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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ono Mar 24. 2024

돌려야 사는 남자






 어두운 방, 시야를 분별하기 어려운 곳에서 남자가 깨어납니다. 전형적인 룸펜의 옷차림을 한 남자는 여기가 어딘지 자신이 왜 이곳에 있는지 알 수가 없죠. 처음 보는 낯선 공간에 갇혔는데 아무런 정보가 없다는 건 한 사람을 갓난아기처럼 무기력하게 만들어 버리죠. 순식간에요. 영화 쏘우의 첫 시작처럼 아무 설명 없이 갇혀버린 공간에서 깨어난 남자는 두려움에 사로잡혀 소리를 질러요. 밀실공포증이 생기기 직전 요란스러운 안내방송이 시작되죠. 초록색 오리문양이 벽에 새겨지며 시간과 날짜가 나타납니다. 친절한 목소리의 그녀는 말하죠. "맬러드 크로싱에 오신 걸 환영합니다!"(저런 말은 늘 불길해요. 분명히 말도 안 되는 걸 시키는 걸 보게 되거든요.)


 이곳에 강제로 갇혀버린 남자 조 스티븐스는 운영진이 부여하는 할당된 작업량을 충실히 수행해야 합니다. 그래야 음식이 주어지고 살아갈 방편이 생기는데 작업이란 것이 아침 9시부터 저녁 10시까지 주어진 시간 동안 방 가운데 놓인 거대한 맷돌을 돌려야만 했죠. 첫날은 50개. 처해진 상황이 납득이 가지 않고 부당하게 요구되는 노동이었지만 그는 임신한 아내 케이트에 대한 걱정으로 어서 이곳을 빠져나가길 마음먹고 일을 시작해요. 마지못해 시작한 사람치고 어마어마한 맷돌 굴리기 신공을 보여줍니다. 이튿날에는 370개를 성공하거든요.


 열심히 하면 자신이 처해진 상황을 빨리 벗어날 수 있다 믿은 그의 노력에 대한 선물로 운영진은 펜을 줍니다. 종이도 없는데 펜이라뇨. 하등 쓸모없는 선물에 제대로 화가 난 조는 운영진에게 항의하는데, 그 결과 다음날은 미션수행개수가 지금의 2배, 거기에 벌칙까지 더해져서 작열하는 고온의 조명 아래 일을 해야만 했죠.
지금의 상황이 부당하고 받아들일 수 없는 일들이라 분에 치민 조에게 옆방의 목소리 친구가 현 상황을 설명하며 쓸데없이 열심히 일한 조 덕분에 상대적으로 할당량이 저조한 누군가는 밤마다 이곳에서 제거되어 없어진다고 알려주죠. 단지 가족에게 돌아가고 싶은 열망에 돌린 맷돌이 누군가의 숨통을 조이는 결과를 만들 줄 몰랐던 그는 자정이면 들려오는 누군가의 비명소리에 패닉에 빠지게 되죠. 자신 또한 할당량을 마치지 못하면 저들처럼 제거될 테니까요.


 고온의 조명 아래 일을 하게 된 그에게 운영진은 동기부여라는 명목으로 영상을 제공하죠. 아내 케이트가 자신의 아들을 막 낳고 휴식을 취하고 있는 장면이었죠. 그는 목표에 집중합니다. 해내야만 돌아갈 수 있으니 초인적인 힘을 발휘해 맷돌을 굴려요. 그러던 중 맬러드 크로싱에게서 선물 받은 펜을 갖고 CCTV 사각지대를 공략해 탈출을 할 수 있는 방법을 옆방 동료가 알려주죠. 쇼생크 탈출에서처럼 끊임없이 벽을 파내 탈출을 시도했던 그는 곧 잡혀 들어오고 그로 인해 모든 동료들의 할당량이 급등해 버려요. 그런 팁을 준 옆방의 동료는 교도관들에게 맞고 다리가 부러져 일을 할 수 없는 상황이 돼버렸는데 말이죠.   
 

