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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ono Sep 08. 2024

붓 끝이 향한 에움길의 도착지

뭉크 전시회






 열린 창문을 통해 밖에서 바라보는 사람은 결코 닫힌 창을 바라보는 사람만큼 많은 것을 보지 못한다. 한 자루 촛불로 밝혀진 창보다 더 그윽하고, 더 신비롭고, 더 풍요롭고, 더 컴컴하고, 더 눈부신 것은 없다.

 태양 아래서 볼 수 있는 것은 언제나 한 장의 유리창 뒤에서 일어나는 것만큼 흥미롭지 않다. 이 어둡거나 밝은 구멍 속에서, 생명이 살고, 생명이 꿈꾸고, 생명이 고뇌한다.

             - <파리의 우울> 중 샤를 피에르 보들레르의 시 <창문들> 일부, 황현산 옮김. 문학동네, 2015, 102쪽










  그는 농밀한 어둠을 베어 내 캔버스 위에 걸고 그림을 그린다. 어린 시절 밤의 마왕을 코 앞으로 데리고 와 풀어놓던 아버지의 목소리로 지배당하던 날들이 두터운 바탕색이 된다. 긁어내도 파이지 않는 색들 위에 우울과 상실, 광기와 이성이 혼재된 선들이 덧 입혀진다.



 부풀어 올라 형체를 갖추고 그림 속을 채우는 사람들을 바라본다. 내 안에 감춰 둔 감정들이 이름표를 붙이고 캔버스 안에 들어가 거닐고 있다. 고독, 질투, 배신, 욕망, 분노, 애련, 갈망 등등 수많은 감정들이 찍어놓은 발자국을 따라 그림들을 따라 걷는다. 노르웨이에 있다는 그의 벽화 "태양"을 보고 싶었다.



오슬로 대학 본관에 설치되어 있는 벽화, 태양







 혹시 벽화의 스케치 혹은 판화본이 있지 않을까란 바람을 갖고 왔지만 그의 대표작들이라 불리는 마돈나(심의에 걸릴까 봐 사진 게재 못함), 키스, 병든 아이, 다리 위의 소녀들 등등이 다양한 표현법으로 전시실을 채우고 있다.









 고독과 불안이란 감정을 우리 몸에서 팔레트 위에 짜 놓는다면 이런 색들이 나올까? 화가 각자의 삶이 가진 고통과 상처들을 떠올려 본다. 베르나르 뷔페, 라울 뒤피 등등의 다른 화가들 또한 삶이 평탄치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밝은 색채들이 가득했던 그림들을 떠올려 볼 때, 뭉크의 그림은 얼마나 그가 처절하게 감정들을 파고들고 연구했는지를 보여준다. 



 자신의 작품에 대한 애착도 강해서 팔린 작품을 작품을 구입한 컬렉터에게 부탁해 다시 대여해 와 그리고 또 그렸다고 한다. 대개 한 편의 글을 완성하면 한동안은 들여다보지 않으려고 한다. 대가와 견주어 이야기하기 부끄럽지만, 쓰는 동안 치열하게 고민했던 나의 모습을 떠올리기 싫어서 혹은 그때의 감정들에 내가 매몰되지 않기 위해서 한동안 내 나름의 탈고식을 치르는 셈이다. 그렇게 해야 온전한 작별을 마치고 새로운 글을 쓸 수 있다 생각하기에 여러 차례 시작될 수정의 작업도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난 후에 시작한다.


 그러나 뭉크는 다시 들여다본다는 것이다. 즉각적인 피드백이 어떻게 가능했던 것일까? 자신이 그려 낸 자신의 마음 한 조각에 새겨진 미세한 기호들을 읽고 또 읽고. 다시 그려내고. 치열했던 그의 붓질 아래  온갖 불안한 감정의 집합체를 마주하고 서 있다. 가장 들여다보기 싫은 내 마음속 깊은 방에 숨겨놓은 감정들.  




 어둡거나 밝은 구멍들 속에서, 생명이 살고, 생명이 꿈꾸고, 죽는다... 보들레르의 시 일부가 그의 그림을 보는 내내 머릿속에 새겨진다. 자신이 사는 동안 내내 마주했던 가족들의 죽음과 연인의 배신, 스스로의 감정에 대한 불안과 고뇌. 그는 자신이라는 닫힌 창을 바라보며 이렇게 치열하게 그림을 그렸다. 포기하거나 무너지지 않고 긴 시간 이렇게 살아낼 수 있었던 삶에 대한 그의 애증이 오롯하게 눈에 담긴다.









 그의 붓질은 단 하나를 향한 수많은 에움길들이었다. 영혼의 온전한 안식. 생의 마지막까지 그 길을 만나기 위해 그리고 또 그렸던 뭉크의 그림들. 전에는 특유의 어두운 색채와 기괴한 형상들로 인해 크게 와닿지 않았다. 그러나 오늘, 그림에서 목소리가 들린다.



"그러니까 살아. 용기 내서 마주 하며 살아. 삶은 그런 거야."
















* 같이 듣고 싶은 곡


류이치 사카모토 : The Sheltering Sky


https://youtu.be/5kY57A4DYO8?si=lYxW7Cu7VAsuUmL9







#뭉크전시회

#보들레르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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