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칙한 생명

by Bono





엄마는 간장게장을 담근다. 커다란 통에 잘 삭힌 간장을 붓고 나에게도 알려주지 않는 비장의 무기를 섞은 뒤 꽃게들을 하나씩 차곡차곡 쌓아 푹 삭힌다. 버둥대던 움직임마저 잦아들면 가만히 뚜껑을 열어 장 맛을 살피고 숨죽인 게들을 살핀다. 깨끗하고 넓은 접시에 게의 배 뚜껑을 열어 나란히 놓으면 사람들이 제발 팔아달라 사정하는 게장으로 식탁에 오른다. 남들과 다른 엄마만의 손맛으로 만든 게장. 두꺼운 부엌칼로 칼집을 넣은 다리 한쪽을 입에 물고 쪽 빨아들이면 청량한 바다향이 내게 몰려든다. 게살은 흐물거리거나 밍밍하지 않고 쫄깃한 식감 그대로 살아있으되 비린 향이 하나도 없다. 바다 가까이 살고, 바다의 산물로 자라난 나는 비린 것을 잘 먹지 못한다. 그럼에도 엄마가 직접 담근 게장만큼은 한 번씩 입에 물고 오물거릴 수 있다.




어느 날 안도현의 시를 읽었다.




스며드는 것

- 안도현


꽃게가 간장 속에

반쯤 몸을 담그고 엎드려 있다.

등판에 간장이 울컥울컥 쏟아질 때

꽃게는 뱃속에 알을 껴안으려고

꿈틀거리다가 더 낮게

더 바닥 쪽으로

웅크렸으리라 버둥거렸으리라

버둥거리다가

어찌할 수 없어서

살 속으로 스며드는 것을

한때의 어스름을

꽃게는 천천히 받아들였으리라

껍질이 먹먹해지기 전에

가만히 알들에게 말했으리라


저녁이야

불 끄고 잘 시간이야



- 2004년 <간절하게 참 철없이> 시집 중





주체를 바꾸어 생각해 보는 일, 시선을 달리해서 바라보는 일. 획일화되어가는 사고를 깨우는 도끼와 같은 시였다. 난 이 시를 읽고 간장게장을 담그고, 매일 바닷장어의 배를 가르고, 우럭을 토막 내 매운탕을 끓이는 엄마가 꽃게처럼 보였다. 책임을 같이 나눌 존재가 없는 상태의 불안을 끌어안고, 얼마나 많은 밤 혼자 잠든 우리를 바라보았을까? 쉼이 없이 일하는 엄마의 고단한 날들을 떠올리니 이 시를 읽고 그만 먹먹함에 한참을 울었다. 이런 시를 쓰고 싶다는 다짐과 함께.



엄마에게 시 전문을 옮겨 써서 전송했다. 이렇게 보듬어 안고 우리를 키워줘서 고맙노라 그 말을 하고 싶었다. 아뿔싸, 시 전문을 전송하고 내가 하고 싶던 말을 적고 있던 중 상담전화가 오는 바람에 시만 보내놓고 다음 이야기를 잊어버린 채 일을 시작했다. 한참 뒤 가게 바쁜 시간이 지나고 시를 읽은 엄마께서 내게 답을 하신다.


"지랄도 풍년이여. 지랄을 아주 똥으로 싸요. 크게도 싸요. 저번에는 문어가 똑똑하다고 숙회 해 먹으면 안 된다고 지랄이더니. 이제는 꽃게가 어쩐다고. 니 에미가 꽃게킬러냐?"


급하게 쓴 문자에서 엄마의 맞춤법은 모두 받침들이 연음으로 이어진다. 눈을 좁게 뜬 채 자판을 입력하고 있을 엄마의 모습이 떠올라 한참을 웃는다. 얼마만인가. 엄마로 인해 웃는 일이. 찰진 욕이 구성지게 풀어져야 엄마다. 부끄러운 대화가 아닌 엄마 본연의 속말. 거침없이 쏟아져 나오는 세상에 대한 풍자. 그게 바로 엄마의 언어이다.


나는 재빨리 전화를 걸었다.


"아니, 엄마. 저 시 속 꽃게가 엄마 같아서. 우리들 잘 품어줘서 고맙다고. 힘들어도 버틸 수 있게 해 줘서. 그게 떠올라서."


"저것이 어떻게 품는겨. 다 같이 죽자고 그냥 꼬르륵 명줄 놔버리는 거지. 나는 이것아. 니들 살린다고 죽어라 발버둥 쳤어. 어따대고 꽃게랑 나를 대 놔."


"어, 엄마? 아프담서. 감기라며. 코로나일지도 모른다고 병원 다녀왔담서. 기력도 좋네. 뭐 드시고 싶은 거 없어?"


"낙지. 크드만 한 거 한 마리 탁 썰어서 기름장 찍어서 먹으면 오뉴월 소도 벌떡 헌다는디 나도 휘딱 일어날 거 같다."


엄마의 말에 순간 당황한 난, 어디서 낙지를 구할 수 있을까 떠올리다 말문이 막혔다.


"왜! 이번에는 낙지가 왜! 용왕님 아들이라디? 먹으면 나 잡아먹었다고 빨판으로 낚아채서 갯벌에 묻는다디?"


상상력 하나는 최고라고 생각한다. 나의 창작력에 분명히 큰 기여를 한 고여사의 유전자가 반응하며 정신없이 또 웃는다. 이런 근본 없는 개그에 웃어주면 안 되는데 말이다.


"적당히 혀. 너는 이상혀. 소고기나 돼지고기는 죽어라 먹으라고 하면서. 걔들은 한따까리 안 한다디? 명줄 있는 것들은 다 지 쓸모하고 죽는겨. 맨날 똑똑이마냥 따지고 가리다 뼈만 남어. 나 안 닮아서 가슴도 볼 것 없이 삐짝 곯은 것이. 뭘 그렇게 맨날 따지고 지랄이여."


"아니, 엄마. 사람 말은 들어보지도 않고 맨날 버럭이야. 버럭은. 엄마가 박명수 옹이야!"


"뭇생긴 애들이랑은 친구 안 헌다. 낙지가 또 지랄이면 순대나 사와. 오소리감투랑 간 잔뜩 넣어서."


본인의 말이 끝나자 뚝 끊어버린 전화에 멍하니 통화시간이 깜박거리는 화면을 바라보았다. 반짝이던 화면이 까맣게 변하고 잔상처럼 남은 꽃게와 엄마의 등을 떠올린다. 이런 시는 요물이다. 사람의 마음을 무장해제 시키는 단벌의 열쇠. 오직 시인만이 쓸 수 있는 자신만의 언어로 직조된. 먹먹해진 마음을 누르고 황가네에 순대를 주문한다. 드시고 기운 내서 해망산 한 귀퉁이도 들썩거릴만한 호통으로 하루를 신나게 살아내시길 바라며.






핀터레스트 출처 - 제 삶은 이렇게 늘 달팽이처럼 느릿해요











* 같이 듣고 싶은 곡



도시 - 추억 속의 그대


https://youtu.be/o3IZhn2O_aM?si=JsvyOSuHVYu5yGTh







#안도현시

#스며든다는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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