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와아아아앙. 폭발적으로 터져 나오는 배기통의 울림소리에 흠칫 놀란 나는 본능적으로 길 가로 몸을 피했다. 어디에서 오는지 방향도 확인하지 못했다. 수풀 속에 고개를 들이밀고 숨어드는 꿩새끼처럼 소리에 놀라 피한 것이다. 내가 있는 곳과 반대편으로 멀어지는 불빛에 그제야 몸을 바로 세우고 아무렇지 않게 옷매무새를 다듬는다. 하지만 심장은 정직해서 혈관으로 산소를 보내기 위해 미친 듯이 뛰고 있다.
"아오, 저런 소중한 배기통!"
시간이 돈이 되는 라이더의 세계의 선한 시민에게 당신이 나를 놀라게 했노라 화를 낼 수는 없으므로 혼자 투덜거리며 차로 간다. 오토바이의 소음만 줄여준다면 참 좋을 텐데.
필라테스를 마치고 내 것 아닌 내 것이어야만 하는 팔다리를 이끌고 돌아오는 길. 여동생에게서 전화가 왔다. 막내인 남동생이 엄마와 함께 하는 가게 일이 끝난 밤에 배달 알바를 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전기자전거로 배달을 다니다가, 행동반경이 넓어야 돈을 더 벌 수 있다는 생각에 스쿠터를 사야겠다 생각했단다. 다만 여러 가지 일들로 인해 자신의 힘으로는 당장 구입이 어려워 차마 내게는 말 못 하고 여동생에게 할부로 구매를 부탁했다고 한다.
그 말을 듣는 순간 화가 치밀어 오른다. 폭발직전의 마그마가 끓어올라, 용암과 화산재로 남동생에게 투하를 하기 직전. 여동생이 만류한다. 무엇이라도 해보겠다고 하니 도와주자며 말이다. 누군가에게 의존을 해야 시작할 수 있는 삶. 나와 다른 삶의 방식은 남동생을 편안하게 바라볼 수 없게 만든다. 한 번씩 걸려오는 안부전화를 마음 편하게 받아본 적이 없다. 그게 늘 마음이 아프다. 여동생과 하듯 별일 없어도 전화를 걸어 지금 하고 있는 일이나, 마음 상태를 묻는 스몰토크라 하는 것들이 이 녀석과는 참 어려운 일이다.
폼페이 유적지의 화산석으로 다시 태어날 뻔 한 녀석에게 우리 자매는 오토바이 블랙박스를 사주기로 했다. 초고속 배송으로 도착한 블랙박스를 건네기 위해 호출을 하고 기다리는 동안 머릿속에 수많은 장면들이 스쳐 지나간다. 막내가 책임감 있는 어른으로 자라지 못한다는 생각에서 오던 나의 조바심. 그때마다 도와주어야만 했던 날들. 늘 불안한 녀석의 미래에 대한 여러 가지 가정들은 잠시 덮어두기로 한다. 어디선가 부당부당 부다다다당 소리가 들린다. 그래도 좀 점잖은 오토바이 소리가 점점 창문 아래로 가까워져 온다. 소머즈급 청력에 의하면 막 내 것이다. 전화도 오기 전 공동현관으로 달려갔다.
"누나, 나 왔..."
공동현관 앞에 오토바이를 주차하고 내게 전화를 걸려던 녀석이 갑자기 등장한 내 얼굴을 보고 흠칫 놀란다. 감히 내 얼굴을 보고 놀라다니. 어쩐지 억울하다. 저 녀석의 얼굴을 보고 내가 더 놀랐는데도 말이다.
"야, 너 헬멧. 니 사이즈 맞아? 볼이 눌려서 터질 거 같아."
춘식이 이모티콘이 살아서 움직인다. 내 눈앞에서. 이 녀석은 너무 구운 고구마 춘식이다. 오븐 온도 조절 실패로 검게 탄 모양이다.
"이거 2XL거등? 내 머리 안 크거등?"
"거봐, 볼이 눌려서 발음이 씹혀. 안 들려?"
