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reaming Lif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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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ono



여행을 계획한다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해외여행 다녀온 곳이 2시간 남짓 비행기를 타고 가던 대만이 전부인지라 대략 12시간이 넘어가는 장거리 비행에 대한 공포부터, 익숙한 것이 하나 없을 새로운 풍경에 대한 마음의 준비, 그리고 무엇보다 보내놓고 내내 걱정하고 기다리고 있을 가족들에 대한 미안함까지. 덜컥 확정해 버린 여행이 시간이 다가올수록 올무처럼 우리를 옥죄인다.


그 마음을 닮은 눈이 내린다. 우리가 출발하기로 한 1월 14일 전날부터 내리기 시작한 눈이 도로를 덮어버렸다. 출발 전 받기로 했던 소매치기를 대비한 세이프락 가방도 눈 때문에 배송이 지연되어 늦은 밤 택배기사님을 길 가에서 만나 받을 정도였다. 캐리어를 싣고 공항버스에 올라 유성우처럼 쏟아져 내리는 굵은 눈발을 바라보며 한참을 말없이 앞만 보았다. 정작 출발 당일이 되니 더 실감이 나지 않는 우리들의 여행, 까무룩 잠이 들었다 완행버스처럼 도시 곳곳을 들러 승객을 태우는 덕에 금방 잠에서 깨었다.


새로 버스에 오르는 승객들이 묻혀 온 한기와 그들의 입김에서 묻어난 온기로 유리창엔 조그만 성에꽃들이 피어나기 시작한다. 어느덧 눈이 멈춰있었다. 도로에 쌓인 눈만 아니라면 아무 일 없었다는 듯 평온한 밤하늘에 떠오른 둥근달이 뿜어내는 빛이 눈부시게 빛나는 밤이다.







"블루에 몇 가지 종류가 있는 줄 알아?"


난 옆자리에 앉아 생각에 잠긴 동생에게 말을 건넸다. 떨어질 때 울까 봐 잠든 사이 조카 은바오를 놓고 나온 터라 정으로 인해 조금은 침울해져 있던 동생이 내게 고개를 돌린다.


"마린 블루, 아콰마린, 코발트블루, 로열 블루, 오리엔탈 블루, 스카이 블루 등등 무려 111가지나 된다더라. 지금 우리가 보는 저 푸름은 무슨 색일까?"


동생과 함께 차창 너머 올려다보는 하늘빛은 눈발이 걷히고 까마득히 먼 데서 전해지는 안부 같은 별빛들이 수놓아지고 있었다.


"어쩌면 우리, 스페인 말라가에서 이렇게 흩뿌려진 별빛들을 올려다보며 그림을 그렸을 피카소의 한때를 만날지도 몰라. 미안함보다, 앞으로 평생 은바오한테 이야기해 줄 우리들만의 색을 만나고 오자. 꼭!"

말없이 잡은 손에서 전해지는 온기 좋다. 355일 차이의 시간을 살아가는 또 다른 나인 동생에게서 나와 같은 체온이 전해져 오니 두려운 마음도 상쇄된다.


"우리 말라가 안 가지 않냐? 손에 땀 차니까 그만 놔라. 왜 질척거려. 술 취한 전 남자 친구처럼!"


우리들의 낭만은 음, 그래. 서로 다른 주파수구나. 돌아오는 비행기만 다르게 오지말자. 그럼 됐지, 뭐!










한참을 기다려 탑승한 비행기, 마드리드 공항에 도착하기까지의 시간은 만화경 속 그림 같다. 정신없이 반짝이고 눈이 돌아갈 것처럼 스피드 하게 오갔던 공항에서 보조배터리 때문에 수화물 통과를 다시 해야만 했던 일까지 겹쳐 비행기 안 좁디좁은 내 좌석에 앉았을 때는 거의 탈진 직전이었다.


2주라는 시간을 빼기 위해 쉬지 않고 일을 하다 새벽 출발로 달려온 탓인지 피로가 겹쳐 기압차로 점점 미쉐린 타이어 인형처럼 부풀어 오르는 팔다리를 뒤척이며 선잠에 들었다 깼다를 반복했다.



어릴 적 같이 간 가족여행이 주산면 외진 초등학교의 운동장이었던 걸로 기억한다. 내가 초등학교 5학년 즈음이었던 때, 공사 하나를 마치고 받은 으로 모처럼 집안 분위기가 잔칫날 같았던 날었다. 들뜬 마음에 까불거리다가 발목을 삔 남동생을 엎은 아빠와 그 옆에서 남동생 엉덩이를 받쳐주며 다정하게 웃으며 걸어가던 엄마. 슈퍼에서 사준 과자봉지를 손에 들고 한 개씩 바꾸어 먹자 흥정을 하며 걷던 여동생과 나.


기억 속의 한 장면이 투명하게 부풀어 올라 색을 입더니 누군가 영사기를 튼 것처럼 움직이기 시작한다. 벚꽃이 터지듯 앞다투어 피어나고, 산자락에서 바람에 실려 온 아카시아향이 달콤해 봄이란, 가족들의 소풍이란 런 것이어야겠다를 다짐하게 했던 아주 드문 우리 가족의 따뜻했던 날이 보이니 눈가에 물기가 돋는다.


다시 돌아갈 수 없는 날들은 슬픔이다. 기억하는 일조차. 울고 있다는 자각도 못하던 때,


"일어나. 좀 움직여보고. 이제 곧 착륙한대."


내 꿈을 깨운 동생의 한마디. 드디어 우리는 스페인 땅을 밟았다.










ㅡ Rachel Platten : Stand by you


https://youtu.be/rh0whslS_5w?si=nl1GEG71_dvNYP0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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