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이란 단어를 떠올리면 항상 생각의 꼬리 끝에 따라오는 향기가 있습니다. 마른 풀잎, 꺼칠하게 일어난 수피에서 묻어나는 선명한 진액의 내음. 어린 날 숲 속을 거닐면서 나무들마다 서로 다른 독특한 향들을 맡으며 수피를 손으로 더듬어 나무들이 자라는 시간들을 확인해 보곤 했습니다. 지금은 그 시간이 아주 먼 옛날처럼 아득하게만 느껴지네요. 가을 나무내음이 그리워 달려갔던 적이 있습니다. 내장사로요. 오래 이룬 나무 군락이 하늘을 가린 울창한 숲이 보고 싶었습니다.
실은 제일가보고 싶은 곳은 인제의 자작나무숲입니다. 하얀 몸피를 드러내고 우아한 직선으로 하늘 향해 서 있는 저마다의 눈동자를 줄기에 새겨놓은 나무. 수피를 불에 태울 때 내는 소리가 자작자작 이래서 나무이름이 지어졌다죠. 그 수피에 간절한 마음을 담아 편지를 쓰면 사랑이 이루어진다 해서 많은 이들의 사랑을 받는 나무입니다.
그다음엔 강진의 다산초당에서 백련사로 돌아가는 좁은 숲길 뿌리를 드러낸 나무들도 다시 만나러 가고 싶습니다. 검푸른 토양의 푸른 정맥처럼 도드라졌던 생명의 줄기들이 한 번씩 그리워져요.
곧게 하늘로 뻗어 자라는 나무들의 우아한 생장을 마주하면 경외심이 생깁니다. 영화 반지의 제왕 3편에서 앤트족들이 등장하죠. 거대한 나무들이 자신이 있던 자리에서 스스로 뿌리를 뽑아 땅을 박차고 나와 세상을 위협하는 나쁜 마법사들과 그들의 졸개인 오크족과 대항해 싸우는 장면을 보면 통쾌해요. 그들에 비해 이제 막 껍질 벗고 나온 매미보다 작게 느껴지는 호빗족들이 앤트족의 어깨(?)에 앉아 바람에 머리칼을 날리우며 신나게 환호성 치는 장면이 나옵니다. 그 모습이 얼마나 부러웠으면 영화 보고 꿈도 꿨을까요?
씨앗이 발아해 싹이 움트고 땅 위로 고개를 내밀면 천재지변이나 인재에 의해 훼손당하지 않는다면 난 자리에서 아주 오랜 시간을 버텨야 하는 나무이기에 시간을 덧입고 이렇게 아름드리 줄기로 자라난 걸 볼 때면 저도 모르게 기특하단 말이 절로 나와라. 그리고 그 나무들 중에 더 애착이 가고 눈길이 머무는 아이들은 위태롭게 휘어 자라는 나무들이죠. ‘곡지曲枝’라고 하는, 가지나 줄기가 어떤 외부적인 영향 때문에 휘는 것을 일컫는 말이 있어라. 이런 나무들에게 붙여진 이름이죠.
제가 사는 곳에도 고속도로 IC 출구에서 시내방향으로 나오면 바로 만나게 되는 아름드리나무 한그루가 있습니다. 줄기가 옆으로 휘어 버팀목까지 호위병처럼 갖고 있는 소나무죠. 이 나무를 지키기 위해서 도로도 나무를 피해서 휘돌아 만들 만큼 그 동네 주민들 사랑이 극진하죠.
나무에 돌을 던져서 올라가면 아들을 낳는다는 속설이 있어서 귀하게 대접받는다는데, 돌들이 돌팔매질 수준으로 던져졌을 거라 생각하면 지금에라도 좀 더 아껴주는 게 맞겠지요? 매연에 점점 메말라가는 기분이 들어 스쳐 지날 때면 파이팅을 외쳐봅니다. 들리지 않더라도 너를 바라보는 이가 있다는 걸 알려주고 싶어서요.
가을 하면 또 빼놓을 수 없는 것이 은행나무입니다. 전 세계에 은행나무가 다 분포되어 자라는 줄 알았는데 동양에서만 자란다죠. 은행나무는 오래된 설화 속에서부터 한자리 차지해 어디서든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역사의 산증인 같단 생각이 듭니다. 단군왕검이 고조선을 만들고 있을 때도 노랑잎이 팔랑팔랑 나비처럼 흩날리고 있을 것 같거든요. 기본 수령이 천년은 거뜬히 넘어간다고 하니 은행나무 앞에서 나이 몇 살인지 손꼽아 보는 건 아직 우화도 끝내지 못한 매미가 벌써 날아보겠다 날개 어딨는지 찾고 있는 격이겠죠. 음, 도전 안 하겠어요.
