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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ono Apr 10. 2024

언어라는 평형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에 이런 표현이 나온다.


차에 적신 과자의 맛은 죽은 시간들이 숨어 있는 은신처의 맛이다


 마들렌 한 조각의 향과 맛으로 절망 끝의 삶에서 다시 일어설 수 있는 힘을 얻던 주인공을 보며 나는 그런 맛은 어떤 것일까 궁금해 미슐랭 가이드에 나오는 미식가처럼 폼을 재고 이것저것 맛을 보던 날이 있었다. 결론은 하나하나 다 수수께끼 암호들을 감추고 있어서 내 몸에 살로 축적이 되어서야 그 비밀을 알려주는 이니그마 뺨치는 암호들이어서 문제였지만 말이다.



 책 보다 더 강렬하게 요리에 대한 미학을 보여주는 영화가 있다. <바베트의 만찬>은 음식은 엄마의 장사를 위한 도구이자 배를 채우기 위한 비상식량, 더 먹으면 살이 찌는 내 삶의 계륵 같은 존재라는 생각을 바꿔준 영화이다. 오랜만에 <바베트의 만찬>을 찾아 재생을 시키고 자리에 앉았다. 길고 고요한 호흡으로 이어지는 영화 단 한 끼의 식사를 위해 1만 프랑이란 거액을 선뜻 내놓는 무보수 가정부였던 바베트의 기이한 선택이 펼쳐진다. 프랑스 파리 코뮌 사건으로 남편과 아들을 잃고서 자신의 요리솜씨와 미모를 탐하고자 노리는 한 장군을 피해서 오페라 가수 파핀이 써 준 편지만을 들고 나이 든 청교도들이 모여사는 덴마크의 시골마을로 피신 온 여인 바베트. 마을에 살던 두 자매와 함께 그들의 청춘이 박제된 것만 같은 시골마을에서 수십 년을 똑같은 날들로 살아가던 그녀가 복권에 당첨이 된다. 인생을 바꿀만한 엄청난 금액인데 바베트는 그 돈을 뜻밖에도 자신을 기꺼이 머무르게 해 준 두 자매들의 돌아가신 아버지를 기리는 100주년 기념 저녁식사를 여는데 사용하게 해달라고 말한다.




첫 번째 코스는
식전주인 스페인의 아몽띠야도 셰리를 곁들인 바다거북 수프
두 번째 코스는
메밀 팬케이크에 캐비어와 사워크림을 얹은 블리디 드미도프.
와인은 뵈브 클리코 샴페인
세 번째 코스는
퍼프 파이로 감싼 메추리 요리.
메추리는 푸아그라와 트뤼플 소스로 속을 채운.



 바베트가 식재료를 어렵게 구해서 마을로 들여오던 순간부터 청빈을 강조하고 살아온 자신들의 삶에 큰 균열이 생길까 봐 노심초사하던 두 자매와 평생을 얼굴을 마주하고 살았던 마을 사람들이 갑작스레 반목하고 서로를 저주하던 긴장된 상황들이 바베트가 준비한 만찬으로 변화되기 시작한다.



 나는 먹는 것의 즐거움을 잃어버린 지 오래이다. 좁던 크던 식탁에 둥글게 모여 앉아 서로 이야기를 나누며 하루의 시간에 대해서, 내일의 불안과 희망에 대해서 나누고 독려하고 응원하며 살아가는 시간들을 미루고 살아가던 차였다. 바쁘다는 이유로 한 끼 정성스러운 손길로 준비한 음식들을 나눌 때 서로의 얼굴에서 피어나는 감사와 기쁨의 미소를 본 적이 얼마나 오래되었는지 떠올려본다.



 인간은 선택해야 합니다. 실패할까 두려워 떨지만 우리의 선택은 중요치 않아요. 우리가 선택한 것도, 거부했던 것도, 버렸던 것도 모두 되돌아오죠. 이 아름다운 세상에서는 모든 것이 가능하죠.


 필 대령이 일어나 사람들 앞에서 외치는 건배사와 함께 흐뭇한 풍경들을 바라보며 맥주를 마신뒤 그제야 나도 모르게 참고 있던 숨을 길게 내쉰다.









