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not defined by you.

by Bono






거울 속에 비친 나를 본다. 늘어난 주름, 비대칭으로 어긋난 얼굴선, 콧방울이 살짝 휘어진 채 비뚜룸해진 입술 끝. 이게 나다. 더도 덜도 없이 온전한 나다.



손을 올려 얼굴에 대본다. 손 끝에 닿는 피부의 질감은 오래전 나, 그대로인데 그 위에 덧입혀진 시간의 층위는 미세한 주름으로 지나온 시간을 알린다. 아침빛에 내려앉아 반짝이던 은행잎 융단을 떠올린다. 몸체를 떠나 시간에 순응하며 낙하를 택한 노란 빛의 결정들. 습기를 먹고 탁해지던 명도. 그럼에도 또렷하던 형체. 문득 영화 속 한 장면이 떠오른다.





영화 <원더>의 주인공 어기 풀먼은 트리처 콜린스 증후군을 갖고 태어난다. 헬맷을 쓰고 다니며 27번의 성형수술로 재건하는 자신의 얼굴을 보호해야만 했던 어린 어기. 그리고 그의 가족들이 도도록 떠올라 눈앞을 스쳐 지나간다.



그토록 고대하던 출산일. 고통 속에 소리치던 줄리아 로버츠의 아이를 받던 의사는 아이의 울음소리와 함께 멈칫한다. 출산 현장을 비디오 녹화하던 아빠 역할의 오웬 윌슨은 카메라를 떨어뜨린다. 뼈가 아물지 못한 상태로 태어난 아이를 본 그들의 정직한 반응과 함께 어기는 화면에 등장한다. 홈스쿨로 수업을 하던 아이를 학교에 보내기로 결정한 부모와 함께 집 밖의 세상과 만나게 되는 어기.



스타트랙의 주인공처럼 헬맷을 쓰고 광선검을 휘두르던 어기. 자전거를 잘 타고 각종 잡기도 많은 아이가 만난 세상은 냉혹하다. 자신과 다름을 용납할 수 없어 조롱거리로 놀려대는 아이들과 그들에게 동조해 등을 돌린 아이들. 유일한 손길은 어른들의 은근한 압박으로 인해 다가온 작의적인 선행으로 무장한 아이 밖에 없다. 오로지 핼러윈데이만이 자신이 가면 없이 온전히 세상에 얼굴을 드러낼 수 있는 유일한 날이라 말하는 어기의 담담한 목소리가 마음속 무거운 추가 된다.



어기는 학교에 입학해서 처음으로 사귄 친구가 자신이 없는 자리에서 자신의 외모에 대해 뒷말을 하는 걸 듣게 된다. 온전히 마음을 열어 보인 친구가 한 말에 어기는 큰 상처를 받고 다시 자신의 방에 스스로를 가둔다. 그런 어기를 구원해 준 다정한 꼬마천사 써머. 태양빛처럼 맑고 환한 미소를 가진 써머 덕분에 어기는 다시 학교에 나오게 된다.



동화처럼 이어지는 영화 줄거리를 토대로 세심하게 덧입혀지는 가족들의 심리에 눈길이 간다. 어기의 누나는 어쩌면 자기 대신 어기가 유전적 형벌을 받게 되었다 생각을 하며 죄책감 속에서 번민한다. 엄마와 아빠의 시선이 온전히 자신에게 쏟아지는 날을 꿈꾸면서도, 그 시선을 뺏어간 동생에 대한 원망을 하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울고 있는 동생을 다독이고, 좌절하며 흐느끼는 엄마를 안아주는 딸. 그리고 혼자 있는 공간에서야 눈물을 터뜨리는 딸의 모습은 누군가의 행복이 결코 혼자만의 것이 아님을 보여준다.






원더를 보며 가장 마음에 남는 장면이 있다. 엄마가 상처받고 돌아온 어기를 달래며 전하던 말.



어기 : 왜 난 이렇게 못 생겼어요?


엄마 : 넌 못생기지 않았어.


어기 : 내 엄마니까 그러는 거잖아.


엄마 : 내 생각은 엄마라서 안 중요해?


어기 : 맞아.


엄마 : 엄마 생각이니까 제일 중요한 거야. 널 제일 잘 아니까. 넌 못 생기지 않았어. 네게 관심 있는 사람은 알게 될 거야.


어기 : 나하곤 말도 안 하는 걸. 다르게 생겼다고 그러는 거잖아. 괜찮은 척할래도 그게 잘 안 돼요.


엄마 : 알아


어기 : 계속 이럴까?


엄마 : 모르겠어. 엄마 말 들어봐. 날 봐, 누구나 얼굴에 흔적이 있어. 이 주름살은 네 첫 수술 때, 이건 네 마지막 수술 때 생겼어. 얼굴은 우리가 갈 길을 보여주는 지도이자 우리가 지나온 길을 보여주는 지도야. 절대로 흉한 게 아니야.






친구들의 폭언으로 상처받아 울던 어기를 세상 밖으로 꺼내 준 엄마의 말을 가만히 소리 내어 따라 해 본다. 어린 어기가 견뎌내야 했던 수술의 흔적들은 고통을 이겨낸 이에게 부여하는 신의 훈장이 되어 그를 일어서게 해 준다. 미추를 따질 수 없는 귀한 시간의 지문들. 우리의 얼굴에 자리한 주름살, 또는 흰머리 또한 시간의 지문이 되겠지. 내가 만들어 온 삶의 지도가 바로 지금 나의 얼굴이 되겠지.





I'm not defined by you.



누군가 나를 비방하며 이유 없이 깎아내리는 말을 들었다. 처음 그 말을 전해 들었을 때는 몰려오는 분노로 잠을 이루지 못했다. 눈 밑은 검게 물들고, 당장이라도 받아치고 싶은 말들이 가슴에서 들끓어 틈만 나면 입 밖으로 몰려나올 준비를 하니 입을 여는 것이 두려웠다. 걷어낼 수 없는 분노가 나를 잠식하며 나의 밤과 나의 평안을 좀 먹었다.



그러다 저 문장을 만났다. '네가 뭔데 나를 정의해, 네가 나를 알아?' 간단히 번역하자면 이렇게 해석할 수 있을까? 외모만 보고 어기를 판단하고 그를 까닭 없이 괴롭히던 친구들에게 이 말을 무심하게 툭, 던지고 싶다. 행동은 무심히, 속으로는 과녁을 향하는 화살처럼 신속 정확하게 심장을 노려서.



나를 말할 수 있는 사람은 오로지 나 자신이다. 특정 상황, 결과, 혹은 자신만의 짐작으로 말을 꺼내는 이들에게 휘둘리지 말자. 나는 당신에 의해 정의되지 않는다. 나는 나만이 정의할 수 있다.



가을의 종식을 알리는 낙엽비가 쏟아진다. 때를 알며 순응하는 존재들로 위로받는다. 어깨를 스치고 내려앉는 생명의 흔적이 눈부신 날. 내 얼굴의 지도에 미소로 생긴 실금하나 덧입혀 본다.


















* 같이 듣고 싶은 곡


YO LA TENGO - Tears Are in Your Eyes


https://youtu.be/KJFpN_dBW0U?si=WlFEEkTHmlPfCxR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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