 이 모든 시스템을 통제하고 있는 것이 AI 인공지능 컴퓨터임을 눈치챈 조는 할당량의 성공이란 표면적 숫자가 갖고 있는 함정을 눈치채죠. 모두가 맷돌을 굴리지 않으면 수행이 0으로 기록되면서 탈락자가 생기지 않을 테니 자신으로 인해 높아진 미션개수로 고통받는 그곳의 동지들에게 오늘 하루 맷돌을 돌리지 말자고 이야기합니다. 어떤 누구도 탈락자로 지명될 수 없는 방법, 제로썸. 모두 이 말에 동의하지만 수행개수가 0개인 이들을 가만두지 않겠다는 경고방송에 결국 여기저기서 맷돌을 돌리기 시작하고, 조도 두려움에  몰래 1개를 돌리고 맙니다. 동료들을 설득했지만 시스템의 경고에 결국 굴복할 수밖에 없던 조. 결과는 어떻게 되었을까요?


 시지프스 신화 속 주인공처럼 끊임없이 맷돌을 굴려야만 하는 조, 영화는 마지막 반전을 통해 커다란 의미를 던져줍니다. 제목을 <월요일을 대처하는 우리들의 자세>라고 지으려 했거든요. 결말 때문에요. 꿈일지 생시일지, 그의 마지막이 궁금하다면 영화 <THE MILL>을 찾아보세요. 시... 싫으시다면. (궁금해서 검색 안 하시고 는 못 배기실텐데...)











 직업이란 이름 하에 우리가 수행하는 일들이 우리를 옥죄어 숨도 쉬지 못하게 만들 때, 다시 반복되는 일상이 벌써부터 지치고 힘들어 무거운 숨을 나도 모르게 내쉬고 있을 때가 있으신가요? 그럴 때마다 전 깊은 산골 한적한 암자로 들어가 10일 동안 책을 읽고 글을 쓰고, 가만히 산보를 하며 변하는 날마다의 초록잎들 색을 바라보고 마음을 비워내는 시간들을 갖고 싶다고 열망하죠. 현실은 다음날 마지못해 눈을 뜨고 아직 퉁퉁 부은 눈으로 스케줄표에 있는 일들을 하나씩 지워가며 하루를 보내죠. 제일 무서울 때가 분명히 오늘이 월요일이었는데, 다음날 달력을 보니 다시 월요일이 돌아왔을 때죠.


 순식간에 흘러가는 시간 속에서 삶의 의미를 찾는 일이 때로는 사치처럼 느껴지는 때도 있어요. 그래서 짬짬이 무언가를 기록하며 쓰는 순간들이 더 소중하지만요. 맷돌을 돌려야만 했던 조가 그런 우리들의 마음을 대변해 줍니다. 그가 돌린 맷돌이 삶의 이유이자 자신이 살아있다는 걸 증명하는 행위니까요. 마지못해 한 일에서 해야 하는 이유를 찾고, 끝내는 이 일로 고통받는 다른 이들까지 구원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내는 조를 통해 우리에게 주어진 수레바퀴를 어떻게 다루어야 할 지에 대해 생각해 보게 만드는 영화였어요. 들려오는 소리를 상상하는 것만으로 영화 쏘우의 낭자한 핏빛을 넘어선 공포를 갖게 만드는 호러 영화. 2017년 겟아웃에서 인상 깊은 연기를 펼쳤던 릴 렐 호워리의 열연이 돋보인 <THE MILL>과 함께 우리의 월요일을 조금 다르게 열어보길 바랍니다. 덜 돌리고, 덜 지치고, 더 가볍게 움직일 수 있길요.





당신이란 꽃이 피는 내일이 되길 바라며, 이만 총총^^












* 같이 보고 싶은 장면


https://youtu.be/hxu1zTco8-I?si=VMaCuQq9db3eeFyO








* 같이 듣고 싶은 노래


오아시스 : Whatever


https://youtu.be/9wDXWb3XRYY?si=IRz4nF9LeVBMoPi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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