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기주 - 말글터
사람은 누구나 가슴속에 낙원을 품고 살아간다. 우리는 그것을 꿈이라고 부른다. 낙원에 도달하려면 일단 떠나야 한다. 어떻게? 호기심이라는 배에 올라 스스로 물음을 던지고 자신만의 길을 찾는 수밖에.(중략)
호기심이 싹틀 때 "원래 그렇다"는 말로 억누르지 않았으면 한다. 삶의 진보는, 대개 사소한 질문에서 비롯된다. p.98
어제는 노트북을 켜고 '사람'을 입력하려다 실수로 '삶'을 쳤다. 그러고 보니 '사람'에서 슬며시 받침을 바꾸면 '사랑'이 되고 '사람'에서 은밀하게 모음을 빼면 '삶'이 된다.
몇몇 언어학자는 사람, 사랑, 삶의 근원을 거슬러 올라가면 같은 본류本流를 만나게 된다고 주장한다. 세 단어 모두 하나의 어원에서 파생했다는 것이다. 세 단어가 닮아서일까. 사랑에 얽매이지 않고 살아가는 사람도, 사랑이 끼어들지 않는 삶도 없는 듯하다. 삶의 본질에 대해 우린 다양한 해석을 내놓거나 음미하기를 좋아한다.
헤밍웨이는 "인간은 파괴될 수는 있으나 패배하지는 않는다"라고 했고 어느 작가는 "작은 인연과 오해를 풀기 위해 사는 것이 인생"이라고 읊조렸다.
"우린 다른 누군가를 만나기 위해 살아가고 있는 건지도 모른다"는 영화 대사도 한 번쯤 되새길 만하다.
나는 어렵게 이야기하기보다 '사람' '사랑' '삶', 이 세 단어의 유사성을 토대로 말하고 싶다. 사람이 사랑을 이루면서 살아가는 것, 그게 바로, 삶이 아닐까? p.122
'앎'은 '퇴적'과 '침식'을 동시에 당한다. 살아가면서 자연스레 알게 되는 지식이 있지만 시간의 흐름에 따라 깎이고 떨어져 나가는 지식도 많다. 공부는 끝이 없다는 뻔한 말이 새삼 무겁게 다가오는 경우도 많다. 여전히 모르는 게 많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는 순간이 특히 그렇다. -p.202
"여행은 도시와 시간을 이어주는 일이다. 그러나 내게 가장 아름답고 철학적인 여행은 그렇게 머무는 사이 생겨나는 틈이다.
- 폴 발레리
밑줄 그을 만한 문장들이다. 이들의 이야기처럼, 우린 목적지에 닿을 때보다 지나치는 길목에서 더 소중한 것을 얻곤 한다. 어쩌면 여행의 궁극적인 목적은 '도착'이 아니라 '과정'인지도 모른다. (중략) 어디 여행뿐이랴. 인간의 감정이 그렇고 관계가 그러한 듯하다. 돌이켜보면 날 누군가에게 데려간 것도, 언제나 도착이 아닌 과정이었다. 스침과 흩어짐이 날 그 사람에게 안내했던 것 같다. -p.25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