  숨에 맥주와 함께 먹고 있던 마른김 부스러기가 흩어진다. 순식간에 퍼진 검정 조각들이 마치 화면 위 글자들처럼 내게 어지럽게 밀려온다. 공감할 수 없는 분노를 싣고 쏟아지던 활자들을 닮은 김조각을 쓸어 모은다. 수선스럽게 모으면 내 움직임에 더 멀리 퍼지기에 느릿하게 움직인다. 낮에 있던 일들이 떠오르며 속이 울렁거리기 시작한다. 유독 바쁜 하루였다. 앙상블 정기 공연을 위한 예산 서류 작성과 사춘기를 제대로 겪고 있는 아이의 부모님께 드리는 상담전화, 시험대비 시험지 만들기 등등. 이런 날에는 '한 번에 하나만!'을 외치며 전진하는 일개미가 되어 노동요를 불러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1주일에 한번 발행하는 소중한 브런치북을 위해 일주일 내내 고심하고 고른 문구와 정리한 생각들, 사진, 음악들을 여러 번 들여다보며 오탈자를 수정하고 글을 다듬는 즐거움에 힘든 줄 모르고 있었다. 내게 글을 쓴다는 건 내가 바라는 나의 자아로 존재할 수 있는 귀하고 소중한 시간이며 그 글을 읽는 독자들과 공유하며 공감하는 마음들로 얻는 기쁨은 생활 속 일로 얻는 기쁨보다 더 크기에 다른 어느 때보다 더 신중하게 글을 쓰고 다듬고 읽어본다. 여러 번의 수정과 저장 후 마침내 발행버튼을 누를 때의 기쁨이란. 글을 읽고 난 후 독자들이 보여주는 공감은 내 사고를 확장시킨다. 내가 보지 못했던 결들을 톺아보며 돌아보는 시간을 갖게 된다.



 때로는 긴 호흡의 문장으로 내 글을 읽고 오독이 생길 수도 있다. 나 또한 타인의 글을 읽고 잘못 해석할 때도 있다. 패트릭 맥기니스가 말한 '포모  사피엔스'(놓치는 것에 대한 두려움을 지닌 사람)가 되어 여러 번의 스크롤 화면을 오르내리며 정보를 습득하다 보면 발생할 수 있는 일이기에 한 편의 글에 댓글을 달기까지, 공감 가는 글들을 여러 번 읽은 뒤 댓글을 쓰려고 노력한다. 한번 남긴 글들은 디지털 세상의 나의 족적이 될 수 있기에 늘 신중하려고 노력하던 시간이 어제 처음으로 무너졌다.



 이주하는 인류라는 책에서 받은 감명을 어떻게 표현할지 몇 줄을 고민했다. 읽은 지는 벌써 한 달이 지났지만 어떤 영역의 주제를 더 말하고 싶은지 생각하던 차였다. 그러다 혼혈이라 다문화가정이라는 특별한 범주 안에서 자라고 있는 내 조카. 내게 너무도 소중하고 사랑스러운 아이가 커가며 부딪히게 될 세상의 편견과 시선으로 생각이 닿았다. 아이의 엄마가 시장통을 지나며 한 어르신이 한 말을 듣고 와서 나와 동생에게 물을 때, 천진한 그녀의 표정을 보며 이 단어를 어떻게 설명해 주어야 아이엄마가 상처를 덜 받을까 고민하던 순간의 우리의 분노와 아픔에 대해 써야겠다 생각이 들었다.



 모두가 이주민의 후손이고 이런 식의 구별이 무의미한 세상에서 살고 있기에 언어가 달라도 그 안에 담겨있는 가장 보편적인 언어, 사랑과 배려, 포용이 중요하기에 그걸 더 먼저 생각하자는 말. 그 말들로 비아냥을 들을 줄은 상상도 못 했다. 쉽게 분노하지 말자. 분노는 부당한 대우를 받은 이들의 슬픔을 위로하기보다는 그들의 마음을 더 아프게 할 때가 많다. 욕설이나 분노 섞인 은 양날의 칼이다. 언어는 가다듬을수록 나를 지키는 힘이 된다. 감정의 균형을 잃고 표류하는 배가 된 기분일수록 언어는 평형수가 되어 나를 이끌어 줄 수 있는 힘이란 걸 잊지 말자. 잠잠히, 고요히 끌로 다듬듯 읽고 쓰자. 늘 그래왔듯이.



























* 같이 듣고 싶은 곡


포카혼타스 : Color of wind


https://youtu.be/YLYuRRwYSLI?si=5Zi2H2TNsINsqKJ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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