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경을 마주한다는 말을 하려면 적어도 일 년의 시간이 필요하지 않을까. 언젠가 할 수만 있다면 멈춰 있고 싶은 곳이다.
바다를 건너 불어오는 바람이 계절의 변경선을 넘어올 때 무거워진 몸을 툭, 보리밭 위에 내려놓을 때 짙어지는 초록의 색.
마에다신조
비구름이 한가득 산능선을 덮어 잠재우면 또렷해지는 곧은 나무의 형체들. 신을 향해 경배를 드리는 사제들로 변하는 경이로운 생명들.
마에다신조
플라타너스나무 잎을 달구는 가을의 햇살이 바삭바삭 맛있게 구워놓은 갈잎의 잎들이 머리 위에 쏟아질 때의 햇살.
마에다신조
그리고 마침내 모든 경계를 지우고 고요한 침묵이 오래 내리는 겨울의 자작나무 숲 속에 머무는 입김.
마에다신조
이 모든 순간을 온전히 기록할 수 있다면 내 시간은 어떻게 자라 있을까? 마에다 신조의 사진들이 전시된 탁신관을 오래 거닌다. 구형 카메라가 유물처럼 남아 액자를 마주하고 삐그덕거리는 소음이 오래 묵은 기침처럼 흐르는 공간에서 난 사계절의 풍경을 마음에 담는다.
삶이 내게 스며든다.
마에다 신조부터 카이 신조까지.
그들의 열정이 내 마음을 두드린다.
3대의 시선이 담긴 풍경들을 바라보다 내가 사는 곳의 사계를 꼭 기록해 보자는 다짐을 한다. 기록의 힘은 무심히 스쳐 지나간 것들에 생명을 선사한다.
늘 똑같은 일출과 일몰은 한 번도 없을 텐데 하루의 때가 되어 스쳐지날 때의 인상은 흐려지고 희미해진다. 잠시 모든 걸 내려놓고 온전하게 마주 서서 바라볼 때만 내게 특별한 빛과 색을 선물해 주는 걸 잊어버리게 되는 건 우리들 마음의 여유가 그조차 허락할 수 없기 때문은 아닐까?
시곗바늘의 재촉에 잊어버린 호흡을 고른다. 들숨과 날숨의 교차 속에 차오르는 마음으로 어깨를 곧게 펴고 발 끝에 힘을 주며 탁신관을 나선다. 다음 계절에 당신이 바라본 풍경을 나도 다시 만나길 기원하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