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Bono May 07. 2024

마흔에 읽는 니체

장재형 - 유노북스




 베르나르  뷔페의 그림을 본다. 슬픈 광대의 눈 안에 담긴 세상은 다채롭고 음울하다. 20대에 천재소리를 들으며 화려하게 미술계를 장식한 화가는 말년 파킨슨병을 진단받고 그의 시그니처가 된 죽음과 광대연작을 치열하게 그리다 생을 마감한다. 누구도 상상하지 못한 고독했던 마지막을 바라보며 우리의 생을 덮치는 우울과 허무, 깊이를 알 수 없는 감정의 수렁을 들여다본다.











 모든 고통과 고뇌는 우리 내부에서 만들어지는 것이기에 벗어날 방법과 고통을 대체할 다른 존재들에 대한 탐닉이 이어질 때도 있다. 1차적 쾌락에 빠져 순간적으로 해소될 현실의 망각을 원하는 이들도 있을 테고, 생의 마지막 순간까지도 갈등하며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의 열정으로 무언가를 남기려는 이들도 있을 것이다. 뷔페의 그림처럼.



 그럼에도 불구하고 해소되지 않는 생의 허무와 우울에 대해 어떻게 할 것인가에 대한 생각이 나의 40대 가장 큰 화두이다. 전력질주를 하며 달려온 시간이 만들어 준 제법 평탄해진 길 위에 있지만 삶은 늘 불온하게 숨어있는 모퉁이 돌들의 때 아닌 등장으로 휘청인다. 평탄해졌다고 생각하나의 길은 다른 이들이 쉽게 같이 걷지 못하는 고원 위의 외길이 되어버려 굽은 길 저편에 무엇이 있는지 확인하기 위해서는 혼자만의 용기로 달려 나가야만 한다. 외로운 걸음만이 가능한 곳이 되어버린 것만 같아 때로는 숨 쉬는 것도 버거울 때가 있다.












 그런 날들 사이 대학 다닐 때 도서관에 주로 베고 자던 용도였던 니체의 책들이 위로가 될 줄이야. 그때는 들리지 않았던 그의 음성들이 숨 쉬는 법을 알려준다. 때로는 수영을 처음 배우는 아이에게 숨 쉬는 법을 알려주는 것처럼 다정하게, 때로는 머뭇거리며 발을 담그는 아이를 뒤에서 휙 밀어버리는 것처럼 단호하게 말한다.

 



 나는 사물에 있어 필연적인 것을 아름다운 것으로 보는 법을 더 배우고자 한다. 그렇게 하여 사물을 아름답게 만드는 사람 중 하나가 될 것이다.

 네 운명을 사랑하라. 이것이 지금부터 나의 사랑이 될 것이다! 나는 추한 것과 전쟁을 벌이지 않으련다. 나는 비난하지 않으련다. 나는 비난하는 자도 비난하지 않으련다. 눈길을 돌리는 것이 나의 유일한 부정이 될 것이다! 무엇보다 나는 언젠가 긍정하는 자가 될 것이다!

                                          - 즐거운 학문





 니체는 1883년 2월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제1부를 완성한 뒤 85년 4월에 제4부까지 출간한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자신의 저서가 될 거라 장담한 이 책은 당대에 전혀 팔리지 않아 제4부는 40부를 자비 출판을 하는 상황에 처한다. 절망의 심연에서 자신의 책을 불쏘시개로 사용해도 이상하지 않을 순간에 그는 도리어 큰소리를 친다. 나중에 자신의 저서를 해석하는 교수직이 만들어질 거라는. 실제로 그런 일이 벌어졌고, 그의 아포리즘들은 우리 삶의 다양한 면면에 방향키가 되어 사용 중이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할까? 그의 허무주의가 자신의 삶에 대한 부정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기존의 낡은 관습과 제도에 대한 의심을 하고, 무의식적인 순종만을 강요하는 것들에 과감히 불을 지르고 망치로 부술 수 있는 용기. 그전에 그런 것들을 구별해 낼 수 있는 맑은 눈을 가진 영혼으로 우리가 거듭나는 것이 필수라고 말한다.




 아, 나의 영혼이여. 이제 그 어디에도 이보다 더 사랑에 넘치고 더 넓고 더 광대한 영혼은 없을 것이다! 미래와 과거가 그대에게서처럼 더 밀접하게 결합되어 있는 곳이 어디에 있단 말인가?

             -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나는, 그리고 이 글을 읽는 여러분은 자신에 대해 이렇게 긍정할 수 있는지 되묻게 된다. 니체는 <도덕의 계보>에서 "우리는 우리 자신을 잘 알지 못한다."라고 말했다. 자기 자신에게 철저한 이방인으로 살아가며 스스로를 들여다볼 생각도 하지 못한 채 오로지 "집에 무엇을 가지고 돌아갈 것인가?"만을 생각하는 존재들이라 말한다. 오랜 시간 동안 구축되어 온 시대의 조건이 요구하는 명사들인 부, 직위, 명예 등에 얽매여 고정된 삶의 틀만 완성하기에 급급했던 우리들에게 과감하게 동사형의 세상에 발을 딛으라 말한다.



