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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ono Aug 04. 2024

내 흐름에 맞추어, 샤카

표지사진 휴식 2020_이상헌 作




 세상이 흔들린다. 발 밑을 지탱하는 땅이 살아 움직이듯 요동치는 느낌에 아득해진 난 그만 눈을 감고 벽에 기댄다. 주변은 깊은 물속으로 변한 듯 귀가 먹먹해질 정도로 압박해 오는 공기의 밀도에 숨을 쉴 수가 없다. 하나, 둘, 셋, 넷... 주문처럼 숫자를 센다. 얼마나 지났을까?



 서서히 주변의 소음이 내 귀로 들어오기 시작한다. 물의 장막이 걷힌다. 천천히 눈을 뜨니 사물이 두 개로 겹쳐 보이던 눈앞 풍경이 제자리를 찾았다. 다행이다. 이 죽일 놈의 메니에르. 진단한 의사양반이 학술계에 족적을 남길 때 누군가 이렇게 시시때때로 욕을 하리라 생각은 해봤을까?




 나는 다시 천천히 걷기 시작한다. 오랜만에 만나는 개화공원의 풍경. 녹잎들이 무성하게 자라 석상들을 가리고 조그만 그늘아래 무심히 숨어든 작은 풀벌레들은 시치미를 떼며 먼 산 보듯 기회를 노리는 개구리들의 만찬으로 갑작스레 자취를 감추거나, 혹은 다음 생을 위한 열렬한 사랑을 나누는 중이다. 목하 열애와 찰나의 죽음. 생과 사가 존재하는 이 작은 실낙원을 나는 소리 없이 걷기 위해 발 끝을 든다.








 모산 미술관의 전시가 바뀌었다.


            오버 랩 : 가장 보편적인 감정

 


 제 작품 앞에서 눈물을 훔치는 관객이 참 많아요. 슬쩍 다가가 '무엇이 생각나십니까?' 하면 다들 제 상처와 닮은 이야기를 하죠. 막을 새도 없이 퍽 하고 터지는 출처 모를 눈물, 그에 얽힌 한 사람의 무거웠던 삶의 얘기를 듣는 것이 제가 작가로서 하는 또 다른 작업의 일환입니다. 마음 깊은 상처에 넌지시 말을 거는 작품이기에 결코 추상적이거나 어려울 수 없지요.


- 월간 대구 문화 <이 사람_조각가 이상> 중에서






어린 왕자의 꿈 11 & 7



 목재와 브론즈, 합성수지 등 다양한 재료로 만들어진 조각품이 전시실을 채우고 있다. 들어서자마자 보이는 두 편의 아크릴채색으로 된 그림은 "어린 왕자의 꿈"이다. 눈물을 동반한 그의 꿈은 숨 쉴 수 없는 장미에 대한 연민일까? 떠날 수 없는 행성에 묶인 자신의 운명에 대한 비애일까?





좌 Memories 2003,           우  왕비의 꿈 2024






 인간의 두상과 그 안에 숨겨진 작은 의자, 혹은 성채가 인상적인 두 편의 조각작품 앞에 한참을 서 있게 된다. 누군가의 기억의 단면에 놓여있는 의자는 어떤 의미일까? 어린 자신이 쉬어갈 공간일까, 아니면 다른 누군가를 위해 마련한 용서의 공간인 걸까? 끊임없는 질문을 던지게 만드는 작품들로 눈과 마음이 즐겁다.






좌 내면풍경 - 바람 불어 좋은 날 2020    우 못을 박다 2018
몽상가의 불확실한 내면풍경2




 전시실 반대편으로 돌아가니 눈에 익은 작품들이 보인다. 그제야 이 작가의 작품을 어디에서 보았는지 기억이 난다. 개화공원 내 온실 안에 자리한 조각상. 한 남자가 자신의 심장이 있는 부분에 창문을 내고, 그 창에 드리운 구름과 바람길을 보여주며 눈을 감고 서 있던 작품을 만든 사람이 바로 이 작가였다. 처음 빛바랜 채 무성한 이국의 잎들 사이 자리해 있던 그 조각상을 보고 미하엘 엔데 소설 <모모>의 한 장면을 떠올렸더랬다.






 "빛을 보기 위해 눈이 있고, 소리를 듣기 위해 귀가 있듯이, 너희들은 시간을 느끼기 위해 가슴을 갖고 있단다. 가슴으로 느끼지 않은 시간은 모두 없어져 버리지. (중략) 허나 슬프게도 이 세상에는 쿵쿵 뛰고 있는데도 아무것도 느끼지 못하는, 눈멀고, 귀먹은 가슴들이 수두룩 하단다."


 "그럼 제 가슴이 언젠가 뛰기를 멈추면 어떻게 돼요?"


 "그럼, 네게 지정된 시간도 멈추게 되지. 아가, 네가 살아온 시간, 다시 말해서 지나 온 너의 낮과 밤들, 달과 해들을 지나 되돌아간다고 말할 수도 있을 게다. 너는 너의 일생을 지나 되돌아가는 게야. 언젠가 네가 그 문을 통해 들어왔던 둥근 은빛 성문에 닿을 때까지 말이지. 거기서 너는 그 문을 다시 나가게 되지."

                - 미하일 엔데 소설 <모모> 중에서






구름과 나 2006
잃어버린 시간 2014







 

 어른이란 옷의 무게로 심장이 뛰는 것이 둔해지거나 그마저도 멈춰 버린 이들에게 마음을 여는 법을 알려주는 작품들 속을 천천히 거닌다.


 가슴 위에 얹은 손바닥을 툭, 툭. 알을 깨고 나오려는 병아리의 부리처럼 치대는 심장의 무게를 느낀다. 살아있구나, 너.









 매일 출렁대는 발 밑의 물결을 흐름을 따르거나, 혹은 역행하더라도 중심을 잃지 않고 서 있는 법을 배우는 요즘이다. 여름이 고개를 넘고, 가을을 내려다보는 길목에서. 나는 또 한 번의 탈피를 꿈꾼다.






















* 같이 듣고 싶은 곡


인형의 꿈 : 김필선


https://youtu.be/VInjBtWNOFg?si=G9r2F2Xvm7PgmaMR











#2024년 8월

#개화공원모산미술관전시

#이상헌조각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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