내 말에 반박할 말을 찾지 못한 녀석은 입만 달싹거리다가 씩 웃는다. 아, 그 모습이 아빠와 똑같다. 버스 정류장까지 태워다 달라고 애교를 부리면 꼭 저런 미소로 답하며 태워주던 아빠. 나는 순간 아무 말 못 하고 녀석을 바라보았다.
"왜? 어제 늦게까지 못 자서 부어서 그래. 진짜 작은 거 아니래도."
동생이 매우 억울하단 표정으로 내게 항변을 한다. 나는 합리적으로 대답을 해주었다.
"작은 건 맞고. 더 큰 사이즈 없을 테니. 머릿살을 좀 빼고. 조만간 밤에 라이딩 뜸할 때 남포체육관 앞에서 좀 만나자."
나의 말에 남동생이 움찔하며 눈을 좁혀 뜬다. 이유를 듣기도 전에 어쩐지 무조건 거절을 할 태세이다.
"거기선 왜? 누나 혹시 무슨 일 있어?"
"아니, 한번 타보게. 오토바이. 이거 좋아 보인다. 나 면허도 있는데."
내 말에 남동생이 시동 꺼진 오토바이를 탄 채 두 발로 뒤로 물러난다. 저런 신기술을!
"안돼. 안 그래도 작은 누나가 신신당부했어. 큰누나한테 키 주지 말라고. 누나 생각 안 나? 어릴 때 경희 누나네 마당으로 스쿠터 타고 돌진한 거?"
담배 피우며 뇌세포를 마구 죽이고 있던 녀석이 갑자기 기억재생회로를 매우 가열하게 돌린다. 정상인처럼.
"말은 바로 하자. 인사드리러 갔던 거지! 다만, 할배, 할매가 너무너무 반가워서 내리는 걸 잊어버렸을 뿐이지!"
나는 어린 날의 기억 속 한 장면에 대해 매우 세심한 설명을 했다. 그러나 녀석은
"누나... 그 집 할아버지 싫어했는데?"
다시 또 정상인처럼 정확한 기억회로를 가동해 철벽 방어대답을 한다.
"타다 만 춘식아. 가라. 볼 더 터지기 전에, 나한테 쥐어 터지기 전에 가.라."
녀석은 블랙박스를 뒷좌석의 보관상자에 소중히 넣고 기분 좋게 달려간다. 살아보겠다고 노력하는 모습을 보니, 이제야 좀 철이 드는 것 같다. 복잡해진 마음을 달래 보려 나무생각 출판사에서 나온 <쓰는 기쁨> 시리즈 중 괴테 시 필사집을 펼친다. 한편씩 쓰다 보니 마음이 차분해진다.
명심
아, 무엇을 바라야 할까
가만히 있는 것이 나을까
단단히 움켜잡고
한곳에 머무는 것이 나을까
뭐라도 하는 것이 나을까
작은 집 하나는 지어야 할까
차라리 천막에 살아야 할까
바위에 의지해야 할까
굳건한 바위도 흔들리긴 매한가지인데!
한 가지가 모두에게 맞는 건 아니니
저마다 자신이 무얼 하고 있는지 보라
저마다 자신이 어디에 머무는지 보라
그리고 서 있는 자여
자신이 넘어지고 있지는 않은지 보라
- 요한 볼프강 폰 괴테
누군가의 뒷모습을 바라보는 일은 그 사람의 생을 사랑하며 보듬는 순간이지 않을까? 부디, 안전하게 다니길. 무탈하게 잘 살아가기만을 바라자.
너의 발 끝이 견고한 바위를 딛고 서길. 삶을 달리는 속도가 다른 이들과 느리다 해도 주저앉아있지 않기를. 머무는 곳에 피어난 작은 꽃들을 눈에 담을 줄 아는 마음을 갖고 살아가기만을. 나는 바란단다. 춘식아!
* 같이 듣고 싶은 곡
어른 - 정미조
https://youtu.be/7ixueqb1FzU?si=MvW090B7-3S6nbNf