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둠을 걷어내며 새벽을 여는 사람들이 저마다의 목적지를 향해 가고 있다. 도로 위 얼굴은 보이지 않는 차창 너머. 저들은 어디를 향해, 무엇을 위해 가고있는지 문득 궁금해진다. 러시아워를 피해 아빠를 보기 위해 새벽 5시에 집에서 나섰다. 길 위를 달리는 내내 아빠에게 하고싶은 말들을 떠올려 본다. 혼자만의 독백으로 이어지던 말을 소리내어 아빠의 사진 앞에서 할 수 있다면 무슨 말을 제일 먼저 할까.
봉안당에 도착해 쪽잠을 자고 일어난다. 귀에서 울리는 이명에 눈을 감고 침을 삼킨다. 숨을 고르고 차에서 내리자 입구에 놓여있는 다양한 다육이들이 나를 반긴다. 녀석들. 조그만 문지기들이 열심히도 이 곳을 지키고 있다. 울고만 오지않을까싶어 미리 써 간 편지를 꺼내 읽어본다. 부르기만 했을 뿐인데 벌써 목이 뜨거워져 다시 접는다. 세상에서 가장 흔한 말. 하지만 고유한 개별성이 존재하는 단어, 아빠. 내게 대답해 줄 목소리가 없다는 걸 다시 깨닫는 순간. 나는 편지봉투에 넣어 유골함 옆에 두려고 납골당의 유리문을 열쇠로 열었다.
그때 커다란 먹빛 모기 한마리가 주변을 날아다닌다. 물리면 500원 동전만큼은 부풀게 생긴 녀석이라 나도 모르게 잡는다는 것이 그만... 아빠에게 쓴 편지가 담긴 편지봉투로 내리쳤다. 이것은 본능이다. 요양원에서도 환자들에게 제일 위험한건 감기 바이러스와 모기다. 압착된 모기의 사체를 물티슈로 가만가만 닦아내다 납골당 안 사진 속 아빠와 눈이 마주쳤다. 머쓱함에 나도 모르게 웃는다.
"봤지, 날렵하지, 나?"
내 말을 듣고 답을 하시는건지, 멀쩡히 있던 조그만 액자가 앞으로 넘어진다. 설마 코웃음치신건가. 유골함 아래 깔아놓은 인조잔디를 뺄까 말까 고민하다 가만히 둔다. 혹시나 옮긴다고 유골함을 들었다 그 옛날 엄마 앞에서 조신하게 밥상을 엎던 나의 덤벙거림이 나올까봐 두려워서 손을 대지 못하고 망설인다.
도란도란 한참을 아빠와 이야기를 나눈다. 일방적인 나의 말에 아빠는 빙그레 웃으며 듣기만 하지만. 그 말들을 쏟아내면서 나의 마음이 점점 가벼워지기 시작한다. 한참이 지나니 털썩 주저앉아있던 탓에 엉덩이도 아프고 다리도 저려온다. 마지못해 일어서서 작별인사를 나누고 돌아나온다.
그제서야 주변의 소리들이 들린다. 건너편에서 무척이나 슬프게 흐느끼고 있는 이의 울음소리가. 옆 방에 있던 두 자매가 엄마의 사진을 앞에 놓고 이야기 나누는 소리가. 나이드신 할머니께서 간이계단을 밟고 올라서서 남편으로 보이는 이의 유골함을 쓰다듬으며 건네시는 말씀이. 저마다의 작별인사 소리가 내게 몰려온다.
자리에서 일어서니 아빠 유골함이 놓인 주변에 새로 입주한 사람들의 이름을 보인다. '1978년 출생 000, 보고싶어요. 00아빠.', '2014년 출생 000, 영원히 사랑해. 00아'. 생각못한 나이들 아래 적힌 이름에 발이 멈춘다. 나도 모르게 나오는 속삭임에 숨을 삼킨다.
'아가, 너는 왜? 왜 그렇게 빨리 떠났어?'
웅웅, 울려오는 공간의 슬픔 속에 오롯이 서서 저들의 이야기를 듣는다. 그러다 문득 오규원 시인의 <죽고난 뒤의 팬티>라는 시가 떠오른다. 몇 번의 교통사고를 당하고 외출을 할 때 급정거로 놀랄 때마다 자신이 지금 입고 있는 팬티를 떠올린다는 시인의 고백. 삶과 죽음이 예고없이 찾아드는 방문객이라 허둥대며 맞을 수 밖에 없는 우리들에게 그 시는 담백한 위로를 전한다. 매일 이루어지는 조금씩의 성장을 통해 내가 만들어진다면 언젠가 찾아올 죽음 앞에서 겸허히 일어나 빛을 향해 망설임 없이 걸어갈 수 있을까?
먼저 간 길 위에서 아빠가 허둥대며 헤매고 있지 않기만을 바랄 뿐이다. 기침을 할 때마다 육신을 벗어난 영혼이 간절하게 바라던 천국을 마침내 만났기를. 그래서 평안하기를. 나의 아보하. 아주 보통의 하루. 아무일 없이 흘러가는, 그리운 이름 한번 불러본 하루. 당신의 하루도 아무 일 없이 무탈한 그런 하루이길 바라는 오늘.
* 같이 듣고 싶은 곡
신승훈 - She was
https://youtu.be/Qr7svLd9lcE?si=NZ8cf6c9r36wGbJp
*대문사진만 핀터레스트
#신승훈신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