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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ono May 14. 2024

고백

미나토 가나에 - 비채


 




 평화롭고 단조로운 종업식 날의 교실 풍경이 펼쳐집니다. 낮은 레 음의 목소리톤을 갖고 있을 것 같은 담임교사 유코는 우유급식 시범학교로 선정되어 억지로 우유를 마시는 아이들을 다독이며 그들에게 우유를 마신 뒤의 청소년기의 신체적 변화와 정서적 변화 등의 평범한 이야기로 종례를 시작하죠. 그녀는 자신의 교사관에 대해서도 말합니다.



 
뭔가 문제가 하나 터지면 수업도 내팽개치고 함께 해결하려 했고, 누구 하나라도 교실을 뛰쳐나가면 비록 수업 중이라도
뒤쫓아갔습니다. 하지만 어느 순간, 이런 생각이 들더군요. 완벽한 인간은 어디에도 없다. 한낱 교사가 아이들에게 강하게 뭐라 호소하다니 착각도 유분수 아닐까. 아이들에게 자기 인생관을 강요하고, 자기만족을 얻고 있는 것뿐이 아닐까. 결국 높은 곳에서 아이들을 굽어보고 있는 것뿐이 아닐까.       - P.15





 조용하게 이어지는 유코의 목소리 사이 자기들끼리의 잡담과 곧 있을 방학에 대한 설렘으로 다소 들떠있는 반 아이들에게 이번 학기를 마지막으로 자신이 퇴직을 한다는 말을 꺼냅니다. 일순 조용해지는 아이들, 누군가 최근에 있었던 사건 때문에 그러느냐고 그녀에게 묻습니다.



 싱글맘으로 4살 된 딸 마나미를 지극정성으로 키워 온 유코. 아이의 아버지는 텔레비전에도 자주 나오던 '세상을 바꾸는 철부지 선생님' 사쿠라노미야 마사요시입니다. 유코와의 결혼을 앞두고 있던 때 HIV 발병사실을 알게 된 마사요시는 자신으로 인해 딸과 아내가 많은 사람들의 질타와 괴롭힘을 당할 것을 우려해 끝내 결혼을 포기하죠. 유코의 곁을 떠나고 연락을 하지 않은 채, 그저 멀리서 모녀를 지켜보며 살아갑니다. 다행히도 그의 병이 유코와 마나미에게는 전염되지 않았고 유코는 이 사실에 진심으로 안도하며 마나미를 혼신의 힘을 다해 보살피고 사랑하기로 다짐합니다.  



 그녀는 딸을 돌봐주던 분이 병원에 입원해 있느라 유치원이 끝나면 자신이 퇴근할 때까지 학교로 딸을 데려와 양호실에서 놀게 한 뒤 같이 퇴근을 하게 됩니다. 그러던 중 무코라는 개의 밥을 챙겨주기 위해 엄마 몰래 수영장을 가로질러 개에게 다녀오던 마나미가 수영장에서 익사사고를 당하죠. 종업식을 하던 날이 그 사고로부터 약 한 달 뒤입니다. 누군가 그 일을 언급하자 반 아이들은 모두 숙연해지는데, 유코는 뜻밖의 이야기를 꺼냅니다.


 
마나미는 사고로 죽은 것이 아니라 살해당했습니다. 그 범인은 우리 반에 있습니다.



 낮은 음의 목소리로 전하는 그녀의 <고백>에 아이들은 얼어붙습니다. 더욱 차분해진 목소리로 그녀는 범인 A와 B에 대해 이야기를 이어가죠. 각 인물들을 특정할 수 있는 자세한 이야기들과 함께 사건을 알게 된 경위, 그리고 그 사건을 자신이 알고 난 뒤 사실을 알리자 보이는 가해자들의 행동들까지도 모두 아이들에게 말합니다.  




 저는 성직자가 되고 싶은 생각은 없습니다. 경찰에 말하지 않은 이유는 A와 B의 처벌을 법에 맡기고 싶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살의는 있었지만 직접 죽이지는 않은 A. 살의는 없었지만 직접 죽이게 된 B. 경찰에 출두시켜도 둘 다 시설에 들어가기는커녕 보호관찰 처분, 사실상의 무죄방면이 될 게 뻔합니다. A를 감전시켜 죽여버릴까 하는 생각도 했어요. B를 익사시켜 버릴까 하는 생각도 했습니다.