 삶은 진행형이며 늘 길 위의 길에서 만나는 수많은 갈림길의 선택사항 속 주체적인 결단으로 이어지는 나만의 지도이다. 꿈꾸는 자만이 삶을 변화할 수 있고, 다른 이들은 가보지 못한 '인간이 짐승과 초인 사이에 놓인 길의 한가운데서 만날 위대한 정오'를 위한 여정을 지속할 수 있는 동력을 가질 수 있다.


 

 우리는 책 사이에서만, 책을 읽어야만 비로소 사상으로 나아가는 그런 인간들이 아니다. 야외에서, 특히 길 자체가 사색을 열어 주는 고독한 산이나 바닷가에서 생각하고, 걷고, 뛰어오르고, 산을 오르고, 춤추는 것이 우리의 습관이다. 책, 인간, 음악의 가치와 관련된 우리의 첫 질문은 다음과 같은 것이다.

"그는 걸을 수 있는가? 더 나아가 춤출 수 있는가?"
                          - <즐거운 학문>




 질병으로 인해 고통받던 니체는 늘 산책을 즐겼고, 그리고 산책을 하며 스스로의 생각을 정리한 뒤 폭발적으로 자신의 생각들을 원고지 위에 쏟아냈다. 외로운 창조자의 붓 끝은 동시대의 지성을 향한 노래를 멈추지 않고 이어갔다. 수많은 비난, 의심을 받으며 그로 인한 우울과 분노를 감내해야 했던 니체는 가장 내적이고 은밀한 자신의 샘에서 솟아나는 사색의 청량한 바람을 누리기 위해 고독하게 집중하는 시간을 선택한다.



 새로운 가치와 생각을 갈무리하며 자기 자신을 극복하는 초인은 그의 춤추는 발 끝, 혼자 걷던 시간에 완성된 것이다. SNS 사용을 극소화한다. 화려한 삶의 면면들이 소비되는 이미지들로 채워진 공간을 보고 있으면 저들만의 명사형의 세상은 건설 중인 네온시티의 유리벽 너머 박제된 공간 같아 거부감이 생긴다. 저마다의 삶의 가치가 다르기에 평가가 아닌 관망일지라도 슬픔이 앞선다.



 필연적으로 따라 하게 되는 또 다른 어린 세대에 대한 우려와 함께 세상의 가치가 이렇게 한정되어 버리면 어쩔까 하는 조바심 때문이다. 브런치에서도 정말 자신의 목소리로 세상을 바라보고 기록하는 작가들의 글을 찾아 읽게 되는 이유도 그 때문이다. 내 안의 의도된 고독에 침잠하는 시간에 들려오는 음악과 진솔하게 올곧이 전달되는 글들이 나를 완성해 간다 믿는다.





 
인간은 세상의 슬픔 바로 옆에서 그리고 흔히 자신의 화산 지대 위에 행복이라는 작은 정원들을 건설해 왔다. (중략) 그는 도처에서 모든 행복이 재앙 곁에서 싹텄다는 것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그 땅이 화산 지대였을수록 더 많은 행복이 있었다는 것도 발견하게 될 것이다.

             - <인간적이 너무나 인간적인 1>




 세상에게 그려놓은 삶의 지도를 따르지 않고 자신만의 색으로 주변을 물들이고, 길을 새로 열어 간 외로운 천재들의 목소리를 가만히 삭히는 시간이다.







 뷔페의 그림과 니체의 목소리. 전집을 읽은 것이 아니기에 아쉬운 순간이지만(전집까지는... 그건... 죽을 때까지 노력해 볼 일이기에) 장재형 작가의 <마흔에 읽는 니체>, 정동호 작가의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해설서>를 통해 만난 니체의 목소리를 통해 세상을 살아갈 새로운 등불을 만난다.



 
 가장 낯설고 가혹한 삶의 문제들과 직면해 있으면서도 삶을 긍정하는 것, 자신의 무궁무진성에 기쁨을 느끼면서 삶의 최고의 전형을 희생하는 것도 불사하는 생에의 의지. 이것이야말로 내가 디오니소스적이라고 불렀던 것이며, 비극 시인의 심리학에 이르는 교량으로서 인식한 것이다.

                                  - <우상의 황혼>



 불확실하고 불투명한 우리의 내일에 대한 두려움이 스스로의 마음을 잠식해 한없는 우울의 늪으로 끌고 들어갈 때, 아모르파티. 스스로에 대한 사랑과 소란을 벗어난 시간을 통해 자신에게 온전한 몰입을 하며 나누는 대화를 통해 나에게 주어진 삶을 살아갈 수 있기를 꿈꾼다. 마지막 순간 자신의 삶의 초인으로 죽음마저 긍정할 수 있다면 우리에게 주어진 삶을 살아내느라 쌓인 우울과 허무도 벗어날 수 있을 거라 믿는다. 단 한 번뿐인 삶이기에. 사랑하고 사랑하며 기쁨의 춤을 추며 온전히 누릴 수 있길.











* 같이 듣고 싶은 곡


바그너 : 트리스탄과 이졸데


https://youtu.be/5NvUyCdKAxM?si=O9edKONiPxlz7dy2











#마흔에읽는니체

#베르나르뷔페전시회

#차라투스트라는이렇게말했다

이전 25화 배움의 발견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