네 호사가들의 술자리 안주거리 주인공이 자신의 남편이란 걸 알게 되었단다. 인근 동리에서 부지런하고 얼굴도 이쁜, 하지만 입에는 가시가 있어 건드리면 쏘는 맵찬 미녀로 이름나 있던 자신을 보고도 데면데면하던 신랑의 태도가 시골총각의 수줍음에서 연유한 것이 아닌 가슴이 이미 다른 여자로 인해 불타버린 잿더미가 되어버린 탓에 그런다는 걸 알아버린 순길네 할머니의 소소한 입대포가 그때부터 발사되기 시작되었다.
거기에 기름을 붓는 사건이 일어났으니, 급작스러운 사고로 양이네 할머니께서 남편을 잃고 만 것이다. 결혼한 지 10년 만에 갑자기 세상을 떠난 남편 때문에 농사일에 서툴고 어린 자식들 건사하기도 바빴던 그녀의 밭에서 새벽마다 누군가 대신 일을 해주고 간다는 소문이 돌기 시작했다. 우렁각시처럼 철마다 필요한 일들을 후다닥 동이 채 뜨기도 전에 해치우고 사라지는 그이가 바로 순길네 할아버지라는 것이다. 남들 눈을 피해 새벽에 밭에서 만난다더라, 아무도 몰래 순길네 할아버지 새참을 만들어 먹인다더라, 흉작에 돈이 없다니 순길네 모르게 땅 하나 팔아서 돈도 해줬다더라, 그래서 그 집 큰아들이 이번에 고등학교도 서울로 갔다더라 등등 소문의 부피는 점점 커져만 갔고, 사람들 입에서 입을 거치는 동안 다양한 형태로 각색되고 재탄생된 이야기가 만들어졌다.
결국 그 소문을 듣게 된 순길네의 악다구니는 소소한 입대포에서 바주카포의 화력을 갖추게 되었고 에둘러 발사되던 총알은 이제 직진으로 양이네 담장을 향하게 되었다. 사정이 그쯤 되면 누구 하나 먼저 나서서 진실을 가리자고 머리채 잡고 싸워도 벌써 싸웠을 일인데 늘 초연하게 욕설을 듣고도 길을 가는 양이네 할머니와 그런 뒷모습에 독이 바짝 오른 채 욕설을 뿌려대는 순길네의 한판은 일어나지 않았다. 그 둘 사이 본의 아닌 마성의 남자, 일 잘하는 새벽일꾼이 되어버린 순길네 할아버지가 심근경색으로 세상을 등지셨다. 한 번도 전조 증상이 없었던 터라 할아버지의 죽음은 마을 어른들에게 큰 충격으로 다가왔고 그 전날 같이 밤늦도록 막걸리에 먹태를 나눠먹던 민구네 할아버진 자기 때문이라며 '그놈의 술만 아니었어도!'라며 이 말을 외치고 자리에 누우셨다.
오랜 지기로 살아온 이들의 갑작스러운 부고만큼 남겨진 이들에게서 생기를 앗아가는 일이 또 어디 있을까? 그런데 신기한 일이 발생한다. 할아버지의 죽음과 함께 순길네 할머니의 독한 욕설이 음소거된 듯 일시에 사라져 버린 것이다. 순길네 할머니는 연일 집에서 할아버지 유품을 정리하고 태우고, 버리는 일을 반복하셨다. 그러면서 마을 여수목 아래 정자로 나오시던 산보도 멈췄고, 한 번씩 장날마다 꽃분홍색으로 맞춰 입고 버스를 타고 장구경 가던 것도 멈추셨다. 깊게 굴을 파고 겨울잠을 준비하는 존재처럼 자신의 집 안을 뒤집어 다 쓸어내고 닦는 일에 매진하던 그녀의 모습을 지켜보던 마을 사람들 중 제일 먼저 대문을 열고 들어선 사람이 양이네 할머니였다.
둥글고 널따란 대소쿠리 위에 소복하게 무언가를 담아 순길네로 들어간 할머니. 한참이 지나도 나오지 않자 드디어 한 번은 일어나고 말리라 고대하던 드잡이 싸움판이 벌어지는가 싶어 순길네 할머니네 담장, 굵게 자란 살구나무가 만들어 놓은 밑동 덕에 꼽발 짚고 올라서면 안이 훤히 보이는 곳으로 달려갔다.(이곳을 왜 내가 알고 있는지는 비밀이다. 다만 재작년까지 이곳에 할머니의 먼 친척의 조카, 여름이면 웃통 벗고 등목 시원하게 잘하던 뱃살이 아즈냥 우윳빛같이 빛나던 청년이 고시 공부를 한다고 내려와 있었다고만 해두겠다.)
