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 오래되어 읽지 않는 책들을 버리거나, 나눔을 했다. 오래 묵은 먼지들과 함께 내 시간의 한 부분이 갇혀있는 이야기들을 폐지들 사이에 두고 작별을 고한다. 경비실 앞에 있는 삼발이 수레를 빌려 와 나르기를 여러차례. 마지막 나를 때는 두번 걸음하기 싫다는 욕심에 남은 책을 한꺼번에 무더기로 실었다. 엘리베이터 안으로 위태롭게 밀고 들어갔다. 문이 닫히는 순간 닿을 것 같은 불안함에 수레를 앞으로 밀었더니 그 충격에 책더미가 한쪽으로 무너져 내린다. 나는 수레 채 앞으로 고꾸라질 뻔 했다. 수레 손잡이를 붙든 채 공중에 대롱거리며 매달려 있으니 머리 속에 한 줄 글이 지나간다.
욕심은 화를 부른다
말끔하게 정리된 책장에 그동안 구입 후 한켠에 길게 쌓아두었던, 혹은 책장에 이중으로 기어코 끼워넣었던 책들을 빼내 정리를 시작했다. 마음에 드는 책들 몇 권이 몇 주째 책상 한켠을 차지하고 있다. 유디트 살란스키의 <머나먼 섬들의 지도>, <잃어버린 것들의 목록>. 리사 리드센의 <새들이 남쪽으로 가는 날>. 허수경의 <가기 전에 쓰는 글들>. 다 읽고나서 먹먹함을 글로 옮기지 못해 그대로 둔 책들이기도 하다. 귀퉁이 한 쪽이 접힌 책들을 펼쳤다 다시 닫으며, 나는 어떤 글을 쓰고싶은지에 대해 고민에 잠긴다.
<보령 청년, 청춘 예술로 놀다> 제 4회 연주회에 사회를 맡아 다녀왔다. 젊은 청춘들의 열정 가득한 무대를 보며 지켜보는 내내 심장이 뛴다. 무엇이든 할 수 있고, 무엇이든 될 수 있는 나이의 영혼들이 부러워지는 걸 보니 나도 이제 나이를 제법 먹었는가 보다.
사라사테의 <지고이네르 바이젠> 이 제목이 왜 그렇게 발음이 안되었던지. 연신 꼬여버린 발음에 화가 나서 집에 돌아와서도 벌떡 일어나 이불킥이다. 실수를 한 것도 나이고, 잘 한 것도 나인데. 언제나 실수한 것만 갖고 나를 책망하는 성격을 좀 고치면 좋을텐데 잘 되지 않는다. 나름 좋은 멘트들로 듣는 이들의 마음을 울렸을텐데 말이다.(내가 써놓고도 조금 뻔뻔스러운 거 같아 슬쩍 식은땀이 흐르지만 모른척 하자.)
이제 하루가 조금은 정리가 되었다싶어 자리에 앉아 컴퓨터를 키는데 고여사님의 호출이다.
"살이 꼈댜. 어째 그렇게 지랄맞은지 물렀는디 말여. 그눔의 시키랑 나랑. 그래서 내가 이렇게 힘들다고 허대."
전화를 받자마자 이어지는 고여사님의 하소연. 유투버 무슨 00보살님의 은혜로운 면담으로 사주와 살아 온 인생에 대한 무언가 깊은 깨달음을 얻은 것 같은 말투에 내 미간이 점점 좁아든다.
"살이 끼긴 했지. 빼. 그럼. 둘 다."
답답함에 심드렁하게 한마디 대꾸하자 바로 날아드는 답
"얀년아. 내가 어딜 봐서 살이 쪄. 다리가 하도 가늘어져서 귀뚜리보다 더 얇아서 걸을때 다리가 뵈지도 않는디."
사람의 다리와 귀뚜라미의 다리가 은유법으로 병치가 되는 순간을 만난다. 신박한 비유에 피식 웃음이 난다. 적어두어야겠다. 고여사님 어록에 오늘도 1장 추가. 곧 자리 펴고 누워 이마에 흰 띠를 얹으실 것 같던 목소리에 힘이 넘쳐난다. 다행이다. 살이 꼈든, 찌든 당장은 무엇을 하든 버티실 것 같다.
서로의 삶에 필요한 적당한 거리. 온기를 전할 수 있는 거리. 떨어져 있어야 배울 수 있는 마음들을 알아가고 있는 날들이다. 앞으로 나는 또 얼마나 많은 부분들을 버리고 정리하며 살아갈까. 어쩌면 잃어버릴 것들이 더 많은 날들. 마음 속에 자리한 이들에 대한 변함없는 온기만큼은 잃지말자. 이렇게 그저 소소하게 흘러가는 하루가 가장 귀중한 날이라는 걸 잊지않고 살아가자 .
어느덧 해는 소리없이 숨어든다. 산능선 한 켠으로. 매일 조금씩 낮아지는 태양의 조도를 따라 하늘을 가를 새들의 날개짓을 그려본다.
* 같이 듣고 싶은 곡
Autumn Leaves - 레이어스 클래식
https://youtu.be/siZl0wZXqEA?si=MgrA9pX47wwfqWNd
*메인그림 : 세르게이 비노그라도프, 다차에서의 여름
(1896년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