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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ono Apr 18. 2024

Face-Off












 "전수조사를 위해 방문하겠습니다."

 한 줄 문자를 받고 나는 당황했다.
'여기가 어디라고 온단 말인가? 나의 철옹성 안에 그대들이 발을 디딜 틈은 없단 말이오! 아니되오오오!' 절규하듯 터져 나오는 말은 내 입안으로만 삼켜지고 강제로 개방된 문 안으로 들이닥친 낯선 이들의 날 선 눈길에 괜히 자라목이 되어 죄인처럼 오도카니 서 있던 날이 있었다.  


 인근 초등학교에서 갑작스레 터져 나온 코로나 환자로 인해 잘 방어되고 있다고 믿었던 우리 동네 코로나 확진자수가 급격하게 올라가던 2년 전 5월, 나의 배움터에서도 3명이나 한꺼번에 환자가 발생했다. 한 반에서 동시에 확진자가 8명이나 나온 당시 초유의 사태였는데, 그중 3명이 하필이면 내게 오는 아이들이었던 것이다. 대도시라면 이 정도의 환자수는 아무렇지 않은 일상의 기록이었겠지만 워낙 조그만 동네에서 발생한 대규모 확진자수는 많은 이들을 두려움에 몰아넣었다.


 얼마나 우리 동네가 유난이었냐 하면 코로나 초창기 처음 우리 동네 확진자로 알려진 한 여중생은 말도 안 되는 여러 가지 소문으로 인해 결국 전학을 갔다 들었다. 다른 지역에서 온 확진자가 밥을 먹고 간 식당에 그저 가까이 앉아있었을 뿐인데 감염이 된 여학생은 마치 행실이 부정하여 병원균을 옮겨 온 악의 숙주로 묘사가 되어 소문이 번져나갔다.

 
 담론이 무섭다는 걸 그 소문으로 다시 한번 깨달았다. 세치 혀는 날카롭고 가벼워 전하는 소문에 살을 붙이기 쉽고, 전달받은 소문을 실어 나르는 이들의 마음은 호기심과 나는 당사자가 아니라는 안도감으로 부풀어 올라 다른 이에게 옮기는 것에 어떤 거리낌도 없어지는 것 같았다. 순식간에 일상이 무너져버린 그 가족들을 보며 나는 다짐했다. 어떤 일이 있어도 저런 풍문의 대상이 되면 안 되겠다고 말이다.







 그 뒤 아이들 한 명 한 명의 건강 상태를 면밀하게 체크하며 매시간마다 책상과 의자를 소독제로 닦고 또 닦으며 수업을 이어갔다. 수업 받으러 오자마자 체온을 재고 손과 발을 씻게하고, 수업 받고 나갈때는 소독제를 손에 바르고 나가게 하는 등 유별날 정도로 아이들 청결에 집착했다. 그러던 중에 한꺼번에 쏟아진 확진자로 인해 전수조사차 보건소 역학조사원의 방문을 받게된 것이었다. 확진받은 아이가 있던 시간대에 같이 공부하던 아이들의 연락처를 받고 그 아이들 모두 부모님과 함께 보건소에 가서 PCR검사를 받으라는 말에 검사를 받았다. 나 역시 그날 깊숙이 밀고 들어오는 얇은 면봉에 찔려 코피를 흘리며 돌아왔던 날. 강제로 결과가 나오기까지 2일간이나 수업을 하지 못하고 다른 아이들 상태까지 결과를 기다리며 초조해 하던 시간이 지금 생각하면 실감나지 않는다. 마치 꿈처럼 먼 옛날의 일 같다고 할까?


 코로나 기간 동안 받은 PCR검사와 신속항원검사 횟수가 80회가 넘는다. 수업하고 간 아이 중 확진받고 못 온다고 연락이 오면 한숨을 푹 쉬고 상담실로 들어가 혼자 코를 찌르고 뚫어지게 키트를 바라보고 음성이라는 줄이 선명하게 생겨나야 그날 수업을 하곤 했다. 그때 사용한 키트들을 버리지 않고 쌓아두었다면 첨성대는 하나는 만들 수 있지 않을까싶다.







 외로운 싸움이었다. 여행도, 다수가 모여있는 공간에서의 운동도, 공연관람이나 전시관람도 모두 자제하고 오로지 굴을 파고 들어가 은둔하는 그 레즐리곰처럼 읽고 쓰고, 닦고, 또 닦는 생활을 이어가야만 했다. 나무 의자의 니스칠이 벗겨질 정도로 닦다 문득 업종을 바꾸어 청소업체를 차려도 잘할 것 같다는 뜬금없는 자신감에 사로잡힌 날도 있었다.  


 그 사이 온라인 수업 등으로 은둔자의 생활을 해야만 했던 아이들은 얼굴을 가리고, 그들의 내면조차 가라앉은 채 정상적인 생활은 하지 못하고 부유하는 것만 같았다. 운동능력이 부족해진 아이들은 마치 연체동물인 듯 앉아있는 자세들도 흐트러지고 땅으로 곧 꺼져버릴 것 같은 자세로 웅크리며 있는 모습을 자주 보였다.











 이번 봄, 독감 환자와 감기 환자가 어느 정도 가라앉으면 마스크를 벗고 수업하겠다고 선언했다. 환자들 추이를 지켜보다 드디어 선언한 탈마스크. 그런데 아이들이 선뜻 벗지를 못한다. 쑥스러워하며 어찌할 바를 모르는 아이들의 수줍은 몸짓에 서로 한참을 웃는다. 근 3년 만에 처음으로 아이들의 얼굴을 온전히 마주한다. 눈만 보이던 얼굴이 온전하게 드러나니 어색한지 연신 입술을 오물거리는 아이들의 표정이 천진하다.


 '아, 넌 이렇게 생겼었구나. 이런 미소를 갖고 있었구나. 이렇게 자랐구나.'



 한 명씩 눈을 맞춘다. 비로소 온전히 이해되는 표정들, 선명히 들리는 목소리들. 고치를 벗어난 나비들이 날개를 펼치는 듯 아이들 얼굴에 환하게 번지는 미소가 마음을 따뜻하게 만든다. 어느새 자라 있는 어린 영혼들이 이제는 이런 아픔 없이 단단한 나무처럼 자라주길 가만히 마음 다해 기원한다.  







* 같이 듣고 싶은 곡

서우야 : Sunshine

https://youtu.be/fEeT-lq-FT4?si=AXeM1TQv2byN93ce





















*대문사진 출처 : 나탈리 카프리셴코

*그 외 저작권은 똥오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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