그런데 한 가지 흥미로운 사실은 은행나무가 은행나뭇과에서 오직 하나의 속屬, 하나의 종種으로만 존재한다는 것입니다. 독립수라는 특성 때문에 숲을 이루지도 못하고 혼자 자라야만 한대요. 병충해를 스스로 치유하기 위해서 우리가 혈액순환제에 넣어 먹는 "징코민"을 만들어내는데, 이게 실상은 독이기 때문에 은행나무 주변에 다른 나무들이 살 수 없다는군요.
저 어릴 때 외할머니께서 창고랑, 방의 낡은 틈에서 기어 나오는 개미들을 없앤다고 은행잎을 주워다 깔아 두시던 기억이 납니다. 한 봉지 가득 은행잎을 모아 오면 벽장에서 알록달록 동그란 눈깔사탕 주시던 거에 홀려서 열심히 주우러 다녔더랬죠. 밟아서 덤으로 묻어오던 구름꾸름한 냄새를 친구 삼아서요.
은행나무처럼 외로운 나무도 없대요. 풍매화이기에 반드시 암그루, 수그루 근처에 나란히 있어야 꽃가루받이가 되는데 만약 근처에 수그루가 없다면 아주 오랜 시간이 지나도 열매 한번 못 맺어보고 그렇게 살아야 한답니다. 당당하고 기품 있게 천년의 시간을 버틴 존재가 이렇게 외롭게 홀로 바람을 맞고 사는 줄은 몰랐지요. 갑자기 은행나무가 을지문덕 장군에서 조선시대 궁궐 안 궁녀들로 확 바뀌어 다가오더군요. 이 사실을 알고나서는요. 나무야, 나무야. 외로운 나무야.
가르치는 아이가 예고에 합격했다는 소식을 들었어라. 공부에 별반 흥미가 없는 아이입니다. 욘석이 초등학교 4학년 때 처음 만났는데, 수학은 분수가 무엇인지도 몰라 바둑알 하나씩 알까기 해가면서 알려주던 아이인데, 중학교에 가더니 점점 달라지더라고요. 여전히 흥미는 없지만 자신의 장래를 위한 선택권을 넓히기 위해 공부를 하더니 끄적끄적 그리던 그림이 눈에 띄더니 그걸로 중학교 3학년 올라와 입시미술을 준비해 마침내 충남예고에 합격을 했습니다.
체형도 왜소하고 눈만 동그란 아이, 자주 아파서 얼굴도 창백한 녀석이 입시미술 준비한다고 늦게까지 캔버스를 마주하고 버틴 시간이 기특하고 장해서 소식 전하는 아이에게 선물을 보냈습니다. 아직 해야 할 것들이 더 많겠지만 지금 이 순간만큼은 세상 누구보다 기뻐하고 그 기쁨을 누렸음 해서요.
우리들의 삶을 나무에 견준다면, 지금 저 아이는 어떤 나무일까요? 커다란 마가목 (엄마, 아빠의 기대를 한 몸에 받는 아이의 언니) 옆에 심긴 작은 상수리나무 같단 생각을 했었습니다. 여태 마가목의 곧은 줄기에 밀려 바로 자라지 못하고 옆으로 휘어 더디게 자라던 곡지曲枝, 작은 상수리나무가 자신이 자랄 방향을 찾은 것 같아 안도되고 행복한 날입니다.
나무처럼 살았으면 좋겠습니다.
쉬이 노하거나 좌절하지 않고, 흔들릴지언정 뽑히지 않고 더 굳게 뿌리내려 조금씩 조금씩 자신만의 속도로 자라 풍성한 그늘을 만들고 군락을 이루며 바람에 화음을 넣은 듯 흔들리는 잎들의 휘파람 소리로 살아가는 나무처럼 그리 살 수 있담 좋겠습니다.
때론 곡지曲枝로 휘어 늘어져도 끝끝내 햇볕 받을 자리를 찾아 자라 오르는 끈기를 갖고 말이죠. 이 비가 그치면 가을이 성큼 우리 눈앞에 다가올 것 같은 날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