발돋움을 해 바라본 광경은 한 폭의 정물화였다. 마루 한가운데 소반을 내려두고 보자기를 벗긴 채 순길네 할머니는 아무 소리 없이 주섬주섬 눈앞의 음식을 드시고 계셨고, 양이네 할머니는 대들보 기둥만 말없이 쓰다듬고 계셨다. 어떤 대화도 없이 가만히 앉아있기만 하는 모습에 나도 모르게 숨을 죽였다.
말할 수 없이 조용하고 평온한 순간. 그렇게 귀가 따갑게 쏟아지던 욕설이 멈춘 저 두 할머니의 세계가 이상하게 낯설고도 편안했다. 어떻게 저럴 수가 있을까? 마음속에 스민 이질감과 밀려오는 궁금증에 양이네 할머니댁으로 찾아간 나는 할머니를 보자마자
"할머니는 어떻게 친구를 할 수 있어요? 맨날 나한테 욕하는 사람이랑? 어떻게 음식도 나눠주고 할 수 있어요?"라고 속사포처럼 질문을 던졌다.
가만히 나를 바라보던 할머니께서는 소반에 남아 있던 고추장떡을 건네시며 일단 먹으라고 채근하셨다. 라드로 부친 육덕진 기름냄새에 잠시 정신이 혼미해진 나는 연달아 2개를 물어뜯으며 잠시 순한 양이 되어 세상 아늑함을 맛보는데,
"외로워서 짖는 동물도 있고, 왜 화가 났는지도 몰라서 당황스러우니까 짖는 동물도 있는겨. 그러니께 왜 그러느냐고 물어야 할 때가 있는가 하믄, 그냥 모른척하고 가만히 두어야 할 때도 있는겨. 그건 니가 커봐야 알 수 있는건디 때때마다 그 소리를 듣고 짖지말라 야단치거나 때려대면 그눔도 나도 둘 다 상하는겨."
나는 먹다 만 떡을 한 손에 들고 할머니를 바라보았다. 외로워서, 몰라서 짖는 동물에게 다그치지 말고 기다리라는 말씀이 잘 이해가 되지 않아서였다.
"사람도 마찬가지여. 욕할 사람이 있어야지 살 힘이 생기는 사람이 있는 법이여. 그걸 어떻게 일일이 대거리하고 받아준다냐. 모른 척 흘려보내는 게 상책이지. 니는 살면서 그런 일 안 만나면 더 좋은 것이고. 그런디 지지배가 거가 어디라고 올라가서 훔쳐보는겨? 그러다 미끄러져 팔다리 한 짝 어디든 똑 분질러져야 또 니 어매한테 얻어터지고 울면서 달려오지. 또 가기만 혀봐. 내가 먼저 니 어매한테 일러줄텡께."
그것만은 말아달라 신신당부 약조하고 고추장떡을 물고 집으로 돌아오던 날 입 안에 머물던 고소한 기름냄새와 수묵화처럼 망막에 맺혀버린 두 할머니가 소반을 사이에 두고 앉아있던 모습이 지금도 생생하게 기억난다.
나는 그날 세상을 살아가는 가장 귀중한 자산 중 하나를 배워왔다. 내가 당당할 수 있다면 자신을 향한 비난에 쉽게 분노하거나 대응하지 말고 묵묵히 자신의 삶을 가꿔가는 것이 최선의 방어라는 삶의 태도를 말이다. 자신의 SNS에 도배되는 악플에 시달리다 결국 세상을 등진 사람이 있다. 그 뉴스를 보자양이할머니의 목소리가 떠오른다. 타인의 적의를 보고도 오랜 시간을 버텨 온 할머니의 꼿꼿한 등과 나직한 목소리를 듣던 날로 그를 데려가고 싶다.
이유 없이 짖는, 왜인지도 모르고 짖는 소리들에 대해 담담히 버틸 수 있는 법을 누군가에게서 들을 수 있었다면, 오늘의 선택이 달라지지 않았을까? 때로는 이해할 수 없는 세상의 적의에 대해 초연해질 수 있는 마음의 근력을 기를 수 있게 해주는 방법에 대해 곰곰 생각해 본다. 익명의 키보드 워리어들에게 목이 꽈악 막힐 만큼 큼지막한 고추장떡을 한 번에 밀어 넣는 상상을 하면서, 잠들어 버린 그의 시간이 부디 평안하기만을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