 하지만 그런 짓을 해도 마나미는 돌아오지 않습니다. 그리고 두 사람이 자신의 죄를 반성할 수도 없습니다. 저는 두 사람이 생명의 무게와 소중함을 알았으면 합니다. 그것을 안 후에 자신이 저지른 죄의 무게를 깨닫고, 그 죄를 지고 사아가길 원합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중략)

 저는 두 사람 우유에 오늘 아침에 갓 채취한 혈액을 섞어놓았어요. 제 피가 아닙니다. 효과는 바로 알 수 없습니다. 부디 두세 달 후에 혈액검사를 받아보세요. 효과가 있다면 통상 오 년에서 십 년이라고 하니 그동안 차분히 생명의 무게와 소중함을 실감해 보세요.  
                                             p. 57-58



 


 종업식을 마지막으로 유코는 학교를 떠나고 그녀의 발언 이후 남겨진 B반 교실은 기괴한 침묵과 공기가 감돌게 됩니다. 범인으로 지목된 슈야와 나오키. 이들은 어떻게 될까요?




 

 추리소설을 읽는 즐거움은 끝까지 숨겨놓았던 범인을 찾아가며, 그간에 장면 사이 숨겨진 단서들을 제대로 파악해 내는 일이라 생각합니다. 그런데 이 소설은 초반부에 이미 마나미가 엄마인 유코가 맡고 있던 중학교 담임반 학생들에게 살해당했고, 그 범인들이 누구인지까지 알려주며 시작을 하죠. 무슨 이렇게 싱겁고 황당한 오픈 결말이 다 있느냐 할지도 모를 역발상 전개입니다. 


 

 1장 성직자 파트의 주인공 유코의 이야기로 포문을 연 소설은 2장 순교자에서 미즈키라는 소녀를 통해 두 소년을 응징하는 반 아이들의 행동들이 나옵니다. 아무것도 모르고 열정에 사로잡혀 왕따를 당하는 슈야를 돕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새로운 담임 베르테르. 학교에 나오지 않게 된 나오키를 찾아가는 담임의 어긋난 열정이 몰고 온 인물 간의 파국이 더 심화되죠. 3장 자애자에서는 살인에 가담하고 살인을 완성한 나오키의 어머니의 시점에서 자신의 아들에 대한 서술이 이어집니다. 자신만의 교육방식이 옳다고 믿으며 학교의 입시경쟁 등에서 두각을 드러내지 못하는 아들 나오키를 감싸고 두둔하는 그녀의 그릇된 애정이 빚은 비극을 보여주죠.



 4장의 구도자에서는 나오키의 시점과 5장의 신봉자에서는 슈야의 시점의 서술이 이어지며 같은 사건을 두고 관련된 인물들의 다양한 시점으로 사건의 일어나게 되기까지의 전후 상황들이 상세히 펼쳐집니다. 이들이 변화할 수 있을까, 어떻게 달라지게 할 수 있을까, 어떻게 자라날까 등등의 생각을 하며 책을 놓을 수가 없게 만들죠. 그리고 마지막 모든 사건의 종결을 알리는 전도자에서 역대급 반전을 마주합니다. '이래서 처음부터 범인을 특정 지어 밝히고 시작했구나'란 생각과 함께 감탄사가 나오게 되는 결말로 소설은 끝이 납니다. 정말 흥미롭습니다.









 

 소년범들에 대한 솜방망이 같은 사회적 처벌의 한계와 허점에 대한 통렬한 비판과 함께 자식을 잃은 부모의 복수를 세밀하게 그려내는 소설에서 일종의 카타르시스를 느낍니다. 각자의 시점을 통해 인물들의 성장과정에서 엇나갈 수밖에 없는 이유들이 등장하지만, 억지 동정표를 만들어내지는 않죠. 가해자들의 급작스러운 반성과 성자가 아니면 불가능할 용서로 된 결말이 아니어서 더 맘에 드는 소설입니다. 징검다리 연휴를 함께 할 추리소설 <고백>. 열어보세요. 어떤 목소리가 들리는지 말씀해 주실래요?














* 같이 듣고 싶은 곡


정재일 : 믿음의 벨트



https://youtu.be/EwniUmkngnc?si=NUPvuBL57SVv5ZV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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